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 저축은행사태 조짐
- 금융당국, “우려 수준 아냐, 관리 가능 수준”
- 부실 ‘속도’ 주목, 구조조정 본격화시 손실 확대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지난 2011년 제대로 된 검토없이 무분별하게 부동산대출을 크게 늘렸다가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고 영업정지 또는 문을 닫게 된 저축은행들이 16곳이나 무더기로 발생했던 적이 있다. 이후 5년 동안 문닫은 저축은행들까지 모두 합하면 30곳에 달했다.
이때 5000만원 초과 예금을 떼이거나 피해를 본 개인이 10여만명, 피해 예금 합계가 1조원이 넘었다. 수많은 부실 책임자들이 감옥을 갔다. 여러 이유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을 보통 ‘저축은행 사태’ 또는 ‘1차 저축은행 사태’라고 부른다.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1년 6월말 저축은행들의 평균 연체율은 25.1%, 평균 고정이하자산비율은 19.06%에 달했다. 평균 BIS자기자본비율은 1.8%에 불과했고, 1% 밑으로 떨어진 저축은행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비해 저축은행들의 자산건전성이 급속도로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올 1분기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BIS자기자본비율은 아직 14.69%에 달한다. 당국의 권고선인 11%를 훨씬 웃돈다.
또 올 1분기 79개 저축은행들의 고정이하자산비율을 합해 79로 나눈 단순합산 평균비율은 12.67%, 평균 연체율은 10.83% 정도로 나온다. 작년 말보다도 크게 높아진 수치이긴 하지만 2011년 수치들에 비하면 아직 한참 거리가 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 등 비상시 감당 능력을 보여주는 유동성비율도 대부분 저축은행들이 아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누적적자 등으로 사내유보(이익잉여금)가 결손이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저축은행도 79개 저축은행들 중 한자리수로 몇 곳에 불과하다.
현재 저축은행 부실 급증의 주 원인인 부동산PF대출과 저신용 차주 개인대출 부실화 등도 미국 기준금리 등이 다시 내려가고, 부동산경기와 실물경기가 풀리기 시작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상황이 급격히 호전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물론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계속 지연되면서 당분간 경기회복은 쉽지 않다는 부정적 시각들이 아직 적지 않지만 전세계적인 금리인하는 이제 ‘시간의 문제’다. 언제 금리인하가 본격 단행될지만 현재 알 수 없을 뿐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아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과 저축은행업계는 1차 저축은행 사태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후 그동안 업계 체질이 많이 개선되었고, 실제 부실관련지표들도 아직 2011년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기 때문에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으며, 여전히 관리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건전성이 양호한 은행과 보험사가 PF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 PF대출의 만기가 특정 시점에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점 등도 당국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있는 주요 근거들이다.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 회장도 지난달 “특히 6월에 시행 예정인 부동산PF 1차 사업성 평가 등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저축은행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시각이 있으나 저축은행업권은 충분한 자본적정성과 그동안의 선제적 충당금 적립 등으로 충분히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상황으로 판단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부실 증가 속도가 우선 문제다. 2022년 말 4.08%에 불과했던 79개 저축은행들의 평균 고정이하자산비율은 작년 말 7.75%로, 1년 동안 3.67%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3월 말에는 12.67%로, 올들어 3개월 동안 4.92%포인트가 더 뛰었다.
