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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 ‘라인 사태'로 시험대 오른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 메신저 앱 ‘라인’의 주주인 네이버에 대해 ‘라인야후’의 지분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나서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이 앱을 보유한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지분을 갖고 있다. ‘라인’의 일본인 이용자는 9600만명에 달한다.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시장까지 합하면 2억명이 넘는다.

그러나 지난달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의 네이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서 경영권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지난 2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라인야후’의 중간지주사 A홀딩스 주식을 네이버로부터 매입하기 위한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 한일관계 정상화에 찬물 끼얹는 소프트뱅크와 일본 정부의 움직임

일본 정부가 네이버를 라인야후 경영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2023년 11월 라인야후가 일본인 개인정보 44만 건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당시 라인야후 측은 피해 원인에 대해 "한국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 제3자의 부정한 접근(해킹)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측에 ‘네이버와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나섰다. 지난 16일에도 라인야후가 마련한 사고 재발 방지책이 불충분하다며 2차 행정지도를 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네이버 문제를 다루면서 미국이 최근 틱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을 본뜬듯한 느낌을 준다.

중국계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미국내 사업권 강제매각 법률이 제정되자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데 미국은 어디까지나 틱톡을 적성국가의 플랫폼으로 인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본은 한국을 정보산업계에서 적성국가로 인식하는 것일까. 우리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파기한 한일 지소미아(군사보호협정)까지 복원했는데?

지난해 10월 일본의 대표 통신 사업자인 NTT니시(西)일본에서 사용자 정보 928만건이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라인야후보다 20배 가까운 사용자 정보가 빠져나갔다.

일본 총무성은 이에 대해 지난 2월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고, 이후 NTT니시일본이 내놓은 ‘관리 감독 강화’라는 개선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끝이었다.

대주주에게 지분매각까지 강요하는 이번 일본 정부의 처사는 단순 행정지도 차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프트뱅크는 몇 년 전부터 일본 라인을 완전히 흡수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미 네이버는 경영 주도권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일본 정부와 함께 네이버 뒤통수를 친 만큼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 개입하지 않는 이상 네이버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네이버 ‘라인’ 문제가 단순한 기업 문제로 멈추지 않고 한일간의 정치적 긴장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27일 윤석열 정부를 향해 “'친일'(親日)을 넘어 '종일'(從日) 정권”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 정부의 강제징용 판결 불수용도 묵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묵인. 라인 경영권 탈취 압박도 묵인”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역임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소프트뱅크가 라인 주도권을 쥐도록 행정지도로 지분매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인데 납득할 수 없는 과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네이버가 일본 이용자 정보를 불법 활용한 것도 아닌데 정보를 악용한 적대국의 기업에나 적용할 법한 과도한 조치로 압박에 나서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외교적 문제로도 비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일관계 복원에 힘쓴 윤석열 정부, 일본 정재계의 속마음까지는 못읽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손을 댄 분야는 북핵 위협에 대항해 한미일 공조체제의 재확립이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몰라도 한일관계 복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인기없는 정책이었다.

요즘 일본 어디를 다녀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일본에서는 ‘제2의 한류붐’이 기세를 올리고 있어 겉으로 보면 ‘한일관계 르네상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한일간의 간극은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이 유럽처럼 비행기와 배로 오갈 때 출입국 심사를 없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일 양국민이 상대국을 찾을 때 여권이 필요없어진다는 뜻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우리 정치권에서 전개되는 반일정서는 언제나 맹위를 떨쳐왔다.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이번 총선은 신(新)한일전쟁이다”라는 주장을 거침없이 펼쳤다. 그리고 그런 선전이 어느 정도 통하는게 현실이다.

진보진영에서 외치는 ‘반일 죽창가’는 철 지난 선동술처럼 보이지만 일정 부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화와 정치가 따로 노는 한일 관계에서 윤석열 정부는 인기 하락을 무릎쓰고 과감하게 일본과의 관계 복원에 힘썼다.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공조체제의 복원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반도체관련 부품의 수출제한을 풀고 한일간의 경제교류를 더욱 활성화해 우리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난해 일본의 오염수 방류로 반일 정서가 절정에 오르고 있을 때에도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복원을 멈추지 않았고 여당 일부 의원들은 수산시장에서 바닷물을 맛보는 촌극까지 벌였다.

매우 기이한 장면이었지만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일본 정부의 대변인처럼 비춰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는 징용자 배상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풀었고 문재인 정부 당시 파기되었던 한일 지소미아(국사보호협정)도 복원시켰다.

당시 기자는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의 악화를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반일 정책에서만 찾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에 빠지기도 했다.

한일 관계의 악화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고 두 나라 모두의 내부 사정이 있음에도 한일관계는 우리만 노력하면 복원된다는 그런 편견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윤석열 정부가 만약 그런 식의 편견에 빠졌다면 지극히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진보 정권이 한일 관계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처럼 일본 역시 보수 자민당은 언제나 일본내 극우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한일 관계를 악용해온 게 엄연한 현실이다.

독도를 죽도라면서 일본 영토라는 주장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한일관계 복원에 힘쓰는 윤석열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신사 참배 같은 것은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19일 우익 성향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를 승인하기도 했다. 내년부터 일본 중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교과서인데,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고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일본 우익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그대로 담겼다고 한다.

일본은 더 나아가 한국 눈치도 보지 않고 “북일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주장을 기시다 총리 본인이 줄기차게 내세우고 있다.

오래 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지난 2011년 신도 요시타카 등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은 독도가 일본 땅임을 증명하기 위해 울릉도를 먼저 방분하겠다면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가 입국이 불허되어 돌아간 적이 있었다.

일본 오염수 방류에 항의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우리 민주당 의원들과 비슷한 행태인데 어디까지나 일본 내 정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일종의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지난 2월에는 일본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강제 철거됐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 날, 일본 집권 여당 자민당의 3선 의원인 스기타 미오 중의원은 아주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다른 위안부나 강제징용 추도비도 철거되길 바란다”며 이를 거짓 기념물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일본 정치인들의 이같은 행태는 역으로 일본내 반한 감정을 자기의 정치적 이익으로 삼기 위한 것들이고 우리나라의 반일 감정처럼 아주 뿌리가 깊다.

한일 관계가 그동안 악화되어 온 것은 문재인 정부의 반일 정책에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일본내 사정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일본내 반한 여론과 맞서 싸우기 보다는 국내 반일여론과 싸우는데만 집중을 했다.

이래서야 정상적인 한일 관계의 복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네이버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은 전부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우리만 자제하면 한일 관계는 복원될 것이라는 신기루같은 기대에 기대지 말고 우리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일본 우익의 반한 감정과도 맞서면서 정당한 모습을 보여야 진정 진일보된 한일관계가 성립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지난 28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후보들이 전원 당선돼, 지지율이 바닥인 집권 여당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다시 정국 운영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자민당이 대외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모든 상황을 감안해도 네이버 사태의 추이를 적지 않은 국민들과 기업들이 지켜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정당하고 적확한 대응을 기대해본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