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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흔들리는 LG헬로비전...‘승자의 저주’ 우려가 현실로

- LG헬로비전, 인수 후 7천억 손상차손
- 매년 적자 누적, 부채비율 180% 급등
- 신사업 확대에도 수익성 회복 난항

 

엘지헬로비전 서울 상암동 본사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2019년 12월 LG그룹의 이동통신망사업자(MNO) LG유플러스가 당시 1위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CJ헬로비전을 전격 인수했다. 회사명은 CJ헬로비전에서 LG헬로비전으로 바뀌었다. LG유플러스가 인수한 지분은 50%+1주에 인수가격은 8000억원에 달했다.

이 인수로 LG헬로비전이 MSO업계 1위가 된 것은 물론 케이블과 IPTV, 위성방송까지 합친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수에서도 LG유플러스-LG헬로비전 연합이 업계 4위에서 2위(지금은 다시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일부 언론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젊은 패기가 이룬 쾌거라는 식으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2018년 그룹 회장 직에 오른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화학의 각종 사업재편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 M&A(인수합병)도 당시 구 회장의 큰 관심사들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9년 인수 당시 엘지헬로비전의 순자산가치와 영업권 관련 공시(엘지유플러스 사업보고서)

 

특정 기업이 다른 기업을 장부가 이상의 가격으로 인수할 경우 인수가와 장부가의 차액은 보통 회계상 무형자산인 영업권으로 처리된다. 일종의 권리금(프리미엄)으로, 미래의 경제적 효과를 현재 장부에 선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9년 LG유플러스 사업보고서를 보면 당시 인수한 지분 50%+1주의 순자산 공정가치는 2686억원이고, 나머지는 영업권으로 5314억원으로 평가됐다. 프리미엄을 붙여 진짜 기업가치보다 3배 가량 비싸게 샀다고도 볼 수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이 영업권에 대해 매년 자산가치 손상검사를 시행, 현금창출단위별 회수 가능액이 장부가액에 많이 미달한다고 판명나면 손상차손을 인식하도록 하고 있다.

손상차손은 장부상 기타영업외비용으로, 이 비용이 많을수록 그만큼 당기순익이 줄어들게 된다.

인수한 회사가 잘 성장해 인수 때 추정했던 기업가치가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경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손상차손을 인식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여서 손상차손을 계속 인식해야 한다면 인수한 기업의 시장가치나 미래전망이 그만큼 인수 때 기대치보다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M&A후 손상차손 액수나 횟수는 해당 M&A의 단기적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보통 활용된다. 손상차손 인식을 거의 하지 않거나 덜할수록 성공한 M&A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엘지헬로비전 23년 사업보고서의 영업권 손상차손 관련 공시 출처


CJ헬로비전(현 LG헬로비전)은 인수 당시에도 너무 비싸게 산게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던 M&A 사례 중 하나다.

MSO들이 한창 잘 나갈 때는 보통 ‘방송국’이라 불리는 수많은 PP(방송프로그램공급자)들이 엄청난 로비를 벌여도 앞자리 채널번호를 너무 따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 장악력과 파워가 대단했다.

하지만 IPTV가 MSO 시장을 속속 잠식하고 유튜브, 넷플릭스 등 다른 뉴미디어들의 등장으로 유료방송시장 자체가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이 ‘위세’는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 사라졌다. 당시 MSO 1위, 전체 유료방송시장 2위이던 CJ가 과감히 엑시트(시장 탈출)한 이유였다.

LG헬로비전이 인수 이후 지금까지 인식한 영업권 손상차손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LG헬로비전은 인수 잔금 지급 직후인 2019년 말에 일찌감치 820억원의 영업권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인수하자말자 회사를 다시 살펴보니 자산가치 과장이나 미래사업 전망 불투명이 뚜렷이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지금까지 2021년 한해만 빼고 계속 매년 말 대규모 영업권 손상차손을 계속 인식했다. 2020년의 3213억원을 비롯, 2022년 600억원, 2023년 845억원에 이어 작년에도 1360억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인수 5년 만에 손상차손 누계액이 무려 7007억원에 달한다. 인수 초기 평가됐던 영업권이 모두 없어진거나 다름없다.

엘지헬로비전의 영업실적 추이(한신평 정리)

 

CJ그룹 시절이던 2018년 이 회사의 연결 영업이익은 672억원이었다. LG 인수 이후 2019년에는 292억원으로 확 줄었다가 2020년 342억원, 2021년 445억원, 2022년 538억원, 2023년 474억원 등으로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작년에는 135억원으로 다시 고꾸라졌다. 작년 영업이익 감소율이 72%에 달했다.

주력사업인 케이블TV 외형 축소, 홈쇼핑 송출수수료 인하,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 희망퇴직 등 인건비 증가, 방송 외 부문 상품매출원가 상승 등이 겹친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기타영업외비용인 영업권 손상차손이 매년 평균 1000억원 이상 발생하다보니 당기손익은 2021년(269억원 흑자)만 빼고 모두 적자였다. 2018년 391억원 흑자에서 2019년 942억원 당기순손실로 바뀌었고 2020년 -3128억원, 2022년 -260억원, 2023년 -453억원 등의 순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흑자 규모도 급감한 작년에는 당기순손실 규모가 1062억원으로 더 커졌다. 인수 이후 영업으로는 그나마 소폭 흑자를 계속 내왔지만 거의 매년 대규모 영업권 손상차손을 인식하다보니 당기손익 역시 거의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산 및 자본 감소의 영향으로 부채비율도 2023년 말 133%에서 작년 말에는 180%로 크게 치솟았다. 계속된 손상 인식으로 자산규모가 감소함에 따라 차입금의존도 역시 2023년 말 39%에서 작년 말에는 44%선으로 높아졌다.

물론 거듭되는 손상차손 인식에는 워낙 보수적인 LG그룹 경영기조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영업권 회계 처리시 할인율을 높게 매겨 아주 보수적으로 손상차손을 조기인식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엘지헬로비전의 재무안정성 추이(한신평 정리)

 

하지만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거의 매년 대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하는 것을 보면 MSO사업의 현실과 비전이 너무 안좋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5년이 지난 지금 보더라도 너무 비싸게 샀다는 평가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LG헬로비전은 인수 직후부터 기존의 유료방송과 알뜰폰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다른 곳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왔다. 초고속인터넷이나 인터넷전화, 렌탈·할부판매, 광고사업 등이다. 영업이익 규모 등으로 볼 때 신사업들도 썩 잘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신용평가도 최근 LG헬로비전의 작년 잠정영업실적 관련 보고서에서 LG헬로비전이 방송 외 사업 확장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렌탈사업과 지역기반사업의 매출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MVNO(알뜰폰) 사업 역시 이익변동성이 내재된 점 등을 감안할 때 단기간내 영업수익성이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최근 수 년간 계속 인식한 영업권 및 방송사업 관련 유무형자산 손상차손과 관련해서는 비현금성 손실이기는 하나, 미래 발생손실의 선반영이라는 성격을 감안하면 케이블TV 사업에서의 실적 개선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손상차손 인식에 따른 향후 상각비 감소가 영업비용 축소에 일부 기여할 것으로는 예상된다면서 상각비 감소 효과와 더불어 작년 4분기 중 실시한 희망퇴직을 비롯한 비용 효율화 효과, 방송 외 사업부문 성과 등에 따른 이익창출력 개선여부와 손상인식으로 저하된 재무안정성 회복 여부를 중점 모니터링해 신용도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