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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브][이용웅 칼럼] 영수회담, ‘현금살포 추경’ 넘어선 민생대책 합의점 찾아야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려도 기업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하 효과가 한계에 달하자 돈을 찍어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양적 완화로 일찌감치 통화 금융 정책을 바꿨다. 우리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정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중 자금이 막혀 있는 곳에 통화가 공급될 수 있도록 한국판 통화 완화 정책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요즘 생각하면 뭔가 말도 안되는 이같은 주장은 2016년 총선 당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내세운 총선 공약이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조선산업이 심각한 위기국면에 빠져들고 좀비기업들이 줄지어 나가 떨어지는 힘든 상황이었다.

진보야당이 아니라 보수 여당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다. 당시 민주당을 이끌었던 김종인은 펄펄 뛰면서 “나라 망하게 할 공약”이라고 맹공을 폈다.

확장재정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요즘 민주당 분위기에 익숙해진 상황에서는 그보다 더 규모가 큰 ‘양적완화’를 보수당에서 주장했다는게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기는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강봉균 전 위원장이 ‘양적완화’라는 파격적인 단어를 동원하면서 돈을 찍어 풀자고 주장했지만 ‘양적완화’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했던가? 아니면 너무 늦게 그런 공약을 내세웠던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당시 ‘옥새들고 나르샤’라는 풍자에서 알수 있듯이 여권의 공천 파동 때문이었나?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하지만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위성정당과 함께 얻은 108석보다는 무려(?) 14석이 많은 122석을 가져갔다. 당시 민주당은 123석을 얻어 겨우 제1당 지위를 차지했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38석을 얻어 야권표를 분산시키기는 했다.

당시 강봉균이 내세운 '한국형 양적완화'는 쉽게 말해 중앙은행이 시중의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돈을 시중에 푸는 것을 말한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은 상황이니 돈이 필요한 곳에 직접 투입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찬반 논란이 그만큼 활발했지만 과거 IMF위기 극복과정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강봉균의 정책이었기에 큰 관심을 받았다.

어쨌든 ‘돈을 풀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정책 대안이 민주당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총선 이후 여야 대결 최대쟁점은 각종 특검과 함께 추경 논란이 될 듯

여당이 총선에서 크게 패한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이 코 앞에 다가왔다. 새 정권이 출범한지 2년이 지난 뒤에야 만나는 것이니 상당히 늦은 감이 있다.

문제는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대화를 할 것이며, 또 무엇을 합의할 수 있느냐에 있을 것이다. 이제는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그런 식의 해석은 의미는 없고,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두 편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슈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전망하는 것 또한 어렵다.

우선 채상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정치적인 핫 이슈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가장 어려운 대척점에 있는 것 같다.

영수회담의 주제와 일정이 잡히기도 전에 기(氣)싸움은 벌써부터 전개되고 있다.

영수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의가 당초 22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대통령실 인사를 이유로 연기되면서 일순 만남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편성과 관련해 “이번에 (윤 대통령과) 만나면 이야기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행복지원금은 역시 이재명 대표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지역화폐로 지급되는데 총 13조원 규모의 예산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정부·여당에 요구하는 추경에는 이같은 내용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민생 의제로 내놓은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에서 400조원을 풀면서 이에 따른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경제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총선에서 대승한 야당의 25만원 전국민 지급과 같은 현금살포식 포퓰리즘 공약을 맥없이 뒤따라 가는 것도 여당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은 아예 추경 편성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패배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건전 재정을 지키고 과도한 재정 중독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고 자성하고 “(하지만)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친다. 경제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와 상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 미래에 비춰보면 마약과 같은 것이다”고 말했다.

이러던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무수석 인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과 관련해 “저는 듣기 위해서 초청을 한 것이니 어떤 의제 제한을 굳이 두지 않고 다양하게 서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말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현금지원과 같은 의제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이슈가 되는 추경 등은 문재인 정부 내내 이뤄졌지만, 그에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에 11.6조원 규모의 ‘메르스 극복용’ 추경이 이뤄졌고, 2016년에도 조선·해운업 구조 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 대책으로 11조 원의 추경이 집행되기도 했다.

추경이 진보 정권만의 전매특허는 아닌 셈이다. 언제든 경제가 어려워지면 추경은 자연스럽게 선택지의 하나로 등장한다. 추경이 ‘절대악’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집권 기간동안 150조원 가량 추경을 집행해 박근혜 정부의 추경규모 40조원을 압도한다. 그만큼 국가 재정에 부담이 커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추경에 대한 찬반입장 넘어서 서민경제 회생방안에 합의하는 모습보여야

그렇다면 추경은 과연 언제 해야 하는 것인가.

최상목 부총리는 현재의 경제성장율 전망에 따르면 추경은 불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기가 수출기업 위주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IMF는 지난 16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EO)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3%로 전망한 바 있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18일(현지시간) 아태 지역 경제 전망 브리핑에서 한국에 대해 “수출에서 긍정적인 동력이 예상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고가 반도체에 대한 강한 세계 수요에 따른 것”이라며 “(하지만)내수는 점진적으로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UBS 역시 최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2.3%로 상향 조정했다.

아울러 씨티는 2.0%에서 2.2%로, HSBC는 1.9%에서 2.0%로 각각 전망치를 높여 잡았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경제는 고물가·고금리 파고에 ‘내수엔진’은 약하고 중동사태 등 ‘지정학적 먹구름’도 낀 상황이나 IT경기와 미국경제 뒷바람을 탄 ‘수출엔진’의 화력 덕분에 연간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 2.1% 성장에 부합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항해 중인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국내외 기간들 전망에 따르면 무엇보다 미국발 IT붐으로 수출경기는 회복되지만 내수부진은 지속될 것이라는데 일치한다.

문제는 물가이다. 지난달 농림수산품과 공산품 가격이 모두 오르면서 생산자물가가 4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122.21)보다 0.2% 높은 122.46(2015년=100)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로 작년 12월(0.1%), 올해 1월(0.5%), 2월(0.3%)에 이어 넉 달째 오름세다.

국가 재정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당초 예상보다 30조원 가량 늘어난 87조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3.9%로 재정준칙 기준인 3%를 넘겼다.

국내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기업대출 잔액은 785조1515억원에 달한다. 3개월 만에 18조원가량 늘어난 규모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로는 약 71조 원 늘어났다.

올해 들어 대기업 대출 증가액도 8조원을 넘는다. 개인사업자대출을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도 9조원 가량 증가했다.

이렇게 되면 영업을 해도 은행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다.

수출경기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수는 부진한데 물가는 오르고 고금리 지속으로 한계기업도 늘어나는 추세인 것도 분명하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추경 절대불가’라는 정부· 여당도 일정부분 양보해야 하고, 야당 역시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만 자극하고 경기부양 효과가 의심스러운 단순 현금살포식 추경편성만을 고집하면 안될 것이다.

설령 추경을 집행하더라도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한계기업과 서민들을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조합이 절실한 상황이다.

총선에서 대패한 윤석열 대통령과 반대로 대승한 이재명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한국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의심을 먼저 깨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