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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ZIM과 HMM, 희비 갈린 서학·동학 개미...무슨 일?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욕거래소에 상장된 ‘ZIM 인티그레이티드 시핑 서비시스’의 주가는 올들어 거의 2배 넘게 올랐다. 12월 마지막 거래일 9.87달러였던 주가는 지난 29일 21.25달러가 됐다.

국내 대표적인 해운주인 HMM은 올들어 수익률이 마이너스 10% 안팎이다. 12월 말 종가 1만9580원에서 29일 종가는 1만8180원이니. 같은 해운주인데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안도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29일 보고서에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이하 SCFI)는 5월 말 기준 2703pt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39%, 전년 동기 대비 175% 상승했다. 유럽 노선 운임이 전월 대비 47%, 전년 대비 297% 상승하며 전체 지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3년 12월 말부터 홍해 지역의 수티반군 공격이 시작되며 선박들이 희망봉 우회를 시작했고, 이에 따라 유럽향 컨테이너 운임지수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어 HMM에게는 일단 단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KOBC. 이하 해진공)가 주간 단위로 발표하는 K-컨테이너해상운임종합지수(KCCI)는 지난 27일 3367을 기록하며 지수 발표(2022년 11월 7일) 이후 최고 기록을 일주일만에 경신하면서 지난달 22일 이후 6주 연속 상승세다. 부산항을 출발하는 13개 글로벌 항로 운임이 모두 올랐다.

대신증권은 이같은 상황을 반영해서 지난 28일 HMM의 목표주가를 기존 대비 17.6% 상향한 2만원으로 제시했고, 투자의견 '시장수익률'을 유지했다.

하지만 HMM 소액주주들은 이런 보고서를 보면서 오히려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시황이 크게 개선되었는데 목표주가가 지난해 말 수준이라니?

한때 경쟁사였던 ZIM에 투자한 서학 개미에 비하면 HMM에 투자한 동학 개미들은 올들어 실망과 좌절을 맛보고 있어 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ZIM은 올들어 작년의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는 실적 양호와 함께 고배당주로서 매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반면에 HMM의 경우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하림에 대한 매각 실패와 한국산업은행 등이 보유한 영구채 추가 상장 등 내부적인 요인 외에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해운 동맹의 흐름에서 갈수록 소외되고 있어 주가의 우상향을 방해하고 있다.

HMM은 올해 1분기 매출 2조3299억원과 영업이익 407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대비 매출은 12%, 영업이익은 33% 증가했다. 이같은 실적은 글로벌 경쟁 선사들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주가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해 한때 테슬라를 본떠 ‘흠슬라’로 불리던 때의 명성이 아쉬운 것이다.

반면에 팬데믹 때인 2021~2022년 주가가 5배 이상 뛰며 서학 개미 사이에서 ‘짐슬라(짐+테슬라)’로 불리던 ZIM은 제 명성을 되찾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흠슬라’와 ‘짐슬라’의 운명을 엇갈리게 만든 것일까.

◇HMM 매각 지연에 이은 영구채 문제, 해운동맹 경쟁 등이 겹악재로 작용

HMM은 지난달 22일 중도상환청구권을 행사한 총 1000억원 규모의 제194회 무보증 사모전환사채(CB)에 대해 채권단이 주식 전환권을 행사했다고 20일 공시했다.

대상 주식수는 2000만 주, 주당 전환가액은 5000원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합산 지분율은 57.9%에서 59.1%로 1.2%포인트 상승한다.

HMM 영구채의 상환 시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올 6월 2000억원, 10월 6600억원, 내년 4월 7200억원 등 총 1조5800억원 규모다. 이 영구채들이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면 산은·해진공의 지분율은 71%대까지 높아진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산은과 해진공의 HMM 지분율 상승이 매각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하림의 경우 60%를 밑도는 채권단의 지분을 인수할 6조원을 조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구심 때문에 매수가 불발되었는데 그보다 훨씬 채권단 지분이 올라가면 HMM의 매각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주식시장에서 주식수 증가는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다. 실적이 아무리 좋아져도 유통 주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주가가 실적을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만약 해운 시황이 다시 악화된다면 그나마 유지되던 주가도 더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HMM 주가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이밖에도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해운동맹의 재편움직임이다.

지금까지 해운동맹은 2M(MSC, 머스크)과 오션(CMA CGM, 코스코, 에버그린), 디 얼라이언스(ONE, HMM, 양밍) 등 크게 3개 동맹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간에 합종연횡이 활발해지고 있다.

