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CJ그룹 간 갈등 끝에 'K-컬처밸리 사업' 무산
- 경기도, 공공 주도의 공영개발 방식 추진 계획
- CJ그룹, 주도해온 K-pop 공연장, 테마파크 등 전면 중단
- 차입금, 유상증자 등 CJ ENM의 재무적 부담 클 것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CJ그룹이 경기도 일산에 야심차게 추진하던 ‘K-컬처밸리 사업’이 최근 무산됨에 따라 CJ그룹이 입을 손실(매몰비용)은 최악의 경우 700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K- 컬처밸리 조성사업은 고양시 일산 동구 장항동 일대 경기도 소유 부지 32만 6,400㎡에 CJ ENM의 자회사인 CJ라이브시티가 2조원을 들여 K-팝 공연장(아레나)과 스튜디오, 테마파크, 숙박시설, 관광단지 등을 조성하던 사업이다.
그러나 우여곡절이 많아 2016년 5월 CJ그룹이 경기도와 기본협약을 체결한 이래 모두 4차례 사업계획이 변경되기도 했다.
협약상 사업기간 종료일인 지난 6월 30일까지 양측이 의견 대립을 보인 끝에 추가 기한 연장이 이루어지지 않자 지난 1일 경기도는 협약 해제를 통보했다.
경기도는 공공 주도의 공영개발 방식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CJ그룹이 이를 수용하면서 CJ 주도 사업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특히 사업과 자금조달을 주도해온 CJ ENM은 사업적·재무적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8일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CJ라이브시티가 이 사업을 위해 빌린 차입금은 CJ ENM이 보증한 기업어음 3000억원과 전자단기사채 900억원, CJ라이브시티가 CJ ENM에서 직접 빌린 차입금 800억원, 토지 유동화 차입금 1416억원, 사모사채 2400만달러(약 323억원), 영구채(CJ ENM 자금보충약정 제공) 600억원 등 총 703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CJ이엔엠이 보증 또는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한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영구채 등 4823억원은 CJ라이브시티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CJ ENM이 물어줘야 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에 따르면 차입금 외에 이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CJ ENM 1500억원 등 CJ그룹이 모두 155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를 합하면 현재까지 파악된 총 자금조달액은 8589억원에 이른다.
한신평은 이렇게 조달된 자금이 지금까지 투입된 곳은 작년 말 기준 모두 8116억원이라고 추산했다. 토지 2700억원(재평가이익 656억 제외), 건설 중인 자산 2663억원, 판매관리비 1379억원, 유형자산폐기손실 810억원, 신종자본증권 배당 247억원, 기타 317억원 등이다.
작년 말 남아있는 잔여 현금은 33억원에 불과하다. 유형자산폐기손실이란 그동안의 설계 변경에 따른 손실들로 2020년 403억원, 22년 407억원이 각각 발생했다.
한신평과 나신평은 차입금 중 토지 유동화 차입금(1416억원)의 경우, 이번 사업이 종료되면 토지를 경기도에 반환해 회수하는 대금을 통해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신평은 또 경기도 및 경기도시공사로부터 분양받은 A, C부지 매입 원금 2164억원도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사업협약 해제에 따라 토지에 추가로 반영되어 있는 유동화차입금 자본화 금융비용 및 아레나 부지에 이미 투입된 공사원가(건설중인 자산)의 경우 손상인식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 중인 자산 2663억원은 공영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될 경우 공영방식 개발주체에게 매각이 일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공영방식 개발방식이 CJ 방식과 확 달라질 경우 매각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 자산에서 상당액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신평은 CJ ENM 의 CJ라이브시티 지분가치(지분율 90%, 2024년 3월 말 기준 장부금액 1103억원) 및 대여금(2024년 5월 899억원 대여)도 손상 인식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사업이 완전 무산으로 끝나면 아무래도 지분가치와 대여금은 전액 손상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업과 관련한 지체상금 규모에 관해서는 한신평과 나신평이 모두 1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공사기한 지연에 CJ라이브시티 측 귀책사유 외에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전력 공급불가 통보, 한류천 수질 개선 공공 사업 지연 등의 사유도 있어 향후 협의에 따라 지체상금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합의가 안되면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 CJ ENM의 경우 지체상금 예상비용의 일부를 이미 장부상 비용(연결기준)으로 반영했기 때문에, 지체상금 관련 회계상 추가적인 비용 인식 부담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신평은 설명했다.
건설중인 자산 2663억원을 모두 회수하지 못하고, 지체상금을 1000억원, 대여금과 지분가치 손상율이 100%라고 가정했을 때 CJ그룹이 입을 최대손실은 7122억원 정도다.
