본문 바로가기

게이트

[현미경]머뭇대는 롯데, 돈되는 사업도 파는 SK…'두 재벌의 차이'②

- 롯데그룹, 과도한 차입·무리한 확장…재무구조 악화
- 주력 계열사 실적 부진, 뒤늦은 구조조정이 위기감 키워
- 사업 재편·미래 먹거리 발굴 지연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최근 재계 6위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져 한때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롯데그룹이 이를 강력 부인하고 적극 진화에 나서 지금은 다시 잠잠해진 상태다. 롯데그룹 재무상태가 과거에 비해 많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유동성위기까지 거론할 정도는 아직 아니라는게 재계나 신용평가업계의 대체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대체 롯데 상황이 어느 정도이길래 이런 지라시까지 나도느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때마침 속속 공시되고 있는 롯데 계열사들의 3분기 보고서들을 중심으로 롯데의 현 상황을 차례로 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반복되는 롯데그룹 위기설의 근본 원인으로는 계속되는 주력업종 실적 부진 외에 과다한 차입과 무리한 확장경영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틀린 지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롯데 창업자 고 신격호 전 총회장은 일본서 겪은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주로 집중하는 이른바 ‘안전빵 경영’을 선호했다. 일본서 성공시킨 껌과 제과, 백화점, 호텔 등을 한국으로 들여와 그야말로 현금을 쓸어 담는 무차입 경영을 마음껏 펼쳤다. 차입을 일으켜 모르는 분야에 진출한다는 것은 거의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반면 후계자인 현 신동빈 회장의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언제까지 제과나 백화점 같은 것만 할것이냐’며 차입과 M&A(인수합병)도 불사했다. 여러 새 업종에 진출하며 ‘글로벌 롯데’도 부르짖었다.

2011년 회장 취임 전부터 롯데홈쇼핑과 롯데주류 등 일부 M&A(인수합병)를 주도했던 신동빈 회장은 취임 이후부터는 더 왕성히 기업 인수에 나섰다.

굵직굵직한 것들만 봐도 GS백화점·마트(인수가 1조3400억원· 2010년), 하이마트(1조2480억원·2012년), 일진머티리얼즈(2조7000억원·2021년), 한국미니스톱(3134억원·2021년), 한샘(2995억원·2021년) 등이 있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로 인수하거나 새로 만든 계열사들 대부분 아직 부진하거나 제자리를 못찾고 있다는 점부터가 우선 문제다. 미니스톱을 인수한 후 더 부진해진 코리아세븐이 대표적이고, 하이마트는 지금도 롯데그룹의 대표적 애물단지다. 한샘도 비슷하다.

2차전지 진출을 선언하며 롯데케미칼이 다소 무리하게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일진머티리얼즈)는 공교롭게도 인수 후부터 영업실적이나 재무상태가 나빠졌다. 이제는 롯데케미칼 재무 악화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인수 전에는 그런대로 괜챦았는데, 롯데만 인수했다 하면 잘 안되는 사례들이다.


롯데에너리머티리얼즈의 연결기준 영업실적

 

쿠팡 등에 대항해 2020년 심혈을 기울여 출범시킨 온라인 통합 플랫폼 롯데온도 올들어 매출이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누적된 적자를 견디다 못해 희망퇴직까지 실시 중이다.

대형 M&A나 신사업 진출 등을 자주 하다보면 총차입금이 많이 늘고 부채비율을 비롯한 재무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당연히 높아진다. 최근 터진 유동성 위기설의 핵심인 롯데케미칼의 연결기준 총차입금(회사채와 리스 포함)은 2021년 말 3.66조원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 9월 말에는 10.95조원까지 늘어났다. 3년여 만에 차입금이 3배나 급증했다.

각종 M&A를 주도할 수 밖에 없는 롯데지주의 총차입금(리스 제외)도 2019년 말 3.39조원에서 지난 9월 말 8.29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100%에서 133%로 올라갔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차입경영이 일부 원인이긴 하지만 최근 사태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라는 견해도 많이 갖고 있다.

