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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 ‘기본소득’으로 가는 환승열차 되나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가장 큰 성공은 실패할 자유를 얻는 데 있다. 실패해도 꾸준히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하지만 불평등한 부의 수준에 따라 기회의 균등이 저해되고 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본소득’과 같은, 모든 이들에게 ‘쿠션’이 되어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언듯 들으면 국내에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슈화 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한 말처럼 보이지만, 마크 저커버그 메타 회장이 2017년 하버드대학 졸업식에서 축사한 내용이다.

때문에 이재명 대표는 기본소득을 주장할 때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같은 세계적인 대기업 수장들도 동의했던 내용이라고 되풀이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더 나아가 대선 후보 당시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해 “(여기에) 오면서 농담으로 삼성이나 이런 데서 기본 소득을 이야기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며 “사실 제가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물론 일론 머스크조차 로봇이 앞으로 인류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면서 로봇세를 도입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비슷하게 한 적은 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우호적인 것은 이재명 대표에게는 우군이 될 것은 분명하다. 전제가 서로 너무 상이해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기본소득’ 이 좌파 논리라는 것은 편견. 다만 성공 가능성은 누구도 예측 불가능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발의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법의 골자는 전 국민에게 올해 말까지 사용할 수 있는 25만원 상당의 지역사랑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은 곧바로 위헌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의힘과 헌법학자들은 입법부가 헌법에 규정된 행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무력화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법부가 국가 재정을 운영하는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민생회복 지원금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절대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25만원 현금 살포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냐에 있다.

만약 이번에 25만원 현금 지원이 현실화되면 차기 대선에서 ‘기본소득’은 이재명 대표의 대표 공약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특유의 악성 포퓰리즘으로 나오는데, 그 배경은 이 대표가 주장해 온 기본소득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이다. 이번엔 일회성 25만원이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기본소득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예언(?)했다.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데는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본소득의 원칙대로 어떤 조건도 걸지 않은 수 십조원에 달하는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코로나가 한참 맹위를 떨치고 2020년 21대 총선이 코 앞에 다가오자 당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뛰어넘어 아예 ‘기본소득’ 이슈를 전면에 제기하자 여권도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을 해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좌우를 막론하고 백가쟁명식의 논란이 벌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때 “기본소득이란 화두를 민주당이 먼저 가져가게 두면 안 된다”고 대놓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당시 기자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김종인 위원장이 기본소득을 처음 내세울 때 내심 긴장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와 진보 진영의 어젠다를 선점했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처럼 ‘기본소득’이 여야를 넘나들면서 정치인들을 유혹해 온 것은 오래된 사실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일 전북대에서 미래 복지 모델 ‘서울 안심소득 기반 한국 소득 보장 체계 개편 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안심소득’이란 시가 소득 격차를 줄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2022년부터 추진 중인 오세훈표 복지 사업으로, 기준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가계소득을 일정 부분 채워주는 제도다.

서울시는 이미 2022년 중위소득 50% 이하를 대상으로 1단계 지원 484가구(비교집단 1039가구)를 선정했고 같은 해 7월 첫 급여 지급을 시작으로 3년간 지원키로 한 바 있다.

오세훈 표 ‘안심소득’은 이재명 표 ‘기본소득’과는 달리 하위계층에 대한 선별지원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차별성은 있다.

때문에 앞으로 ‘기본소득’논쟁이 벌어지면 오세훈의 ‘안심소득’이 보수진영의 대안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그는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복지 관료제보다 제도를 집행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기본소득 개념으로 ‘마이너스 소득세’라는 것을 내세웠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소득이 일정 수준 밑이라면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조금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너스 소득세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 복지제도는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재원이라는 것이 무한정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오세훈표 ‘안심소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기본소득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수급 대상을 제한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기본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본소득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가.

‘기본소득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강남훈은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 1986년 벨기에서 창립한 비정부기구) 총회에서 정의한 기본소득의 다섯 가지 정의를 이렇게 제시한다.

첫째 개인단위로 지급하는 개별성, 둘째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이에게 지급하는 보편성, 셋째 수급의 대가로 노동이나 구직활동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성, 넷째 소득을 한번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정기성, 마지막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현금 지급이다. 이런 원칙을 지켜야 그게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정의에 따르면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전국민 25만원 지원이 ‘기본소득’ 개념에 가장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지원금 지급 방식을 두고선 “코로나19 때 (지급된) 재난지원금처럼 민생회복지원금도 지역 화폐로 지급하겠다. 지역에서만 골목상권 등에서 쓸 수 있게 해 경제의 모세혈관을 되살려놓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재명의 민생회복지원금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 개념과는 달리 경기진작책의 의도가 더 커 보인다.

◇한번 중독되면 번복하기 어려운 기본소득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어디에서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은 656조9000억원이다. 그 중 보건·복지·노동 분야 예산은 공적연금 지급이나 보건 분야 예산을 포함하면 이미 200조원을 훌쩍 넘는다.

만약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지원금 25만원이 현실화되면 대충 13조원의 에산이 필요하다. 만약 그걸 기본소득의 원칙대로 매달 지급한다고 하면 156조원에 달한다.

국가예산의 4분의 1 수준이다. 기본의 복지예산을 합하면 350조원에서 400조원 수준으로 1년 국가예산의 절반을 넘어선다.

때문에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기존의 복지관련 예산은 모두 없애거나 적어도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한 하위계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것은 다 이같은 재원 마련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살림은 지금 위기상황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일 기획재정부 '월간 재정동향' 5월호에 따르면 1~3월 누계 관리재정수지는 75조3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14년 월별 기준 집계 이래 3월 누계 기준 가장 큰 규모다.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토지세나 금투세를 주장하지만 이 부분에서 아무리 세금을 뜯어내려 해도 경기가 한번 하락하고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 운운’하는 시대가 되면 백약이 무효이다.

혹자는 농반진반(弄半眞半)인지 몰라도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1분기에 벌어들인 영업이익만 해도 14조원에 가까운데 그걸 갖다 쓰면 된다”는 말도 하던데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굳이 여기서 반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몇 년전 삼성을 찾아 기본소득 운운한 대목을 상기해보면 이같은 발언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작년에 천문학적인 적자를 보아 올해에는 법인세조차 낼 능력이 없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이번에 ‘25만원 현금성 지원’이 현실화되면 차기 대선은 여야 모두 ‘기본소득’ ‘차별화된 안심소득’ 등 현금성 지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붙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기본소득’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원래 진보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좌우 모두 한번씩 고민해 본 이슈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핀란드에서 2017년 실직자에게 한 달에 약 620달러를 지급하는 UBI(보편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다가 효과가 별로라고 중단한 적이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엄청난 원유채굴권을 기반으로 1982년부터 일종의 소득 보장 제도를 운영해 오고 있어 기본소득 주창자들에게는 가장 많이 차용되는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전남 신안군에서 알래스카주와 유사하게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배당금인 ‘햇빛연금’을 2021년 4월부터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10월까지 1만524명에게 100억원이 넘는 돈이 지원됐다고 한다.

스탠퍼드대 기본소득연구소(Basic Income Lab)에 따르면 전 세계 79곳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완료됐고, 77곳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기본소득이 세계 곳곳에서 화제가 되고 실험이 되고 있지만 국가적 단위에서 기본소득을 실천하는 나라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소득’ 논쟁이 진지한 논쟁보다는 정치적 논쟁으로 넘어가 누구도 통제가 불가능한 그런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기에 바로 그 점이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기 전에 ‘기본소득 논쟁과 실험’이 걸어온 과정부터 진지하게 연구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