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관광개발 및 계열사, 제주리조트·동화면세점 지원 집중…재정 ‘악화’
- 계열사 자산과 주식 담보로 잡혔는데, 대규모 적자 누적
- 롯데 오너가인 김 회장 부인, 집 담보로 아모레퍼시픽에서 거액 차입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롯데관광개발 뿐아니라 다른 계열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자체 실적들도 대부분 좋지 않은데다 제주 복합리조트나 동화면세점 등 계열사 지원에 총대를 메고 있다.
광화문빌딩 관리업체인 동화투자개발의 작년 말 누적결손은 2201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빌딩 관리로 영업이익은 내지만 롯데관광개발의 적자 지속으로 지분법손실이 매년 400억원을 넘는 바람에 작년에만 38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작년 매출 107억원 밖에 안되는 이 회사의 단기대여금 잔액이 작년 말 무려 1155억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차입이 필요 없어 보이는 이 회사의 장단기차입금도 1237억원에 달한다.
과거 빌딩 임대관리와 주차 수입 등으로 벌어둔 돈으로는 턱도 없어 대규모 차입까지 해가며 계열사와 오너 일가 지원에 동원된 대표적 계열사인 셈이다.
이 회사로부터 단기로 돈을 빌린 곳을 보면 김기병 회장 170억원, 신정희 여사 12억원, 차남 김한준 20억원, 롯데관광개발 277억원, 엘티엔터테인먼트 5억원, 용산역세권개발 6억원, 동화면세점 664억원 등이다. 이중 동화면세점 대여금은 664억원 전액에 대손충당금을 설정해놓고 있다.
전액 모두 돌려받기 어렵다고 보고 미리 손실처리한 것이다.
때문에 이 회사의 적자는 더 늘었을 것이다. 미수이자 196억원 중 172억원에 대해서도 충당금을 설정해두고 있다. 이것도 동화면세점에서 이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대부분 손실처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는 롯데관광개발과 동화면세점을 위해 장부가 1493억원 짜리 광화문 동화빌딩을 담보(1421억원)로 제공 중이다. 자기 빌딩 마저 대부분 담보로 잡혀있다.
또 회사가 보유중인 롯데관광개발 주식지분 1490만 주 중 781만 주도 김기병 회장에게 빌려주거나 사모펀드에 환매조건부로 매각한 상태다.
모두 롯데관광개발과 동화면세점 지원 때문이다. 롯데관광개발 적자 때문에 자신도 지분법 손실을 입어 적자 상태인데다 보유 빌딩과 주식은 이처럼 담보로, 또 대여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 상황이다.
과거 유커들이 대거 몰렸던 광화문 동화면세점은 면세점 경기 악화로 이제는 거의 폐허 상태다.
2022년 말 1051억원이던 자산은 작년말 400억원으로 크게 쪼그라들었고, 부채도 1599억원에 달해 자기자본이 -870억원에 이른다.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누적적자에 따른 누적결손도 1104억원에 달한다. 동화투자개발에서 빌린 단기차입금 664억원은 거의 상환불능 상태이고, 세들어 있는 광화문빌딩에 밀린 수도광열비, 이자 등 미지급비용만 198억원에 달한다.
동화면세점은 동화투자개발 말고 아모레퍼시픽에서도 259억원을 차입 중이다. 차입금 담보로 동화투자개발 빌딩(108억원)과 장남 김한성 주택(54억원), 동화투자개발의 롯데관광개발 주식(44억원), 신정희 여사 사직동 집(300억원), 신정희-김한성의 롯데관광개발 주식(280억원) 등 모두 786억원이 담보로 잡혀있다.
제주 리조트 뿐 아니라 동화면세점 살리기에도 전 계열사와 오너 일가가 총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외부감사인은 이 회사에 대해서도 계속기업가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계열사들 중 제주 리조트 카지노 자회사인 엘티엔터테인먼트 정도만 카지노 매출 급증에 힘입어 그나마 앞날이 밝은 편이다.
초기 투자 부담 등으로 아직 798억원 누적결손에 완전자본잠식 상태이지만 매출이 2022년 436억원에서 작년 1524억원으로 급증하고,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19억원 적자에서 157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작년 당기순익도 28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회사도 발행주식 전량이 모기업 롯데관광개발 담보로 잡혀있고, 여기에 800억원의 지급보증까지 제공 중이다.
김기병 회장 일가의 보유 주식이나 재산들도 차입에 총동원되다보니 성한 것들이 거의 없다.
지난 9일 공시 기준 롯데관광개발의 최대주주는 김기병 회장(86)으로 지분율은 23.69%다. 그 다음은 동화투자개발(19.64%), 차남 김한준(53세· 8.77%), 장남 김한성(54세·2.49%), 부인 신정희씨(78세·1.85%) 등의 순이다. 부인 신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막내 여동생이다.
김 회장의 지분 23.69% 중 22.83%는 제주 복합리조트 건설을 위해 금융기관들에서 빌린 대출의 담보로 잡혀 있다. 또 손위 처남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에게서 작년 6월 빌린 100억원의 담보로도 지분 0.26%가 잡혀 있다.
이 100억원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계열사 대여금이나 소송 관련 자금 등에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회장은 이렇게 멀쩡한 지분이 거의 없게 되자 동화투자개발이 보유한 롯데관광개발 지분 3.15%를 주식대차 형식으로 빌려 쓰고 있기도 하다.