차입금이나 부채비율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과거 오랜 ‘현금장사 호황’ 시절 롯데가 많이 벌어놓은 현금-예금이나 부동산 등에 비하면 그렇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2021년까지 거의 매년 최소 수천억원, 많게는 조 단위 흑자를 꾸준히 내왔던 롯데케미칼의 경우 지난 3년간 차입금 급증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말 부채비율은 아직 75%에 그치고 있다.

물론 2019년 말 43%에 비하면 많이 오른 것이긴 하지만 아직 위험선이라는 200%선에 한참 못 미친다. 경쟁 화학 대기업들에 비해서도 아직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다.

롯데 주요계열사들의 총차입금 잔액 추이(본사 정리)

 

롯데쇼핑의 경우 2017년부터 사드 및 코로나 사태, 하이마트 인수 후폭풍 등 연속 직격탄들을 계속 맞았는데도 총차입금 잔액은 사드사태 직전인 2016년 말(14.48조원 리스 제외)이나 지난 9월 말(15.16조원 리스포함) 큰 차이가 없다. 부채비율도 2019년 말 188%에서 지난 9월 말 190%로 지난 5년 간 크게 상승했다고 보기 어렵다.

롯데지주의 경우도 총차입금 잔액이 2019년말보다는 급증했지만 지주사 전환 직후인 2017년 말(9.8조원)과 비교하면 지난 9월 말(8.29조원)이 오히려 더 줄었다.

이들 빅3와 금융사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들 중 2019년 이후 총차입금이 2배 이상 오른 곳은 고금리 및 건설경기 침체로 PF부실이 급증했던 롯데건설과 롯데알미늄, 부산롯데호텔 등 정도다.

하지만 롯데건설(9월말 217%), 롯데알미늄(작년말 122%), 부산롯데호텔(작년말 77%) 등의 부채비율도 동종 경쟁업체들에 비해 아직 크게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건설사들 중에는 부채비율이 500%가 넘는 곳이 수두룩하고 효성화학 같은 곳의 부채비율은 지난 9월 말 무려 9779%(연결)에 달한다.

분기보고서를 공시하는 롯데 계열사들의 총차입금(금융회사 제외, 지주와 건설은 리스제외)을 모두 합하면 지난 9월 말 54.2조원으로, 지난 2019년 말 39.1조원에 비해 5년 사이에 15.1조원 늘었다. 5년간 증가율은 38% 정도다. 분기보고서 공시가 없는 비상장사까지 합치면 전체 차입금은 이보다 수조원 안팎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롯데의 총차입금 규모나 증가율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롯데보다 차입금 증가율이나 부채비율이 훨씬 더 높은 대그룹들도 적지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SK그룹의 총차입금은 100조원을 훨씬 넘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의 부채비율 등이 차입금 증가에도 아직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과거 오랜 호황을 거치며 쌓아둔 현금이나 예금 등 현금성자산, 부동산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쌓아둔 현금과 예금, 부동산 등이 부채비율이 더 오르고 재무상태가 더 악화하는 것을 그때마다 막아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따라서 가끔씩 나오는 롯데 유동성위기설의 1차 근본 원인도 차입 급증 등 때문이라기보다 올들어 주력업체 케미칼을 비롯한 많은 계열사들의 업황과 영업실적이 유례없이 한꺼번에 크게 악화하고 있는 탓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의 연결기준 부채비율 추이(본사 정리)

 

양대 주력업체 중 하나인 유통이 7년여 전부터 연속적자나 침체에 빠지고, 유통을 대신해 그룹을 지탱해주던 롯데케미칼마저 3년째 급속한 실적 악화에 빠져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우선 강력한 구조조정이나 재무구조 개선책이 당연히 나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새 먹거리를 찾는 사업재편이나 업종 전환 등도 서둘러야 하는게 상식이다.

