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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49유로 티켓, 독일의 기후변화 대응 승부수 되나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베를린(독일) =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언제부터인지 은퇴자들 사이에 '한달살이'가 유행이다.

독자분들도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는 본인들이 직접 체험한 경험도 있을 것이고 주변에서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제는 더 나아가 태국 치앙마이 한달살이 이야기 등이 나돌더니 일본 엔화가 기록적으로 저렴해지자 아예 일본 한달살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한달살이는? 아무래도 생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일에서 교통티켓 한달치를 구매하면 단돈 49유로(7만3000원 정도)로 독일 전역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름하여 지난해 5월부터 전격 도입된 ‘도이칠란트 티켓(Deutschlandticket)’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리는 그저 ‘49유로 티켓’으로 부르면 된다.

티켓 구매 방법도 간단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MVV앱이라는 것을 설치하면 49유로 티켓 구매는 간단하게 이뤄진다.

다만 하나 조심할 것은 이 티켓은 한달 정기권으로 결제 다음달 부분을 취소하지 않으면 매달 무한정 자동결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반드시 취소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9유로 티켓만 있으면 독일 그 어느 곳이라도 버스, 트램, 지하철, 기차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독일 국경을 살짝 벗어나는 오스트리아의 음악도시 잘츠부르크까지도 이 티켓 한 장이면 여행이 가능하다. 자료를 미리 열람해보면 독일 인근 나라 많은 곳까지 ‘49유로 티켓’으로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다.

‘49유로 티켓’의 위력은 독일을 떠나 파리를 찾은 사람들에게는 바로 실감이 온다. 파리에서는 지하철을 한번 타는데 바로 4유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지하철 12번 탈 비용으로 독일에서 한달 교통비가 되는 것이다.

물론 고속 열차 ICE, EC 및 IC와 같은 장거리 기차와 장거리 버스는 이용할 수 없다. 급하게 도시 사이를 이동하고 싶으면 장거리 열차 티켓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우리나라 완행열차를 상상하면서 열차를 이리저리 바꿔타면 독일 전역 어디든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기자는 독일 시내에서 운영되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는 어느 누구도 티켓 검사를 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다만 가끔 다른 도시를 여행할 때 열차 안에서 티켓 검사가 이뤄지는 것을 경험했다. 무작정 무임승차를 하다 걸리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49유로 티켓’은 2등석만 이용 가능하다. 1등석은 이용할 수 없는데, 1등석이라고 해서 특별히 좋은 자리는 아니다. 신경쓸 일이 아니다.

독일 어느 열차를 타더라도 자전거를 실을 공간은 충분하다.[사진=이용웅 주필]

 

자전거를 이용해서 자유롭게 독일 전역을 여행하려면 자전거용 티켓을 별도로 구매하면 되고 애완견을 동반하려면 역시 추가 티켓이 필요하다.

독일은 열차마다 자전거칸을 따로 마련해놓고 있는데 자전거도 티켓을 부담해서인지 승무원들은 가끔 자전거석(?)에 사람이 앉아 있을 때 자전거가 올라오면 자전거에 자리를 양보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 기후변화 대응 위한 ‘탄소 제로’ 정책에 몰두하는 독일의 승부수는...

지난해 5월 도입된 49유로 티켓은 그 전해인 2022년 독일에서 3개월간 시행됐던 9유로 (대중교통) 티켓의 후속 작품이다.

출시 당시 1300만개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지난해 11월 말 기준 총 1100만 개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독일은 49유로 티켓 정책이 실행된 3개월 동안 자동차 운행의 10분의 1이 대중교통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약 180만t의 이산화탄소가 감축됐다는 실험결과도 함께 발표된 바 있다.

독일은 교통·운송 분야에서 연간 이산화탄소 1억6000만t 이상이 배출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직 매우 미흡한 수준이지만 독일 사회가 49유로 티켓에 거는 기대감은 크다.

독일의 탄소중립 정책은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하다.

독일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45년까지 ‘0’에 수렴하게 만드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 2022년 독일 연방의회는 '부활절 패키지' 정책을 내세웠는데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당초 약속한 40%에서 80%로 올리기로 했다.

지난해 독일 내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의 누적 설치량은 태양광이 60GW(기가와트), 풍력은 64GW였는데 이를 2030년까지 태양광 215GW, 풍력 145GW로 2~4배 늘리기로 했다.

