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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이창용 한은 총재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그 끝은?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연이어 발언 수위를 금융시장은 물론 사회 전반 특히 지역균형발전, 교육문제까지 확대해가자 주변에서는 그의 행보를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홍성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한국은행이 최근 1년간 발간한 자료들을 보면 저출생, 지역균형발전, 가계부채 문제, 이번주 발표된 서울대 입학자의 강남 편중 현상에 대한 지역할당제 제시 등은 어떤 정치권도 감히 말하지 못하는 정책이다. 아마 다음 대선 공약의 핵심 자료가 될 듯하다”고 말했다.

홍 전 의원이 특히 '대선공약' 운운하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요즘도 정치권에서 내노라하는 훈수를 항상 발표하고 있는 정치인 김종인의 행보와 중첩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 김종인은 예전부터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들고 보수 진보 양 정당을 오가면서 자기 철학을 관철해왔다.

◇일각에서 ‘대선공약급’이라고 평가하는 한은 보고서 내용은

이창용 총재는 지난 27일 “(금리 논쟁에) 안타까운 것은 현 상황에서의 최적 결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고, 왜 우리가 지금 금리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늪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다”고 밝혔다.

한은이 최근 금리를 동결한 것과 관련해 용산 대통령실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자 즉각 이렇게 정부 정책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이창용 총재가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대통령실의 지적에 우회적으로 반격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총재는 더 나아가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 한은이 9월은 고사하고 10월에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재가 서울대 등 주요 상위권 대학에 '지역 비례 선발제' 도입을 제안하자 시장에서는 “한은의 독립성을 신봉하는 사람이 교육부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느냐”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쩐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수도권 집값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고착시켰다”면서 “초과수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보유세 등 세제나 다른 정책수단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집주인은 전세값 인상으로 전가하면 그만이니 해결이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더 나아가 수도권 집값 문제 해결 대안으로 상위권 대학 입시에서의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다.

그는 “(대입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한은이 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을 더 효과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님들이 결단해 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집값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금리 문제와 관련이 없으니 교육제도부터 뜯어고치라는 주문이다.

이와관련, 한은은 지난 27일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정종우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 이동원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실장, 김혜진 국립부경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이름으로 낸 보고서에 따르면 “과도한 입시경쟁은 저출산과 만혼, 수도권 인구집중과 서울 주택가격 상승, 학생의 정서불안 및 교육성과 저하 등 구조적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또 “이같은 부담은 저출산과 만혼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위권대 진학률이 우수한 지역으로의 이주수요는 수도권 인구집중과 서울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저출산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청소년들은 학업부담으로 인해 삶에 대한 만족도가 OECD 국가들 중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 보고서는 때문에 수도권 명문대 입시를 지역균형 선발제도로 바꾸어야 한다고 결론을 냈다.

하지만 한은의 경우를 보아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상위권 대학 출신 비율이 극도로 높은 조직이어서 자제 반성부터 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아냥도 시중에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은은 고위 간부로 갈수록 명문대 출신이 많은데 금통위원 6명과 간부 5명 중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이 7명, 연세대 상대 출신이 3명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도우미에 차등임금 도입하라' '사과 수입해서 물가 잡으라'는 한은 제언의 속뜻은

이 총재는 사실 2022년 취임할 때부터 한은의 역할에 대해 보다 차원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한은의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전통적인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과 작별을 고하고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를 한은의 미래로 제안했던 것이다.

이 총재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금리정책이 아니라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나아가 정치인들의 공약을 방불케 하는 발언들을 이어가기도 했다.

“IT 제조업을 제외하고 본다면 올해 성장률이 1.7%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어 국민들께서 경기회복의 온기를 충분히 느끼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재정의 확대와 저금리에 기반한 부채 증대에 의존하여 임기응변식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크고 작은 파도만을 경계하다 정작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한은은 지난 3월에도 아주 민감한 보고서를 냈다.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인데 “가뜩이나 심각한 돌봄 인력난은 급속한 고령화로 심화될 것이다. 인력난 완화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활용하되,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돌봄업종의 최저임금을 낮게 차등 적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에 대해 경영계는 즉각 환영을 했지만 노동계는 반노동적 발상이라며 격하게 반발하면서 한은 본관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6월 물가 보고서를 보면 ‘사과 수입 늘리자’라는 제언을 내놓기도 했다.

보고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를 해보니 농축산물 물가가 유독 높았다. 대표적으로 사과는 무려 279%나 비쌌다. 정부가 농가 보호를 위해 사과 등 농산물 수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결과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아예 대놓고 “생산자 보호를 위해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할 건가요,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건가요?”라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은의 이같은 행보를 지켜보면 이창용 총재의 경제철학이 꼭 진보와 보수의 어느쪽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나름 자기만의 합리성으로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철학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창용 총재는 정권교체기 때 전 정권인 문재인 대통령이 거의 마지막으로 행사한 인사권의 결과로 등장한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3월 새 한은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청와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의 의견을 수렴해 인선했다고 밝혔으나 윤 당선인 측은 “협의한 바 없다”며 상반된 입장을 내놔 일순 긴장감이 돌기도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충남 논산 출생인 이창용 총재는 1984년 서울대 경제학 학사, 1989년 하버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당시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 단장, 아시아개발은행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쳤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 이 총재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정권 인수팀인 윤석열 당시 당선인 측에서도 특별히 이 총재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한은 총재 인선은 전·현 정권의 갈등없이 비교적 원만하게 이뤄졌다.

어찌 보면 이창용 총재는 취임하는 과정에서부터 보수, 진보 양쪽의 합작품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한은 총재의 임기는 4년이다. 이 총재는 지금 임기의 절반 이상을 돌았다. 그리고 그의 임기가 끝날 때쯤은 한국 정치는 다시 한번 큰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시점이다.

과연 이 총재의 이같은 일련의 파격적인 행보의 끝은 무엇일지 갈수록 주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