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수출이 급등세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가계대출 역시 크게 늘어나고 있어 한국 경제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증가한 3348억 달러로 집계됐다.
특히 상반기 반도체 수출은 메모리 가격 상승과 서버 중심 전방산업 수요 확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52.2%나 늘어난 657억 달러였다.
앞으로 수출 전망도 밝은 편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의 집계에 따르면 6월 한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2로 상승하며 2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S&P 글로벌은 아시아, 유럽 및 북미지역의 수요 증가로 한국의 수출 주문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조 해이스 S&P 글로벌 수석 경제학자는 한국은 배터리, 반도체 등 주요 중간재 공급망에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6월 한국의 제조업 PMI 수치는 “글로벌 제조업과 무역이 호전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수출 호조에 힘입어 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가 기존 예측보다 0.4%포인트(p) 상향 조정된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연초부터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 3고(高) 현상의 경고가 이어졌지만 이미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1.3%로 예상치를 상회했고 물가 상승률도 둔화되고 있는 것을 반영한 수치다.
수출 호조가 상반기 경제 성장을 주도했고 하반기에 설령 수출이 둔화되더라도 시중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어 정부의 기대치가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변수는 남아있다.
◇높은 수출증가율에도 불구, 폭증세 보이고 있는 가계부채가 내수 발목 잡을 듯
최근 2개월간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10조원 넘게 늘었다.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이 9월로 연기되면서 ‘대출 막차를 타자’는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부동산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5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4조5000억원, 5조7000억원 증가했다.
이와 관련 이복현 금감원장은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안정화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제주체 모두가 원하는 금리인하가 과연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나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수 부진으로 자영업자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주택 관련 부채가 크게 늘어나 결국 소비 여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정부·기업·가계의 부채를 모두 합한 국가총부채 6033조원 중 가계 부채가 37%(2246조원)를 차지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작년 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0.5%다. BIS가 선진국가·지역으로 분류한 11곳 중 우리나라보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스위스(127.8%), 호주(109.7%), 캐나다(102.2%) 정도에 불과하다.
이래서야 수출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해도 내수가 살아날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2024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대체로 안정된 모습이지만, 단기적으로 취약 부문의 채무상환 부담 누증, 부동산 PF 부실 우려, 비(非)은행 중심의 금융기관 자산건전성 저하, 주요국 통화정책 등의 위험 요인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나라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가계부채의 굴레가 내수 성장을 위협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5월 재화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액지수(불변)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1% 감소한 뒤로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수치다.
전문가들은 특히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급락에 주목하고 있다.
5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8로 전월보다 0.6포인트 하락하면서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5월(-1.0포인트) 이후 48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행지수의 큰 폭 하락은 수출은 잘 버티고 있는데 내수 쪽으로 확산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아직 경기가 바닥을 찍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한국경제의 수출·내수 양극화는 이미 구조화된 문제...해결방안 시급하다
홍성국 전 민주당 의원은 SNS에 “보슬비에 옷 젖듯이 내수는 무너지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홍성국 전 의원은 “코로나를 계기로 급증했던 배달은 이미 2022년을 고비로 아주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배달료 자체가 비싸고, 내수 경기 침체로 절대 소비량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의 배달 감소가 눈에 뛴다. 어떤 경제지표나 외부 충격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조용히 소비를 줄이는 것이 경제지표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전 의원은 이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반(90년대 초중반) 일본인들은 단지 소비를 줄이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렇게 30년 살다 보니 한국에도 1인당 GDP가 역전되었다. 당시 일본은 90년대 내내 정치 불안으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까지의 수출과 금리 흐름이 지속된다고 가정할 경우 2024년에 내수 위축의 정도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나, 충분한 회복세를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을 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수출 회복이 2024년도 소비와 설비투자를 각각 0.3%포인트, 0.7%포인트 상승시킬 것으로 추정되나, 누적된 정책금리의 영향은 2024년도 소비와 설비투자를 각각 0.4%포인트, 1.4%포인트 감소시키면서 여전히 내수 회복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KDI는 금리를 내려야 내수가 회복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우려했듯이 금리 인하가 곧 가계부채 폭증으로 이어지면 결국 부동산만 자극하고 소비 여력을 줄일 수 있다는게 문제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의 내수 부진; 의미와 시사점’이라는 글에서 “주요 경제전망기관들이 금년과 내년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2% 내외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성장률은 경기 회복으로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 정도의 경제성장률이 의미하는 바는 반도체 수출 등 일부 항목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가계소비 등은 상당히 부진하다는 뜻이라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소비나 투자 등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호조는 당분간 예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종규 위원은 “이러한 예측을 기반으로 최근의 내수부진이 장기 불황의 전조가 아닌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의 내수 부진이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해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을 냈다.
이종규 위원이 우려하고 있는 ‘장기불황’과 관련해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당시 50대였던 1954~63년생을 보통 1차 베이비붐 세대(705만명)라고 하고, 2차 베이비붐 세대(954만명)는 2023년 당시 50대였던 1964~73년생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세대별 구분으로 봤을 때 가장 큰 규모인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11년에 걸쳐 은퇴 연령에 진입하게 된다.
한국은행은 1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취업자 수 감소를 통해 2015~2023년 기간 중 연간 경제성장률을 0.33%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2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재고용 법제화 등 강력한 정책 대응을 하면 경제성장률 하락폭을 0.16%까지 낮출 수 있다고 보았다.
은퇴자들이 특별한 소득이 없으면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저출생국가 아닌가.
때문에 정부는 최근 저출생 문제에 대응할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 신설 계획을 밝힌바 있지만 은퇴를 앞두고 있는 연령대의 지속적인 취업지원을 지원해야 내수를 지킬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 수출 호조에 흥분하고 있지만 그건 S&P의 분석에서도 알수 있듯이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호조 등 외부적 요인이 강하다.
문제는 이미 구조화되고 있는 내수 부진의 깊은 늪이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진단해서 미래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현 경제팀에 부과된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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