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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브][현미경]제분 4사, 밀가루값 내린다더니 알고보니 은근슬쩍 인상

-국제 밀 시세 22년 폭등후 23년 다시 폭락...국내 제분업체들, 밀가루값 계속 인상
-대한제분, 작년 영업이익률 7.73%로 16년 이후 최고. 매출원가율은 18년 이후 5년만에 최저
-다른 제품도 생산하는 CJ제일제당만 영업이익률 계속 악화

 

 

 

 

2023년 대한제분의 곰표 밀가루제품 홍보 모습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으로 크게 올랐던 국제 밀 시세가 23년 들어 다시 크게 떨어지자 국내 주요 제분업체들은 지난해 물가안정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밀가루 제품값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폭씩이라도 모두 계속 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덕에 CJ제일제당을 제외한 대부분 제분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우크라이나사태 발발 이전인 2021년보다도 높아졌고 매출원가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국제 밀 시세 급등으로 국내 밀가루 제품 값을 올려봐야 남는 것이 없다고 모두들 엄살을 부렸으나 실제 작년 영업실적은 밀 시세 급등이 없었던 2021년보다 오히려 좋아진 셈이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국제 밀 시세가 급등하면서 2021년 대비 2022년 국내 제분업체들의 밀가루 원료(원맥) 평균 수입가격 상승률은 CJ제일제당이 58.7%(원화기준), 대한제분 52%, 사조동아원 55.1%, 삼양사 41.6%(달러기준)로 각각 나타났다.

달러화 기준인 삼양사와 원화 기준인 다른 업체들과의 상승률 차이가 나는 것은 2022년 달러가치 폭등과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환율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CJ제일제당의 주요 국제 식품원자재 평균 수입가격 추이

 

 

국제 밀 시세가 이처럼 폭등하자 국내 제분업체들은 2022년 당장 국내 밀가루 제품값을 크게 올렸다. CJ제일제당이 평균 34.2%, 대한제분 34.7%, 사조동아원 36.1%, 삼양사 30.1%씩이다. 국내 제품가격은 모두 원화 표시여서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2023년 들어 국제 밀 시세가 다시 크게 하락하면서 국내 제분업체들의 원맥 평균수입가격도 다시 떨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제 밀(SRW·적색연질밀) 가격은 작년 6월 t당 232달러85센트로 22년 6월보다 37.3% 떨어졌다

하지만 국내업체들의 22년 대비 원맥 평균수입가격 하락률은 국제시세 하락폭보다는 소폭이었고, 그것도 업체들마다 차이가 났다.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가격 추이

 

원화 기준으로 공시한 CJ제일제당이 -6.6%, 대한제분이 -4.3%, 사조동아원이 -9.4%인 반면 달러기준으로 공시한 삼양사는 -12.6%로 차이가 다소 있었다. CJ제일제당의 하락률은 달러로 환산해도 -7.7%여서 삼양사와 격차가 크다.

업체들마다 고유의 사정이 있겠지만 일부 업체들이 국제 밀 시세 하락률을 국내 수입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도입 밀 종류가 다르거나 도입 시차가 큰 장기도입계약 등을 하고 있다는 해석 등이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국제 밀 시세가 다시 하락하는데도 국내 업체들은 작년에도 국내 밀가루 제품값을 모두 계속 올렸다는 점이다. CJ제일제당이 평균 4.2%, 대한제분이 3.7%, 사조동아원이 6.4%, 삼양사가 5.4%씩이다.

 

 

대한제분의 원맥 수입량과 평균 수입가격 추이

 

 

국내 제분업체들은 작년 국제 밀시세가 다시 크게 하락하자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에 호응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국내 밀가루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대부분 한두번씩 발표한 적이 있다. 올들어서도 최근 밀가루값 인하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년 전체로 밀가루값 인하가 아니라 소폭씩이라도 계속 인상한 것이 각사 사업보고서 상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2년에 국제 밀시세 인상분만큼 국내 밀가루값을 못 올렸고, 그래서 23년에 나머지 미인상분을 국내 제품값에 반영한 것 같다”면서 “작년 정부의 직간접 압력에 일부 인하도 했지만 연간 전체 평균으로는 소폭 인상했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제분의 밀가루 제품 가격 추이

 

 

가정용 밀가루 시장점유율 61%로 국내 1위 업체인 CJ제일제당은 밀가루 제품 말고도 설탕, 햇반, 냉동만두, 육가공제품 등 다른 제품들도 많이 생산한다.

CJ제일제당의 작년 식품 원재료 수입액을 보면 식용유 등의 원료인 대두가 1조1,430억원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사료 등의 원료인 옥수수(9,444억원), 설탕 원료인 원당(8,558억원), 밀가루 원료인 원맥(3,313억원) 순이다. 밀가루는 수입비중 4위 정도다.

국내 제분시장 점유율 24.5%인 사조동아원도 제분 부문(매출비중 66%)외 사료제품도 생산한다. 국내 밀가루시장 점유율 10%인 삼양사도 밀가루 외에 설탕, 전분당, 유지 등을 생산, 판매한다.

종속 자회사를 제외한 국내 본사만으로 따질 때 100% 밀가루 제품만 취급하는 곳은 대한제분 한 곳이다. 대한제분의 영업실적을 잘 살펴보면 국제 밀 시세와 국내 밀가루 제품값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추정해볼 수 있다.

