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게 부실화된 신세계건설 살리기에 그룹 총력지원 중. 합병과 회사채매입 이어 14일에는 신세계건설 골프장과 레저시설 계열사에 또 매각
- 석달간 지원총액만 4470억원. 일단 숨통은 트일 듯. 그러나 대구 등 미분양 장기화시 밑빠진 독에 물붓기 될수도
- 이마트는 건설 때문에 12년만에 첫 적자. 이마트 자체도 여전히 고전중. 태영사태 보며 신세계 오너 일가도 긴장하는 듯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신세계그룹이 대구지역 미분양 장기화 등으로 크게 부실화된 신세계건설에 ‘밑빠진 독 물붓기 식’ 지원을 거듭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계열사들인 신세계건설과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지난 14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신세계건설의 레저사업부문 전부를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넘기는 영업양수도 계약을 의결했다고 각각 공시했다.
매각가격은 약 1820억원으로, 오는 4월말까지 관련 절차를 마무리짓는다. 신세계건설이 이번 매각으로 유동성 자금을 대거 확보하는 것은 물론 신세계그룹의 모든 레저사업 부문이 조선호텔앤리조트로 일원화하는 사업 재편 효과도 거둘 것이라고 그룹 측은 설명했다.
이번 양수도 대상이 된 신세계건설 레저사업 부문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자유CC(18홀)와 트리니티클럽(18홀), 하남·고양·안성 등 스타필드 3곳에 있는 아쿠아필드들, 그리고 조경사업 등이다.
이번 양수도가 마무리되면 신세계건설은 유동성 확보 외에 회계상 부채로 인식되어온 약 2700억원 규모의 골프장 회원 입회금 역시 소멸돼 부채 비율이 큰 폭으로 개선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작년 말 신세계건설은 다른 계열사인 영랑호리조트를 흡수 합병했다. 신세계영랑호리조트는 작년 6월 신세계센트럴시티에 리조트 사업부문 일체를 양도, 작년 말 현재로는 진행 사업이 거의 없던 회사였다.
다만 사업 양도로 확보해놓은 현금이 약 650억원 있었다. 흡수합병으로 이 자금을 신세계건설이 쓸 수 있도록 그룹이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월에는 계열사 신세계아이앤씨와 금융권을 동원한 회사채프로그램을 통해 신세계건설에 2천억 원을 또 지원해주었다.
신세계건설이 2천억 원의 사모 회사채를 발행하고, 금융기관들이 1400억 원, 신세계아이앤씨가 600억 원씩 각각 회사채를 매입해주는 구조였다. 모두 신세계건설 자력으로는 하기 어렵고, 신세계이마트그룹 신용도와 파워가 동원돼야만 가능한 자금조달구조였다.
신세계아이앤씨가 당시 인수한 600억원 회사채의 발행금리는 무려 7.6%였다. 아무리 계열사라지만 혹시라도 제기될지 모를 부당내부거래 문제를 의식한 금리 책정으로 보였다.
이 지원이 있은지 불과 한달도 안돼 이번에 다시 신세계건설의 레저부문까지 계열사에 또 양도한 것이다. 작년 말 이후 두달여 동안 그룹의 총력지원으로 신세계건설에 모두 4470억원 가량이 투입되는 셈이 된다.
이 지원들이 4월말까지 모두 완료될 경우 신세계건설은 작년 말 기준 953%에 달했던 부채 비율이 400%대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회사 운영자금에도 크게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신세계건설 여파는 그룹 곳곳에 큰 상처를 내고 있다.
특히 신세계건설의 최대주주(지분율 42.7%)인 이마트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마트는 작년에 본업인 유통업에서 그런대로 성장세를 이어가며 30조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대 매출을 거뒀다. 하지만 신세계건설이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2011년 계열 분리 이후 12년 만에 연결 기준 첫 적자를 기록했다.