그러나 이 외에 경기도가 지금까지 진행된 공사의 원상복구 비용 등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건설 중인 자산 회수액이 커지고 지체상금 규모도 줄어들 경우 손실이 6000억원 이하로 줄어들 수도 있지만 이것들이 잘 안되면 최악의 경우 손실이 7000억원을 훨씬 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CJ ENM이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이는 차입금과 관련, 한신평은 이 차입금이 이미 CJ ENM의 연결기준 차입금에 포함되어 있고, 해당 차입금의 만기 구성과 CJ ENM의 안정적인 사업기반에 따른 우수한 대외신인도, 보유 비영업용 자산 및 여신한도에 기반한 자금조달여력 등을 고려하면 차입금 대응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나신평도 차입금 중 즉시 기한의 이익 상실 사유에 해당하는 차입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며, CJ ENM이 차입금(CP포함) 만기일에 순차적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면 단기적으로 유동성 이슈는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만기 도래 차입금 규모는 2024년 1000억원, 2025년 2000억원, 2026년 이후 1823억원 수준일 것으로 나신평은 예상했다.
한신평과 나신평은 또 이번 사업 종료로 인해 사업 진행에 따른 추가 자금 소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모두 평가했다. 계속 사업이 진행되었더라면 공사비 상승 등으로 대규모 자금 소요가 불가피하고, 완공 후 투자 성과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수천억원 손실은 불가피하지만 공사를 계속 진행했을 경우 예상될 수 있는 더 큰 손실과 불확실성은 막았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는 설명이다.
양대 신용평가사는 이런 점들을 종합 감안하면 이번 CJ라이브시티 사업 종료가 CJ ENM 신용도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나신평은 CJ ENM이 지난 3월말 연결기준 토지 및 건물 약 8500억원과 넷마블 주식 등 약 1조5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점과 CJ계열내 사업자로서 우수한 대외 신인도 등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대 신용평가사들이 모두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는 하지만 CJ그룹이 그동안 투자한 사업비 중 7000억원 안팎은 고스란히 허공에 날아가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 중 CJ ENM이 보증한 차입금 4500억원은 CJ ENM이 대신 물어줘야할 것으로 보인다. CJ라이브시티의 재무부담이 전이되면서 모기업 CJ ENM의 재무안정성 지표는 일정 수준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CJ라이브시티 지분 90%를 보유 중인 CJ ENM 은 국내 최대의 종합 엔터테인먼트기업이다. 작년 연결 매출은 4조3683억원으로, 22년 4조7922억원보다 약간 줄었으며 영업이익도 22년 1373억원 흑자에서 작년 146억원 적자로 적자전환했다.
올 1분기 123억원의 영업흑자를 다시 기록하고 매출도 전년동기대비 다시 늘어났지만 아직 큰 이익을 내는 회사는 아니고, 본격 회복된 상태라고도 보기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CJ라이브시티 부담까지 겹치면 당분간 재무상황은 더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CJ그룹도 최근 몇 년간 코로나 사태 등으로 큰 적자상태에 빠진 CJ CGV를 구하기 위해 1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등 크게 고전해왔다. 이번 사태 수습 여파까지 겹치면 당분간 더 고전상태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CJ라이브시티는 2021년 4분기 한화건설과 아레나 신축공사 도급계약을 맺고 착공에 들어갔으나 건설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2023년 3월 아레나 공사가 일시 중지됐다.
또 한전으로부터의 대규모 전력 공급 불가 통보, 한류천 수질 개선 공공 사업 지연 등까지 겹쳐 사업 기한 내 완공이 어려워짐에 따라 CJ라이브시티는 작년 10월 국토교통부 ‘민관합동 PF 조정위원회’에 사업 조정을 신청했다.
작년 12월 PF조정위원회는 경기도에는 민간사업자의 비용절감 및 유동성 확보 방안 지원, 전력공급 등 사업여건을 고려한 완공기한 연장·지체상금 감면 등을, 또 CJ에게는 신속하게 사업을 재개하고 지체상금 감면규모 등을 고려해 지역 발전을 위한 공공기여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는 이후 조정안을 바탕으로 협의를 추진했고, 지난 4월에는 해당 조정안을 바탕으로 감사원에 사전컨설팅까지 신청했으나 결국 끝내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까지 초래했다.
경기도는 자체 법률 자문을 통해 사업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감면은 특혜·배임 문제가 있다고 판단, 사업협약 해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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