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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재계 6위 롯데, 유동성 위기 도화선 된 ‘롯데케미칼 EOD’③

- 롯데케미칼, 기한이익상실(EOD) 발생…유동성 위기 확산
- 롯데, 현금성 자산·부동산 등 충분한 대응 여력 주장
- 지속 적자와 구조조정 미흡으로 신뢰 약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최근 재계 6위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져 한때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롯데그룹이 이를 강력 부인하고 적극 진화에 나서 지금은 다시 잠잠해진 상태다. 롯데그룹 재무상태가 과거에 비해 많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유동성위기까지 거론할 정도는 아직 아니라는게 재계나 신용평가업계의 대체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대체 롯데 상황이 어느 정도이길래 이런 지라시까지 나도느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때마침 속속 공시되고 있는 롯데 계열사들의 3분기 보고서들을 중심으로 롯데의 현 상황을 차례로 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이번 롯데 유동성위기설의 직접 도화선이 된 것은 지난 21일 한국예탁결제원의 롯데케미칼 무보증사채 기한이익상실(EOD) 원인 발생 공고였다. 이를 바탕으로 ‘유동성위기’나 ‘롯데 해체설’ 같은 찌라시들이 급속히 퍼져 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회사채 원리금 지급의무 이행 완료 때까지 3년 평균 EBITDA(상각전 영업이익)/이자비용이 5배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데, 롯데케미칼의 3년 연속 적자와 특히 올해 대규모 적자로 지난 9월 말 기준 이 비율이 4.3배에 그치면서 발생한 EOD 사유다.

앞으로 사채권자집회 등을 통해 롯데케미칼이 정말로 기한이익을 상실할 경우 2.3조원의 과거 발행 회사채 잔액을 모두 조기 상환해야 한다.

롯데케미칼 회사채 EOD 관련 개요(나신평 정리)

 

신용평가업계 등은 롯데케미칼의 보유 현금과 단기유동성 등을 감안할 때 설령 EOD 선언이 있더라도 당분간은 자체 자금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는 지난달 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별도기준 현금성자산 약 2.0조원(연결기준 3.8조원), 매각 가능한 장기투자자산 0.4조원, 금융기관 credit line 약 1.96조원 등을 모두 활용 가능 자금들로 평가했다.


롯데케미칼의 자금 융통성 현황(나신평)

 

그러나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는 롯데케미칼이 소집하는 사채권자 집회와 별도로 채권자들이 소집하는 사채권자 집회를 통해 단 1건이라도 기한이익상실 선언이 발생할 경우 전체 채권의 기한의 이익 즉시 상실사유로 번질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번 회사채 EOD건에 원만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전체 차입금에 대한) 실제 유동성 위험이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한기평은 또 확대된 차입금으로 인한 이자부담 상승과 단기간 내 영업현금창출의 빠른 개선이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할 때 중단기 EBITDA/이자비용이 5배를 상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특약조건에 ‘3개년누적 평균 EBITDA/이자비용 5배 이상 유지’가 포함되어 있는 한, 기한이익상실 사유는 (앞으로도) 분기마다 반복 발생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따라서 사채권자들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현금성자산 외의 추가유동성 확보 계획과 진행 상황, 구조조정계획 등을 투자자와 긴밀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한기평은 권고했다. 설령 유동성 대응능력이 있더라도 우선 단기적으로 채권자들을 잘 달래 무조건 1건이라도 EOD 선언이 안나오도록 해야한다는 설명이다.

사채권자 집회 개요(나신평 정리)

 

이 EOD 문제가 찌라시 등을 통해 롯데그룹 전체의 유동성위기론으로까지 확대되자 롯데그룹 측은 어떤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보유 현금과 예금, 부동산 등으로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며 이를 강력 부인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즉시 활용 가능한 현금과 예금만 15.4조원, 부동산이 56조원 등 가용재원이 71.4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롯데 주요 계열사들의 재무제표들을 들여다보면 이 주장이 과장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과거의 오랜 호황과 현금장사의 결과로 계열사마다 수백억, 수천억원씩의 이익잉여금이 쌓여 있고, 현금-예금과 보유 부동산들도 장난이 아니다.