작년 1년 동안 상승률도 가팔랐지만 올들어 3개월 상승률이 작년 1년치 상승률을 벌써 넘어서면서 더 가팔라진 것이다. 이 수치는 또 전체 저축은행 평균 통계가 처음 공식화한 2015년 말의 10.24%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물론 금융당국 설명처럼 신속한 부동산PF부실 정리를 목표로, 작년 말부터 특히 저축은행에 대해 선제적으로 모든 부실을 까라고 당국이 압력을 가한 영향도 있다. 금융당국은 본PF 전환이 상당 기간 지연된 브릿지론 예상손실을 100% 인식한 점과 부실PF 사업장 정리에 시간이 필요했던 점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없던 부실이 아니라 그동안 사실상 숨겨진 저축은행들의 부실이다. 이달부터 부동산PF 사업장들의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이를 위한 사업성 재평가가 시작되면 부실 수치는 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사업성 새 평가기준에 따라 문제 사업장들의 평가가 강등되면 저축은행들은 또 충당금을 추가 적립해야 되고, 이는 바로 손실로 연결된다. 고정이하자산비율도 그만큼 더 높아진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향후 충당금 추가 적립으로 추정되는 저축은행업계의 최대 손실액만 4.8조원에 이를 것으로 최근 예상한 바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부동산PF대출의 고정이하자산비율과 연체율이 이미 15%를 넘은 저축은행들은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 21곳에 이른다. 30%를 넘는 곳도 7곳이다. 특히 분양경기가 심각한 지방 소재 저축은행들이 대부분이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특히 이들 저축은행들의 부실 수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당국의 강한 압력에도 아직도 저축은행 전반에 숨겨진 잠재 부실들이 많아 보이는 점도 문제다. 작년말 워크아웃 신청 직전까지만 해도 태영건설의 회계장부는 거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깨끗해 보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건설사나 금융회사들은 업종 특성상 부실을 끝까지 감추려는 속성이 강하다.
지난 1분기 저축은행들의 통일경영공시나 감사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부상으로도 분명 부실이 많아 보이는데도 고정이하자산비율이나 연체율 수치는 의외로 낮고, 이에따라 충당금 적립도 말도 안되게 작은 저축은행들이 여럿 있었다.
올들어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더 커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금리인하와 이에 따른 업황 개선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저축은행들의 부동산금융 비중이 아직도 너무 높은 점, 저축은행의 부동산금융 뿐 아니라 일반개인사업자 대출이나 저신용자들에 대한 일반신용대출 등의 부실수치들까지 최근 높아지고 있는 점 등도 우려되고 있는 부분들이다.
금융당국 발표 등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체 금융회사들이 취급한 부동산PF대출 등 부동산금융 규모는 모두 135조원 선이다. 이중 저축은행 취급분은 모두 22조원으로, 전체의 16% 정도다. 하지만 저축은행 총자산 중 부동산금융 비중은 18%에 달한다. 신용카드 등 여신전문업체들의 7.4%, 증권사의 4.1% 등과 비교해 과다하게 높은 수준이다.
총 대출 중 부동산PF대출, 건설업 및 부동산업 대출 등 부동산관련대출의 비중이 작년 이후 많이 낮아졌다지만 아직도 정도 이상으로 높은 저축은행들도 수두룩하다. 지난 3월말 기준 이 비중이 50%가 넘는 곳이 18곳에 달한다. 30~40%대는 부지기수다.
지방소재 저축은행들일수록 부동산금융 비중이 높은 곳이 많지만 수도권 소재의 멀쩡한 저축은행이나 중대형급 저축은행들 중에서도 부동산금융 비중이 과다하게 높은 곳이 적지 않다.
서울 소재 조은(56%), 대신(55%), 스카이(53%), 바로(55%), 더케이(49.8%), 유안타(47%), 푸른(47%), NH(45%),민국(40%), DB(40%) 저축은행 등과 상상인(42%), 상상인플러스(44%), 한국투자(40.8%), 인천 모아(47%) 저축은행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건설 및 분양경기는 고금리도 고금리지만 건축자재와 인건비 폭등 등으로 사업성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금리인하로 설령 실물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건설경기 회복은 그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보고있는 이유다.
금융계의 한 전문가는 “부동산금융 비중이 여전히 과다하고 부실지표들도 안좋은 일부 저축은행들 중에서 올 하반기부터 이상 징후 저축은행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나 대형 저축은행들의 문제 저축은행 인수합병을 적극 독려하고, 저축은행들은 구조조정과 부실사업장 정리 등에 적극 협조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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