선복량 1위 MSC와 10위인 ‘짐슬라 ZIM’이 힘을 합치고 디 얼라이언스에서 탈퇴한 선복량 3위 ‘하파크-로이트’는 2위의 머스크와 ‘제미나이(Gemini)’라는 새로운 동맹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오션(CMA CGM, 코스코, 에버그린) 얼라이언스는 2032년까지 동맹을 이어가기로 했다.

제미나이가 아시아~유럽 노선에서 부산항, 대만 가오슝항 등을 주요 허브(hub)항에서 제외하기로 했지만 만약 HMM에게 제휴를 제안하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다. 제미나이 연합은 HMM이 보유하고 있는 대형 선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난 2월 19일에는 롤프 얀센 하팍로이드 CEO가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했으며, 박진기 HMM 부사장을 비밀리에 만난 후 곧바로 출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부산항을 모항으로 삼는 HMM 입장에서는 부산항을 패싱하려는 제미나이와 해운동맹을 결성할 여지가 사라졌다는 분석이 더 유력하다.

문제는 또 있다.

디 얼라이언스 소속의 일본 컨테이너선사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CEAN NETWORK EXPRESS·ONE)가 비동맹사인 대만의 완하이 라인과 협력해 아시아-북미서부 항로를 운항하기로 한 사실이 전해졌다.

그렇다면 HMM이 소속된 디얼라이언스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HMM은 초대형선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해운동맹은 서로 짐을 나눠준다. 동맹이 와해되거나 축소된다는 것은 HMM으로서는 위험 분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회의 확대도 어렵다.

특히 얼라이언스가 취약하면 화주들의 불신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고정된 고객이 사라져가는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한국 해운산업은 이미 오래 전에 한진해운 사태를 겪으면서 화주들의 불신을 어느 정도 받아오기는 했다. HMM이 많이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 HMM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사 머스크에서 배우고 지배구조도 안정화해야

덴마크에 본사를 둔 글로벌 2위의 해운 대기업 머스크는 지난 2014년 본격화된 한진해운 몰락의 주범이기도 하다.

당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추가하고 운임을 크게 깍아내면서 한진해운 등 한국 해운사들을 코너에 밀어넣은 머스크는 급기야 2016년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동시에 인수하려고 시도를 했었다.

머스크가 주도하는 제미나이 동맹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기획하고 있는지 그 속셈을 알 도리는 없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역시 제미나이 동맹의 한 축인 독일 선사 ‘하파크-로이트’는 작년 HMM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인수 가능성이 없어지자 해운 동맹 결별에 나섰고, 동반자에서 경쟁자가 됐다. 하파크 로이트는 직전까지 HMM과 같은 디 얼라이언스 소속이었다.

이처럼 우리 해운산업과는 항상 적대적 위치에 서있었던 머스크는 단순한 해운 회사가 아니다.

머스크는 공급망 지배력 강화를 목표로 해운과 물류를 모두 아우르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어찌 보면 문어발식 확장인데 머스크는 이커머스, 풀필먼트, IT 플랫폼 등에도 손길을 펼치고 있다.

머스크는 2019년 미국 세관통관기업 밴디그리프트를 인수한 데 이어 홍콩계 물류업체 LF 로지스틱스를 36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HMM 역시 변동성이 강한 국제 해운시황에만 의존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지배구조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루 빨리 주인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향후 HMM의 재매각 시 지배구조는 “국내 기업인 포스코와 독일 선사인 하파크 로이트의 지배구조를 적절히 혼합한 ‘민간+공공’의 소유구조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구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한국해양기자협회가 주최한 '흔들리는 해운동맹···HMM, 어디로 가나' 포럼 주제 발표에서 이같은 주장을 했다.

구 회장이 예로 든 하파크 로이트 주식은 여러 명의의 공·민간 투자자가 소유하고 있다. 오너 체제는 물론 아니다.

이기호 HMM육상노조위원장도 “(HMM 예상 매각가) 8조~9조원 중 자기자본 60%를 이상 투입해서 인수할 기업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본다”며 “포스코와 KT와 같은 '국민기업' 형태로의 전환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HMM이 실적에 걸맞는 주가를 회복, ‘짐슬라 ZIM’과 맞서는 ‘흠슬라’가 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여러 문제가 단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채권단의 영구채 문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무엇보다 변화하는 해운동맹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또한 사업다각화는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위험분산과 기회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하루라도 빨리 미래 지향적인 HMM 지배구조에 대한 복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