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도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내면의 평화에 도달하고, 지식과 지혜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탄탄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기쁨과 충족감을 안겨주는 활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기분은 일시적이며 왔다가 사라질 수 있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자기반성을 통해 전반적인 웰빙, 또는 어느 정도 수준의 행복을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챗GPT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등장한 행복의 개념 중에서, 네가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는 무엇인지 말해줘, 챗”이라고 질문하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행복을 뭐라 규정할 것인가. 인공지능도 이처럼 애매한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일단 처음 들으면 그럴 듯 하지만 “그냥 네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살아”라는 식의 술친구의 익살스런 답변보다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교육부는 지난 19일 '윤석열 정부 교육분야 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AIDT)를 당초 계획대로 내년 3월부터 도입한다고 밝혔다.
내년 3월부터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수학, 영어, 정보 교과에 우선 적용된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의 학습 수준을 진단하고 교사가 그 결과에 따라 수업 자료를 마련하는 새로운 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학생참여형·학생주도형 수업 방식을 통해 잠자는 교실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AI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도구’이자 ‘똑똑한 보조교사’입니다.
인공지능이 학생의 학습상황을 분석해서 교사에게 알려주면, 교사는 학생의 특성을 고려하여 맞춤 지도를 할 수 있고, 학생은 자신의 흥미에 맞는 콘텐츠로 학습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내년부터 본격 도입하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단순 교과서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학생들의 개별상담사이자 보조교사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내용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도구’ ‘똑똑한 보조교사’”라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1만명의 선도교사 연수를 실시했으며 15만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시도별 연수 및 '찾아가는 학교 상담'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함께 전국 1046개의 선도학교와 65개의 연구학교를 통해 디지털 기반 교실 수업의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교수‧학습 방법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교육부의 설명을 가만히 살펴보면 AI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정비되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연수와 각종 사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설명하면 일부도 아닌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AI 학습 실험을 강행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육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저 강물의 깊이가 얼마 될지 모르지만 어린 아이들을 일단 집어넣어보자. 그러면 깊이를 알수 있지 않느냐”는 식의 실험정신(?)이라는 비아냥을 내놓을까.
◇R&D 예산 5조 삭감, 의대 정원 대폭 증원에 이은 AI교과서 도입 결정은 또다른 악재가 될 것인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교육단체들이 20일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AI 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는 “이 부총리는 직무권한을 남용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기준재정수요액 측정항목에 AI 디지털교과서 이용 관련 항목을 추가하고, 실무 담당자가 법에 반해 직무집행을 보조하도록 했다”며 고발 이유를 밝혔다.
위원회는 “기준재정수요액 측정항목은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볼 수 있는 기본 항목들로 구성됨이 타당하다”며 “그러나 AI 디지털교과서 관련 항목은 이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에 설문조사 공문을 발송해 초·중·고교 교원 1만9667명을 대상으로 7월 23~31일 실시한 온라인 설문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73.6%에 달했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이 고 의원실의 의뢰를 받아 7월 26~30일 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전국 학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정책에 동의하는가’라는 물음에 ‘동의한다’는 30.7%, ‘동의하지 않는다’는 31.1%, ‘보통’은 38.2%로 집계됐다.
일선 교사들은 압도적으로 AI교과서 도입에 반대를 하고 있고 학부모들 역시 AI 디지털 교과서라는 것이 뭔지 아직 감도 못잡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년에 당장 교실에 등장하게 될 AI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가르칠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를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AI디지털 교과서 강행이 또 하나의 악수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기자가 듣기에 지난해 R&D 예산의 대폭 삭감은 이관섭 당시 비서실장 등 주로 재경, 산업부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온 정통관료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는 예전 일선에서 취재할 때에도 예산이나 산업부 관련 관료들은 언제나 과기분야 R&D예산이 짬짜미로 운영되면서 정작 국가적 차원의 기술개발 역량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숱하게 해왔음을 알고 있다. 물론 과기쪽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왔다.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R&D예산에 메스를 가할 때도 대충 그 배경에 대해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이지 무자비하고 일방적은 총액 삭감까지는 기자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변에 포진한 재경, 산자부 관료출신들의 조언만이 아니라 과기쪽 관료들의 조언까지 폭넓게 수용했다면 R&D예산 파동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윤석열 정부는 그같은 과정을 통해 역대적으로 보수지지층을 형성해 온 과학기술 연구인력들에 대한 지지를 크게 상실했다.
마찬가지로 보수층이 더 두터운 의사집단을 향해서도 기습적인 대량 증원이라는 카드로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앞뒤 가리지 않고 AI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함으로 해서 70%가 넘는 교사층을 등돌리게 하고 아직 뭔가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을 상대로 실험을 강행하고 있어 향후 정부 지지율에 결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소 AI디지털 교과서 도입과 관련해서는 딱히 언급을 반복적으로 한 적은 없다.
AI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사실 이주호 교육부 장관 개인의 오래된 숙원사업이었다.
이주호 장관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디지털 교과서’도입에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윤 대통령이 이주호 장관의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호의를 보인 것은 미루어 짐작하건데 의대정원 확대 문제로 총대를 매고 있는 이주호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그런 짐작만 할뿐이다.
◇예산도 기술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실험적일 수밖에
영국 언론기관인 토터스미디어가 '2024년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전 세계 83개국의 AI 경쟁력 수준을 비교·분석한 결과 한국이 작년과 동일한 종합 6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세부 분야별로 개발(3위), 정부전략(4위), 인프라(6위) 등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운영환경은 작년 11위에서 올해는 35위로 다른 나라 대비 크게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운영환경은 AI 과학자의 성별 대표성, 법률로 통과된 AI 관련 법안 수 등을 측정하는데, 지난해 지수가 크게 하락된 것은 AI 기본법 제정 등 AI 관련 규제 등 제도 정비가 미흡하다는 진단이었다.
다만 AI 기본법 제정안은 지난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겨우 통과했다.
AI 기본법은 정부가 AI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지원할 근거를 마련하고 이 산업의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기본 사항과 인공지능 윤리를 규정한 법인데 이제사 기본적인 법률체제가 만들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AI 기본 역량은 중국이나 미국을 따라가기에는 요원한 수준인데 6위라는 외신평가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우선 AI 관련 세계적인 국내기업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인재유출이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AI 인재의 이동을 추적하는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나는데 행선지는 대부분 미국이라고 한다.
스위스 로잔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조사한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를 보면 한국의 이공계 인력은 지난 10년간 4000명이 유입된 반면에 3만명이 유출되었다. 2만6000명이 외국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나라 AI 역량은 선도국 미국과 중국을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처럼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AIDT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자칫 외국 기술에 우리나라 교육을 맡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올 판이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따른 관련 예산 폭증에 대한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AI교과서 구입비로) 2026년 1조633억원, 2027년 1조5212억원, 2028년에는 연 1조7343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같은 규모의 예산을 확보한 지자체나 교육청을 제대로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AIDT도입에 대한 재정지원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AI교과서 공부와 관련한 사교육이 등장해 빈부격차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
학자 시절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주창해온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조차 국정감사장에서 “AIDT가 학생들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KERIS가 연구한 바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AIDT는 새로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효과성 연구는 향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대다수 교사들이 반대하고 아직 AI기술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지 못한 상황은 그렇다고 쳐도 예산 확보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AI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강행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 ‘교실 안에서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실험’이라는 우려를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지 그에 대한 해답이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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