3년 연속 수천억원대 영업적자 상태인 롯데케미칼의 지난 9월 말 기준 연결 이익잉여금은 무려 12조1526억원에 달한다. 2년 연속 당기순손실로 22년 말 13조1385억원에서 줄어든 것이 이 정도다. 물론 장부상 수치이긴 하지만 과거 오랜 호황의 결과로 아직도 이같이 엄청난 사내유보가 쌓여 있다는 뜻이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의 연결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본사 정리)

 

과거에는 더 컸을 이익잉여금이 여러 형태로 분산되면서 지금도 롯데케미칼은 1.91조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하 모두 연결기준)과 1.71조원의 단기금융상품, 15.58조원(이하 투자부동산은 제외)에 달하는 부동산(유형자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설령 EOD선언 같은게 있더라도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주요 근거다.

2022년까지 6년 연속 적자였던 롯데쇼핑의 지난 9월 말 이익잉여금도 아직 8조5123억원에 달한다. 당장 동원 가능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1조6142억원, 적어도 1년내 인출이 가능한 기타유동금융자산이 1.5994억원씩이고, 보유 부동산 역시 15조2121억원에 달한다.

롯데칠성음료,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 등의 실적이 포함된 롯데지주의 지난 9월 말 이익잉여금도 4.56조원, 현금및현금성자산 1.16조원, 기타유동금융자산 1.01조원, 보유 부동산 7.21조원씩이다. 다른 계열사들도 규모는 작지만 이런 기조는 대체로 비슷하다.

분기보고서가 공시되는 롯데 계열사들의 9월 말 보유 현금 및 현금성자산들을 모두 합치면 8.41조원에 달한다. 즉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1년내 인출이 가능한 단기예금 등 기타유동금융자산들을 모두 합치면 5.85조원이다. 보유 부동산은 54.45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분기보고서를 공시하지 않는 비상장 계열사 분들을 다 합치면 롯데 측이 주장하는 즉시 활용가능한 현금및예금 15.4조원, 부동산 56조원 수치들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의 연결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본사 정리)

 

흑자, 적자 여부를 떠나 영업활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현금이 회사로 들어오는지를 보여주는 영업활동현금흐름도 아직 양호하다. 올 1~9월에 롯데지주(7680억원), 롯데쇼핑(1.09조원), 롯데케미칼(1.33조원) 모두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대규모 흑자를 유지 중이다. 나간 현금보다 들어온 현금이 이 만큼 더 많았다는 뜻이다.

나머지 주요 계열사들 중에선 롯데건설(-2256억원), 롯데캐피탈(-1170억원) 정도만 영업활동현금흐름 적자이고, 나머지 대부분 역시 흑자다.

양대 주력 업체들인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이 번갈아가며 몇 년씩 적자 행진인데도 이 정도다. 그만큼 과거 수십년간 롯데가 누렸던 호황과 현금장사의 후광이 아직도 이렇게 길고 진하게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수치들은 장부상 수치들 뿐이어서 과연 유동성위기가 실제 발생했을 때 정말로 모두 즉각 동원가능할지 등의 의문은 있을 수 있다. 특히 부동산의 경우 팔려고 해도 당장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룹내 현금및현금성자산들만도 8조원이 넘어 이들만 활용해도 단기간내 회사채 EOD 정도는 충분히 진압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의 연결 단기예금 잔액(본사 정리)

 