 

대한제분의 별도기준 매출, 매출원가, 영업이익 추이

 

 

대한제분의 작년 별도기준 매출은 4,902억원으로, 전부 소맥분(밀가루) 관련 매출이다. 제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원가)을 뜻하는 매출원가는 4,038억원으로, 매출원가율은 82.3%. 여기서 판매관리비까지 뺀 영업이익은 379억원이었다. 영업이익율은 7.73%다.

매출원가는 설비투자를 뜻하는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원재료비, 기타제조경비 등으로 구성된다. 대한제분같은 식품제조업체의 경우 아무래도 원재료비의 비중이 가장 크다. 원재료비 동향에 따라 매출원가가 출렁인다.

2018년만 해도 81.4%이던 대한제분의 매출원가율은 2019년 86.2%로 크게 높아진 후 20년 83.4%, 21년 83.1%, 22년 85.4% 등으로 계속 83%선을 웃돌다가 작년에 82.3%로 다시 크게 떨어졌다. 다른 원가 요인도 있을 수 있겠지만 국제 밀 시세는 다시 떨어지는데 국내 밀가루값은 22년에 이어 작년에도 계속 올린 영향이 아무래도 가장 크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년 영업이익률 7.73%도 2016년의 9.39%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전인 2021년은 4.73%, 우크라사태가 터진 22년은 4.62%에 각각 불과했다. 국제 밀 시세가 크게 출렁거려주고 이를 구실로 국내 밀가루값을 2년 연속 올린 것이 이렇게 영업이익률이 높아진 주 요인이라는 점을 대한제분 측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CJ제일제당의 별도기준 매출, 매출원가, 영업이익 추이

 

 

사료 등의 주원료인 국제 옥수수 시세는 원맥과 비슷하게 22년 크게 올랐다가 작년 다시 떨어졌다. 그런데도 국내 사료값은 22년에 이어 작년에도 계속 올랐다. 밀가루의 경우와 비슷하다. 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는 작년 국내 사료제품 평균가격을 2.98~6.5%씩 올렸다.

그 덕인지 밀가루와 사료 등을 주로 생산하는 사조동아원의 매출원가율은 21년 88.1%, 22년 91.5%에서 23년 88.1%로 다시 내렸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4.6%, 2.4%, 5.68%로 다시 높아졌다. 대한제분과 비슷한 패턴이다.

반면 설탕 원료인 원당 국제시세는 22년에 이어 작년에도 크게 올랐다. 이에따라 제일제당과 삼양사는 22년에 이어 작년에도 국내 설탕값을 17~18.7%씩 크게 올렸다.

하지만 비슷하게 설탕과 밀가루제품을 생산하고 옥수수를 주원료로 쓰는 사료(제일제당)와 전분당제품(삼양사)도 같이 생산하는 제일제당과 삼양사의 작년 실적은 크게 엇갈렸다.

CJ제일제당의 매출원가율(별도기준)은 21년 71.4%, 22년 72.3%, 23년 74%로 계속 높아졌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4.49%, 5.16%, 3.75%로 다시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삼양사의 매출원가율은 85.6%, 85.4%, 83.3% 등으로 계속 떨어졌고, 영업이익률은 1.08%, 1.88%, 3.25% 등으로 계속 높아졌다.

CJ제일제당은 원료시세가 계속 많이 오른 설탕제품의 비중이 높은 탓도 있고, 이들 제품외에 다른 여러 제품들도 취급하는 영향도 있어 보인다.

 

대한제분의 비용 중 원재료 매입비용 등

 

아무튼 CJ제일제당을 제외한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등은 작년 원가를 줄이고 영업이익률을 다시 크게 높였다. 각 회사 측으로선 여러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국제 원자재가 22년 크게 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데 제품값은 2년 연속 계속 올린 영향이 아무래도 가장 크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각 사 사업보고서를 보면 대한제분의 전체 비용 중 원재료 및 소포품 사용액(별도)은 22년 3,219억원에서 23년 3,148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삼양사의 원재료 및 상품매입액도 1조4,495억원에서 1조3,386억원으로 역시 줄었다.

사조동아원의 원재료액만 같은 기간 5,036억원에서 5,106억원으로 약간 늘었지만 대신 상품구매액이 같은 기간 363억원에서 278억원으로 줄었다. 작년 영업이익률이 더 나빠진 CJ제일제당의 같은 기간 원재료 및 상품매입액도 4조7,425억원에서 4조135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국제 원자재시세가 크게 올랐던 2022년은 몰라도 적어도 작년에는 국제원자재 부담을 핑계거리로 삼기는 어려운 수치들인 셈이다. 이런데도 제품값은 계속 올렸으니 영업이익율이 대부분 크게 개선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과 4월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삼양사 등은 또 밀가루 제품 가격을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인하율은 6%대이나 대한제분은 인하폭을 공개하지 않았다. 작년의 예로 볼 때 이들 업체들이 정말로 올해 연간으로 제품 값을 인하했는지는 올 연말이 지나서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국제 곡물 가격지수는 올해 2월 113.8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3월(170.1) 대비 33.1%나 하락해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