부인 신정희씨와 장남 김한성이 각각 보유한 롯데관광개발 지분 1.85%, 0.78%는 아모레퍼시픽으로부터 빌린 280억원의 담보로 잡혀있다. 재벌가 출신인 신 여사가 아모레퍼시픽 오너 일가와의 개인적 인연으로 빌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식으로 김기병 회장 일가가 주식담보로 받은 대출금만 모두 9377억원에 달한다.
동화투자개발이 보유한 롯데관광개발 지분 19.64%도 담보대출용(12.31%), 주식대여(3.15%), 환매조건부주식매매계약(4.53%) 등으로 이러저리 찢기다보니 성하게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중국의 갑작스런 정책 변화나 지정학적 이유 등으로 만약 제주 드림타워리조트가 비상 상황에라도 다시 빠진다면 롯데관광개발 및 계열사들과 김 회장 일가의 자산이나 재산 대부분이 금융기관의 담보권 행사로 모조리 금융기관 소유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는 안가더라도 당장 몇 년 안에 실적이 크게 나아지지 않아 차입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도 일부 금융기관들이 ‘기한이익상실’ 등을 주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당장 올해부터 수백억원, 수천억원씩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면 순차적으로라도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개 카지노와 호텔이 한 해 1600억원이 넘는 금융비용을 감당하면서 수백억원대 이상 순익을 남기기는 쉽지 않다. 유커들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몰려와도 될까말까다. 유커들의 소비 행태도 이미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그렇더라도 현재로서는 순익을 최대한 내 원리금을 조금씩 갚아 나가면서 채권단과 리파이낸싱 협상을 통해 금리도 계속 낮춰나가는 방법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럴려면 드림타워 실적은 무조건 올해부터 크게 올려놓고 봐야한다. 중국 시진핑 정권이 계속 친 제주도 정책을 유지하고 확대해줘야 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사드와 코로나 사태 등으로 롯데관광개발과 동화면세점 등의 재무여력이 바닥 난 상태에서 1조원 가까운 차입으로 복합리조트사업을 강행한 것이 무리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옛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관료 출신인 김 회장은 36세 때인 1974년 공무원을 그만 두고 당시 롯데그룹 여행 계열사이던 롯데관광 회장으로 부임했다고 한다. 손위 처남인 신격호 롯데 창업자의 권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2년에는 롯데그룹에서 독립(계열분리)했다.
당시 롯데관광개발은 큰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실적은 탄탄했다. 1992년에는 동화면세점까지 설립해 일가가 먹고 살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야심만만했던 김 회장은 거기에 안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자기 덩치보다 훨씬 큰 대형 건들에 여러번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자기자금으로는 턱도 없어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일을 크게 벌이다 곳곳에서 복잡한 문제가 생기며 실패를 거듭했다.
첫 실패는 서울 무교동의 서울파이낸스센터(SFC) 빌딩이다. 호텔 재개발 사업권을 인수한 김 회장이 대형 오피스 빌딩으로 바꾸어 개발하긴 했지만 자금난과 여러 잡음에 IMF 외환위기까지 겹치자 거의 준공된 건물을 싱가포르투자청(GIC)에 팔고 탈출(?)해야만 했다.
SFC 못지않게 김 회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포천 관광휴양도시(에코디자인시티) 개발 사업도 삽 한번 들지 못하고 무산됐다. 총 투자계획만 3조4000억원에 달했던 이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2012년 아예 취소됐다.
김 회장 실패사의 백미는 이명박 정부 때 유명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31조원에 달했던 이 사업은 부지 제공자이자 최대주주인 코레일과 시행사, 투자자 간의 계속된 알력에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표류에 표류를 거듭했다.
2대 주주에 주관사이던 삼성물산이 나가 떨어지자 그 자리를 김 회장과 롯데관광개발이 덥썩 물었지만 결국 사업은 사실상 파산으로 끝났다. 170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던 롯데관광은 부도위기까지 맞아 2013년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해야만 했다.
당시 업계는 자본금 55억원, 연 매출 400억원 가량에 대형 개발사업 경험도 없는 여행사가 덥썩 달려들 사업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김기병 회장의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경영방식이 빚은 참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김 회장은 본인 보유 동화면세점 지분 19.9%를 600억원에 호텔신라에 매각하는 등 사재까지 동원해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을 겨우 막고 기업회생절차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다행히 그 후 여행 경기가 살아나고 중국 관광객들로 면세점이 호황을 맞으면서 김 회장 기업들은 다시 안정세를 찾는 듯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거기서 그대로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제주도에 사둔 땅에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짓는 사업(제주드림타워)을 2015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9000억원 이상을 들여 호텔, 카지노, 쇼핑몰 등 복합리조트를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도 중국 자본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각종 민원과 인허가 지연 등에 시달리면서 결국 대부분 투자금을 김 회장과 롯데관광개발이 조달해야만 했다. 롯데관광개발은 물론 동화투자개발, 동화면세점 등 김 회장 일가 소유의 모든 기업들이 총동원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제주드림타워 공사기간 중에 사드 사태에 코로나 사태까지 연이어 터졌다. 그나마 탄탄했던 여행사와 면세점 실적은 엉망이 됐다. 영업 악화에 제주사업 빚더미로 전 계열사들이 거의 아사 직전까지 몰렸다.
제주드림타워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간신히 준공됐지만 중국 손님들이 곧 바로 대거 몰려올 턱이 없었다.
제주드림타워도 그후 지금까지 대규모 적자를 지속했다. 김 회장 기업들 거의 모두가 돌려막기에 돌려막기로 겨우 겨우 연명해온 지난 몇 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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