그러나 올해 같은 대규모 적자가 내년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EOD선언도 분기마다 반복될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현금 등 단기유동성 대응에도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실제 롯데의 사업포트폴리오 등으로 볼 때 내년 이후에도 당분간 업황이 뚜렷이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게 신용평가업계나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특히 최근 문제의 핵인 롯데케미칼은 내년 이후에도 최대 우려 대상이다. 롯데케미칼 사업포트폴리오로 볼 때 내년 이후 금방 업황이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과 중국 중동 업체들의 계속되는 증설 우려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런 상태에서 2022년 이후 2차전지 소재업체 인수, 해외 생산설비 신설 등 때문에 차입 부담은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1년에만 해도 연간 852억원에 그쳤던 롯데케미칼의 이자비용은 작년 3789억원, 올 1~9월 3197억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웬만큼 영업흑자를 내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 올해는 대규모 적자로,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내는 상황이 되었다. 내년 이후에도 대규모 적자에 과다한 이자비용 부담이 지속될 경우 롯데케미칼의 그 많던 현금및현금성자산이나 예금, 보유 부동산 등은 계속 야금야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실제 그런 추세로 가고 있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의 연결 보유 부동산(유형자산) 현황(본사 정리)

 

이런 상황에서 롯데그룹과 롯데케미칼이 당장 해야할 일로는 돈 되는 알짜 사업부문이라도 과감히 매각, 재무구조부터 개선하는 모습을 시장과 투자자, 채권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케미칼내에서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다른 계열사들이라도 매각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일개 ‘찌라시’에 재계 6위 롯데그룹이 크게 휘청한 배경에는 실적 부진 장기화를 타개하지 못한 데 대한 시장의 불신 때문이었다.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려면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가시적 구조조정 성과 도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 1월 말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장성이 낮은 계열사는 선택과 집중을 위해 매각할 것”이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롯데케미칼은 작년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의 청산을 결정했고, 해외 자회사 지분을 활용한 1조3000억원 확보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케미칼 재무구조개선의 핵심으로 꼽히는 말레이시아(타이탄) 사업 매각은 여전히 검토만 진행 중일 뿐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아직도 말과 계획 뿐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다. 매각이 여의치 않으면 중장기 석유화학 업황을 고려한 자발적 공급량 축소 노력이라도 해야 될텐데, 이런 움직임도 아직 거의 없다.

매각도 한계 업종이나 사양 업체만 매각하려한다면 사려는 곳이 별로 없을 것이고 제 값도 제대로 못받을 가능성이 높다. 알짜 계열사 또는 알짜 사업부와 끼워 팔기를 하면 매각은 더 쉬워지고 제값을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롯데는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몇달 전 한 사모펀드 운용사가 국내 1위 렌터카업체 롯데렌탈을 매각하라고 롯데 측에 먼저 제안했는데, 매각가격 때문에 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가 2조원대인 롯데렌탈 지분 인수비용 이상을 원하자 결렬됐다는 것이다.

시장의 불신 해소와 재무구조개선에 필요하다면 우량 계열사나 사업부부터 과감하게 매각하는 두산이나 SK 등과 너무 대조되는 모습이다.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등 롯데타운 전경

 

IB업계 관계자들은 롯데도 이런 때일수록 롯데칠성음료나 롯데렌탈, 롯데캐피탈 같은 우량 기업들부터 매각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롯데의 상징이라는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한 잠실 롯데타운이나 평가액 4조원에 이른다는 서울 강남 롯데칠성 유휴토지, 롯데호텔 등의 금싸라기 부동산들도 과감히 내놓을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부 계열사 또는 사업부 매각, 희망퇴직 등의 재무구조개선, 구조조정과 함께 사업재편, 업종다각화, 미래먹거리 발굴 등도 강력 추진해야함은 당연하다. 보유 현금, 부동산 등의 여력이 남아 있을 때 턴어라운드에 성공해야지, 지금까지처럼 계속 미적대다간 롯데그룹의 퇴보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신용평가업계의 한 전문가는 “설령 단기 유동성 대응에 성공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재무개선과 구조조정, 중장기적으로는 업황 개선을 위한 사업 재편이나 미래 먹거리 발굴 등까지 같이 서두르지 않을 경우 위기설은 언제든 재발 가능하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