신세계건설은 2023년 연결기준 매출 1조5026억 원, 영업손실 1878억 원, 당기순손실 1585억 원을 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지난 8일 공시한 바 있다. 2022년보다 매출은 4.9%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1459%, 순손실도 1014%나 각각 폭증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실적이 매출 29조4722억원, 영업손실 469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14일 공시했다. 전년대비 매출액은 0.5%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당기순이익도 2022년 1조77억원 흑자에서 1874억원 적자로 역시 적자전환했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 이마트24 등 이마트의 오프라인 유통 매장 실적을 집계한 별도 기준 작년 총매출액은 16조5500억원,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은 1880억원, 2588억으로 각각 집계됐다. 오프라인 유통부문만 따지면 여전히 흑자인데, 종속 자회사인 신세계건설 실적이 반영되면서 적자전환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세계그룹 최대 주력기업인 이마트는 고민이 많은 기업이다. 할인점 등 전통 오프라인 점포들의 성장세는 이제 한계에 부닥쳐 있고, 탈출구라며 정용진 부회장이 몇 년전부터 야심차게 추진해온 온라인 부문은 쿠팡 등의 강세에 밀려 지지부진하다.
SSG.COM은 여전히 부진하고, 작년 4분기 첫 흑자를 낸 G마켓도 아직 흑자기조가 정착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SSG.COM은 작년 4분기에도 16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작년 전체 영업손실도 여전히 1030억원에 달한다.
G마켓도 작년 4분기 2억 흑자를 기록했지만 작년 전체로는 여전히 321억원 영업적자 상태다. 두 자회사의 작년 순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3.8% 및 9.2%씩 오히려 줄었다.
전통 오프라인 부문이라는 이마트의 별도기준 작년 영업이익도 전년에 비해선 709억원이나 줄었다. 오프라인 중에서도 주력인 할인점 부문은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에 비해 858억원이 줄어든 것은 물론 매출도 2.6% 감소했다.
최근 몇 년간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던 M&A(인수합병) 등 때문에 생긴 재무부담도 여전히 크다. 야구단 인수(약 1천억원), W컨셉코리아(3천억원),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지분 추가매입(17.5%, 4,743억원) 등 외에도 특히 2021년에 있었던 이베이코리아(G마켓) 인수(3.4조원)는 2015년 MBK의 홈플러스 인수 이후 국내 소매유통시장 내 최대규모 M&A였다.
이 때문에 이마트 점포 등 보유 부동산 등을 수시로 내다 팔고 있지만 재무부담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마트의 연결기준 단기 차입금 및 사채는 23년 말 3조134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4714억원이나 더 증가했다. 장기 차입금 및 사채도 559억원 더 늘어난 4조7405억에 달한다.
주력기업 이마트의 지원여력이 이렇다보니 신세계건설에 대한 지원은 다른 우량 계열사들을 통해 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총력지원에도 신세계건설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고, 정용진 부회장 계열의 이마트그룹 지원여력이 바닥날 경우 정 부회장 여동생인 정유경 총괄사장 관할의 신세계백화점 그룹에까지 손을 뻗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센트럴시티 등은 정용진의 이마트 쪽보다 재무상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세계건설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주요 사업장이 대표적인 분양저조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 등에 유별나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타필드 등 그룹 계열사 발주 공사들이 크게 줄어들면서 안정적인 성장기반 확보를 위해 2018년 이후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수주를 늘린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주요 현장의 미분양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2022년 이후 분양을 개시한 부산, 대구는 물론 서울 사업장에서도 부진한 분양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신세계건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의 5% 이상 주요 공사들의 작년 9월 말 기준 공사 미수금은 모두 2659억원에 달한다. 공사대금을 청구해야 하는데도 여러 이유로 아직 못하고 있는 미청구공사도 426억원 규모다.
작년 9월말까지 쌓아둔 공사미수금 대손충당금은 376억원, 공사손실충당부채는 65억원 규모다. 악성 미수금 등을 장부상 손실 처리해버리는 대손상각비는 22년 1~9월 19억원에 불과했던 것이 23년 1~9월에는 463억원으로 20배 이상 급증했다.
분양이 잘 되지 않는데도 공사에 들어간 외주비와 인건비, 자재비 등이 크게 느는 바람에 신세계건설이 지출한 각종 비용은 22년 1~9월 9812억원에서 23년 1~9월 1조2503억원으로, 27%나 급증했다.