물론 의욕만으로 모든 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 연방환경청(UBA)은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독일이 2045년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현재 정부가 계획된 정책이 모두 시행돼도 목표 대비 86% 정도의 감축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독일의 노력은 국제사회에서 우등생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독일의 기후정책은 우리나라 정당들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조국혁신당의 경우 지난 총선과정에서 독일의 부활절 패키지와 비슷한 ‘3080 햇빛바람 정책 패키지’를 제안하며 여야가 동참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3080 햇빛바람 정책 패키지는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을 2030년 30%, 2050년 80%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독일 정책을 그대로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49유로 티켓 정책은 탄소중립 노력의 일환으로 서민생활 깊숙한 곳에서 의미있는 결과물을 도출해내고 있어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정책대안을 발표하면서 49유로 티켓에 대해 “독일이 시행한 최고의 정책 중 하나”라고 평가한 뒤 “우선 청년들의 교통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청년 3만원 패스를 제안하고,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전 국민으로 확대하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놓은 기후동행카드 역시 바로 이같은 독일 모델을 참조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기후동행카드는 1회 요금 충전으로 선택한 사용기간 동안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따릉이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통합 정기권이다.

독일 티켓과 비교하면 그 취지는 유사하지만 아직 경기도나 인천시와도 협의가 완결되지 않아 시용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49유로 독일 티켓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적자분을 전액 보조하지만 기후동행카드의 경우 절반만 지자체가 부담하고 절반은 운송회사에서 부담하는 점은 여전히 부담이다.

독일의 경우 ‘49유로 티켓’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해마다 15억 유로(약 2조1700억원)의 자금을 각각 조달해야 한다.

이미 시행 직전 독일 연방회의는 장기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모든 추가 비용은 연방정부와 연방주정부가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물론 독일에서도 현재 몇몇 지자체에서는 연방 정부 및 주정부의 불분명한 자금 지원으로 지속 시행 여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와 관련해 별도 행보를 결정한 지자체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추후 일부 지역에서는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고 요금도 49유로에서 더 올라갈 여지는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또 있다.

대도시 주변 사람들은 분명 49유로 티켓으로 큰 도움을 받지만 장거리 이동의 필요성이 불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월 7만원이 넘는 교통비는 부담이 될 것이다.

슈피겔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도시의 경우 응답자 39%가 49유로 티켓 구매 의사를 밝혔지만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의 경우 겨우 12%만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 49유로 티켓, 코로나 인플레이션이 가져온 뜻밖의 정책연대 결과물

49유로 티켓의 도입에는 이처럼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큰 원칙하에서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또다른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서민생활 압박을 완화시켜 주어야 한다는 보수정당의 유권자 표심 잡기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녹색당 등의 정책대결이 절충점을 찾으면서 ‘49유로 티켓’이라는 여야 모두를 아우르는 결과물이 도출된 것이다.

연방정부의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녹색당·자민당은 물가상승에 따른 시민들의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에너지 사용을 감축한다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계속 해왔다.

자민당이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우리나라의 유류세 인하나 면제처럼 교통비 절감 정책을 내놓으면 녹색당의 입장에서는 에너지 사용을 부추키는 정책이 될 수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논의가 거듭될수록 ‘49유로 티켓’이 서민을 지원해줌은 물론이고 탄소배출이 많은 내연기관의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승객들을 기다리는 트램이 있는 독일 도시 만하임의 풍경.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를 비롯해 많은 세계적인 발명품이 탄생한 도시이지만 승용차들이 차도를 장악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사진=이용웅 주필]

 

실제 독일 여행을 가보면 자동차 왕국이라고 불리는 독일에 어울리지 않게 시내에 자동차 운행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대마다 교통지옥을 연상케하는 한국의 도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도시 중심가도 한가한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와 49유로 티켓에 의지하면서 전국을 유람하는 은퇴 세대의 건강한 모습에서 오히려 내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다.

가령 동화같은 분위기로 유명한 로텐부르크의 경우 워낙 교통이 불편해 과거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는 버스요금이 무려 100유로에 달해 여행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49유로 티켓만 있으면 조금 복잡하더라도 열차를 바꿔 타면서 독일 어디서든 방문하는 것이 쉬어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로텐부르크 같은 시골도시에도 49유로 티켓의 영향 때문인지 관광객들이 항상 북적인다.[사진=이용웅 주필]

 

독일의 기후정책을 보면 혁신적인 내용이 많고 무엇보다 ‘49유로 티켓’의 도입과정에서 알수 있듯이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정책연합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정당들은 독일 정책을 흉내만 낼 뿐이지 진정한 실천 의욕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