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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트럼프 재소환한 건 피자게이트·진실의 쇠퇴 아닌 '물가 폭등'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도널드 트럼프는 과연 미국 대통령에 다시 당선될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회사인 블랙스톤의 창립자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전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위한 기금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유태계인 슈워츠먼은 “반유대주의가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슈워츠먼의 트럼프 지지는 월스트리트의 유태계 거부들이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합주 7곳 중 5곳에서 앞서 나갔다.

지난 7~13일 블룸버그통신과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애리조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네바다 등 7곳 49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네바다, 미시간 2곳을 제외한 5곳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압도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유태계에 이어 흑인 유권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가 않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흑인 유권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 77%, 트럼프 전 대통령에 18%의 지지를 보였다.

지난 2020년 바이든 대통령에게 92%,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8%의 지지를 보낸 것에 비하면 흑인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율이 크게 올랐음을 알수 있다.

무엇보다 젊은 흑인층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눈에 띈다. 50세 미만 흑인 유권자의 68%는 바이든 대통령을, 29%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각각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가 않다.

2020년 대선에서 35세 이하 젊은층 유권자들은 바이든에게 트럼프보다 20%포인트 넘게 표를 몰아주었는데, 최근 조사를 보면 그 격차가 8~9%포인트, 즉 한자리 격차로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사람들은 트럼프의 재집권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제 ‘피자 게이트’에만 도움을 받지는 않는다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말 X(구 트위터)에 5회 가량 “피자 게이트는 진실”이라는 트윗을 게재해 파문을 일으켰다.

‘피자 게이트’(Pizzagagte)는 과거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에 머스크의 발언은 결국 트럼프의 대권 도전을 지지하는 선언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2016년 말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와 그의 선거대책본부장 존 포데스타가 워싱턴DC의 한 피자집 지하실에서 소아성애 행위를 즐기고 인신매매를 행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음모론은 위키리스크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선대 본부장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을 해킹, 폭로를 하면서 시작이 됐다.

메일 중에 pizza, pasta, cheese 등의 단어가 몇 차례 등장하자 트위터,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우익 음모론자들은 '치즈 피자'가 아동 포르노 그래피의 은어로 사용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의 고위 관계자들이 인신매매와 아동 성착취를 하는 악마 숭배자 조직 소속이고 그 근거지가 워싱턴 D.C의 코멧 핑퐁(Comet Ping Pong)'이라는 이름의 피자 가게의 지하실이라고 퍼트리기 시작했다.

음모론이 소셜미디어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자 2016년 12월 4일에는 에드거 메디슨 웰치란 이름의 남성이 총기를 들고 해당 피자 가게를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일부 극성스런 미국 극우 집단이 아동 성매매를 일삼는 민주당으로부터 미국 아이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피자 게이트’ 스캔들에서 힘을 얻은 극우 음모론자들은 ‘큐어넌’(QAnon)이라는 이상집단에 몰려들어 조직적으로 음모론을 퍼트리고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올 초 큐어넌에 심취한 30대 백인 남성이 부친을 참수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남성은 20년 넘게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일한 부친을 ‘조국의 반역자’라 부르고 훼손한 시신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대선을 앞두고 극단 세력의 폭력 행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큐어넌은 민주당 최고위층 등 미 정계와 연예계, 경제계에 포진해 있는 엘리트 집단들이 아이들을 고문하고 성관계는 물론 식인까지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미 민주당과 연결된 비밀집단인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미국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만이 이들 집단에 저항하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큐어넌은 트럼프야말로 거대 괴물집단과 싸우는 외로운 늑대와 같은 전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이같은 음모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광적인 음모론이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조금도 가라앉지 않고 퍼져가면서 급기야 일론 머스크까지 나서 ‘피자 게이트’가 사실일줄 모른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지만 최근 트럼프가 재부상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음모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려한 ‘진실의 쇠퇴’만이 트럼프 재등장 요인은 아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미국 분열의 가장 큰 요인으로 '광적인 음모론'과 '진실의 쇠퇴(truth decay)'를 꼽았다.

'진실의 쇠퇴'는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가 “미국인의 공적 생활에서 사실과 자료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제시한 개념이다.

'사실과 자료에 근거한 분석에 이견이 늘어나고 사실과 의견 사이 경계가 흔들리며, 의견과 개인적 경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과거엔 존중받았던 사실의 출처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는 현상'을 말한다.

바이든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오바마는 “조 바이든이 사회주의자라든가 힐러리 클린턴이 소아성애자 조직을 이끄는 악마라는 음모론이 계속 떠돈다”면서 “나라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선출직이 이런 사실에 충실하지 않은 이야기를 홍보하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이번 선거에서 봤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7300만표를 얻어 바이든이 득표한 7800만표에 패했다. 하지만 7000만표 이상은 미국 대선에서 압도적인 숫자이다.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6500만표를 얻어 당선됐고, 2002년 부시는 6200만표로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가 얻은 수치는 높은 투표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트럼프 지지층이 확고함을 보여준다.

바이든 집권 기간 중 그를 위협하는 세가지 국제적 사건이 있었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를 발표한 뒤 4개월만에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미국 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마저 나왔다.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가가 크게 오르자 다시 한번 바이든 지지율은 최저치를 바꿔치기도 했다.

그리고 2023년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으로 유가 등이 다시 폭등하자 바이든의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바이든 집권 기간 동안 1년에 한번씩 터진 국제분쟁과 전쟁에 미국 경제가 휘말려 들어가면서 물가가 폭등하고 ‘팍스 아메리카나’에 의구심이 더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바이든 집권 지난 3년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3.4%를 기록했고, 올해도 주요국 가운데 드물게 3%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경제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는 19% 넘게 상승했으며 특히 식품과 휘발유 등 필수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 연이어 터진 전쟁이 물가를 부채질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전쟁을 관리하는데 실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으로 이어지는 국제분쟁으로 물가가 크게 오르자 미국인들은 바이든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가가 선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전개이다.

이와 관련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생활비의 큰 폭 상승이 많은 미국민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실토했다.

옐런 장관은 최근 몇 달간 높은 임금 상승에도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택과 생활용품 가격이 여전히 높다고 인정했다.

옐런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의 경쟁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뒤져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 FT와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 공동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의 43%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운영을 신뢰한다고 답한 데 비해 바이든 대통령은 35%에 그쳤다.

이쯤 되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피자 게이트 등 말도 안되는 음모론으로 미국을 분열시키고 ‘진실의 쇠퇴’와 같은 비이성적인 정치문화로 트럼프가 득세한다”는 주장을 아무리 외쳐봐야 트럼프를 지지하는 절반의 미국인들 귀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 총선에서도 확인된 사실이지만 물가는 가장 중요한 결정적 요소이다.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길은 국제분쟁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는데 힘을 모아 물가를 진정시키는 것이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피자 게이트’ 등 ‘큐어넌의 음모론’만이 트럼프의 대선 재도전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님을 이제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