작년 9월 말 기준 신세계건설의 장단기 차입금 및 회사채 발행 잔액도 모두 3442억원으로, 22년 말 567억원에 비해 9개월 사이에 6배 가량 폭증했다. 분양은 잘 되지 않고, 들어갈 돈은 많다보니 차입을 계속 늘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기차입금과 기업어음, 회사채 금리는 연 6~7%대의 고금리가 수두룩하다. 이때문에 22년 1~9월 12.7억원에 불과했던 이자 등 금융비용은 23년 1~9월 128억원으로, 10배 가량 늘어났다. 이 모두 것들이 작년 대규모 적자의 원인들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작년 10월 말에는 경기도 구리 갈매 지식산업센터신축공사의 시행사에 대해 750억원의 책임준공약정, PF 대출금 420억원에 대해 이자지급 연대보증약정을 각각 제공하기도 했다. 이 지식센터 분양도 혹시 문제가 되면 또다시 신세계건설이 책임을 덮어쓸 수 있는 이른바 우발채무들이다.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는 작년 가을 내놓은 보고서에서 대부분 건설사 진행사업들의 분양률은 90% 안팎이나 신세계건설만은 60%대로, 분양 리스크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세계건설과 동부건설, 한신공영 등은 분양경기가 저하되고 공급과잉 우려가 큰 대구· 포항 등의 지역에 다수 사업지를 보유하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도 평가했다.
많은 건설사들이 안고 있는 부동산PF 리스크 보다는 미분양 리스크가 더 부담이라는 진단이었다.
한기평은 이달 초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원가부담 확대와 저조한 분양성과 등으로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신세계건설에 대해 신세계그룹의 지원을 포함한 추가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지금까지도 그룹이 나서 합병과 회사채 매입 등을 지원해왔지만 계속 저조한 분양성과 등을 감안하면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에서 한기평은 이달 초 현재 분양위험이 높은 대구에서 진행 중인 신세계건설 프로젝트들은 모두 6291억원에 달하며, 이중 분양률이 저조한 빌리브 헤리티지, 빌리브 루센트, 빌리브 라디체 사업장의 도급액 합산도 3300억원에 이르지만, 현재까지 이 세가지 프로젝트에 반영한 대손(충당금)은 365억원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분양경기가 단기간에 개선될 가능성이 제한적이어서 추가 대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또 작년 말 기준 신용보강 PF 우발채무는 구리갈매지식산업센터 이자지급보증(420억원), 연신내 복합개발 연대보증(120억원) 및 자금보충(300억원), 목동 KT 부지 개발사업 연대보증(500억원) 등 모두 1340억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중 구리지식산업센터는 지난 1월 준공 예정으로, 점진적인 대금 회수가 예상되나 미착공 상태인 목동부지사업과 분양률이 저조한 연신내 개발사업은 사업 진행경과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아직 우발채무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옛 포항역 부지개발사업(도급액 4645억원)도 신세계건설이 제공한 책임착공을 미이행할 경우 인수할 채무 1700억원의 차환 여부와 착공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기평은 밝혔다. 현재 토지보상 완료 이후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으로, 2월 중 브릿지론 대출만기가 도래한다.
이런 신세계건설을 그룹 주력사인 이마트부터가 지원에 나서야 하지만 이마트의 경우 오프라인 유통사업의 판매관리비 및 식음료부문의 원재료비용 증가, 건설사업의 대규모 영업적자 등으로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는 점은 부담요인이라고 한기평은 밝혔다.
그러면서 한기평은 신세계건설 레저부문이 보유한 자유CC와 트리니티클럽 등을 통한 자산 기반의 재무융통성이 인정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그룹의 지원 가능성은 아직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레저부문 카드를, 보고서가 나온지 불과 보름도 안돼 이번에 써먹은 셈이다.
최근 몇 달간 그룹의 지원으로 조달한 4470억원으로,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1700억원 가량의 차입금 상환과 이자 등 금융비용, 운전자금 등은 어느 정도 감당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금리 지속과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미분양사태가 계속 장기화할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 4470억원도 곧 바닥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계속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주로 각종 계열사 공사 전담 목적으로 만들었던 건설회사 하나가 이렇게 애물단지가 될 줄은 정용진 부회장도, 신세계그룹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태영 오너 일가가 크게 혼쭐이 나는 것을 신세계 오너 일가도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미국 기준금리가 인하 모드로 뒤바뀌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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