물론 롯데지주는 지난 8월부터 비상 경영에 돌입했고 롯데온과 코리아세븐, 롯데면세점은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등 화학군 계열사 임원들은 이달부터 급여의 최대 30%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이지 그 이상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아직 착수도 못하고 있다. 롯데는 과거부터 모든 것이 느리고 둔하며 항상 타이밍이 늦는다는 평을 많이 들어왔다.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돈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의 지나친 기업 확장으로 재무구조가 크게 나빠진 SK의 경우 작년 이후 최근까지도 웬만한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닥치는 대로 팔아 치우고 있다. 돈 되는 사업부문 매각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롯데는 작년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의 청산을 결정하고, 해외 자회사 지분 활용을 통해 1조3000억원의 유동성 확보를 추진 중이라는 정도의 소식 외에 본격적인 사업 재편이나 재무구조개선 소식 자체가 아직까지 별로 없다.

비교적 알짜라는 롯데렌탈 등 일부 계열사 매각 타진도 오래 전부터 들어왔으나 롯데는 계속 머뭇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케미칼의 주요 연결재무지표(나신평)

 

중국 화학업체들의 무차별 증설과 저가덤핑 등 공급과잉 문제도 십수년 전부터 거의 주기적으로 거론되던 사안이다. 많은 다른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그래서 틈만 나면 업종 다각화나 신사업 진출 등을 서둘렀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설마 설마’했던지, 그동안 큰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아직도 매출의 60% 이상을, 언제든 중국업체 등에 쫓길 수 있는 기초화학 부문에 의존하고 있다가 올들어 제대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뒤늦게 뛰어든 2차전지(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인수 전 일진그룹 시절 잘 나가던 회사가 지금은 영업적자 상태에까지 빠졌다. 이 역시 인수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평가다.

롯데건설도 남들은 이미 큰 돈 벌고 거의 빠져 나간 부동산PF 부문에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태영건설 등과 함께 건설사들 중 가장 많은 부실에 휘말리기도 했다. 모기업 롯데케미칼과 지주사의 전폭 지원 덕에 과거보다는 안정됐다지만 지방 분양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잠재 부실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기 어려운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무디스-한신평 공동컨퍼런스에서의 한국 2개 그룹 언급내용

 

무디스와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최근 ‘2025년 한국 비금융기업 신용전망’ 공동컨퍼런스에서 내년 한국 대기업들 중 크레딧 이슈가 주목되는 곳은 롯데와 SK 등 2곳이고 밝혔다. 롯데는 업황 대응능력이, SK는 사업포트폴리오 재편 결과 및 영향이 각각 주요 점검사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롯데의 경우 사업포트폴리오 내 비우호적 전망 산업의 비중이 약 80%(24년 상반기 기준)에 달한다고도 지적했다. 현재 석유화학, 2차전지, 철강, 정유 등은 수급불균형 심화와 제품마진 축소 우려로, 또 호텔, 면세업은 원가 및 인건비 부담 증가 등으로 모두 비우호적 전망 산업들인데, 롯데의 경우 현재 영위 업종의 무려 80%가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일찌감치부터 사업 재편이나 업종전환, 미래 먹거리 발굴 등을 서두르지 않은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롯데의 경우 기업문화 자체부터가 과거부터 과감한 사업재편이나 모험투자 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랜 호황과 온실 속 현금 장사 관행 등이 롯데의 관료주의와 보신주의를 낳았고,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과감한 사업재편이나 구조조정, 업종전환 등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신평은 최근 보고서에서 “롯데그룹은 올들어 사업구조 재편을 공식화했고, 유통과 호텔 등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 특성상 우수 입지에 부동산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업재편이나 재무구조 개선방안과 이행 성과는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룹의 자구계획을 명확히 제시하고 적극적인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늦어 터진 구조조정과 사업재편, 번번이 놓치는 신사업 타이밍 등도 틈만 나면 나도는 각종 위기설의 근본 원인들 중 하나라고 다른 많은 재계 관계자들도 입을 모은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