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이트

[이용웅 칼럼]고금리 장기화 예고, 취약분야 ‘빚폭탄’은 어떻게 하나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수출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수가 생각보다 강건하게 나왔다. 우리가 뭘 놓쳤는지, 영향이 일시적인지 등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차 방문한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동행기자단과 만나 한국의 1분기 GDP가 1.3% 깜짝 성장한 것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모두가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칠 때 1분기 성장이 예상밖으로 선전한 것에 대해 우리 중앙은행 총재조차 경기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다고 솔직히 토로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총재는 미국 금리 정책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면서 당분간 고금리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 총재는 “지난달만 해도 미국이 하반기 금리인하(통화정책 전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제로 통화정책을 수립했는데, 미국의 경제 데이터가 좋게 나오면서 금리를 낮출 것으로 예상하는 시점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금리정책을 추종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또 유가와 환율 등의 변동폭이 예상을 뛰어넘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금리가 내려가야 국민이 체감 경기 회복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무슨 정책을 내놓았는지 기억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1분기 우리 경제는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깜작 성장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아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2.2%보다 0.4%포인트 높은 2.6%로 올려잡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조지아를 방문한 최상목 부총리는 4일(현지시간) 한국 기자들과 만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2.2%) 상향을 검토하고 있다며 “성장률을 전망하는 기관들은 다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고, 수준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성장률을 자극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는 정책의 필요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정책당국자들의 판단인 것 같다.

우리 경제가 당초 우려와는 달리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 덕을 톡톡히 보았다.

때문에 미국 경제 등이 다시 침체기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경제도 동반 침체에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지난해 반도체의 부진 속에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자동차 부문을 보면 현대자동차의 경우 올 1분기에도 매출 40조6585억원으로 1분기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여기에다 미국에서 불고 있는 인공지능(AI) 열풍으로 SK하이닉스의 경우 올 1분기 매출이 12조4296억원으로 1분기 기준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침체에 빠져있던 반도체 부문이 수출 효자로 화려한 복귀를 했다.

자동차와 반도체 두 축이 우리 경제를 수렁에서 건져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창용 총재도 놀랄 정도로 내수 회복도 어느 정도 견고해지고 있다.

때문에 이 총재는 “지난달까지 생각했던 통화정책의 전제가 모두 바뀌었다. 기존의 논의를 재점검해야 하는 상황이다”면서 고금리 지속에 방점을 찍었다.

◇장미빛 전망에도 중동위기, 미국 대선 등 불확실성도 높아져

우리 경제 성장률은 7개월 연속 견조한 증가세를 보이는 수출에 큰 도움을 받았지만 올 2분기를 정점으로 하반기에는 수출 증가율이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지난 4월 수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13.8% 증가한 562억6000만 달러였다. 수출 증가율은 작년 10월(4.9%) 증가세로 전환해 7개월째 '플러스'다.

여기에는 반도체(56.1%) 부문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업황 회복에 따른 수요 확대, 메모리 가격 상승 등이 반영되면서 6개월 연속 두자릿수대 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증가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사실상 어렵다.

지난해의 경우 4∼5월에는 이례적으로 수출 증가율이 낮았고 하반기부터는 수출이 조금씩 좋아졌기 때문에 올 상반기에 기저효과를 누렸던 수출증가율이 하반기에는 꺽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라고 해서 쉼없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상무부는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이 연율 1.6%로 집계됐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지난해 4분기(3.4%)에 비해 둔화한 것은 물론이며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전문가들의 1분기 전망치(2.4%) 보다도 낮은 수치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재빨리 “재앙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 대선도 변수이다. 바이든이 되느냐 트럼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 대미 수출 환경이 크게 출렁거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으로 촉발된 중동 위기는 설령 휴전 협정이 맺어진다고 해도 상당 기간 일진일퇴를 거듭할 전망이다. 때문에 고유가가 언제 진정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수퍼엔저’ 역시 동아시아 전반의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어 수입물가 상승은 불문가지이다.

고물가 지속은 천천히 회복되고 있는 내수에 하방 압력을 주기마련이다.

이처럼 경기가 수출 중심으로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수출 전선에도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물가 자극 요인도 상존하고 있다.

경제 전반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은 이처럼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우리 정책 당국은 일단 미국의 금리 정책을 추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밝혔다.

◇고금리 지속에 따른 취약부분 관리가 급선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금리 장기화 등에 따라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현실은 어찌 할 것인가.

이와 관련 지난 2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금리인하 불발(No-cut) 시나리오 또는 유가급등 등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을 반영한 위기 시나리오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할 것”이라며 “금융시스템내 약한 고리를 찾아내고 위기가 현실화되기 전에 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금융사가 보유한 연채채권을 매각 등을 통해 정리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미 지방에서부터 곡소리는 들려오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지방은행(BNK부산·경남·DGB대구·광주·전북은행)의 지난 1분기 중소기업대출 연체액은 8348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4.8%(2958억원) 늘어난 수치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PF 연착륙 추진 과정에서 대내외 경제·금융여건 변화가 가미되어 조금이라도 시장 불안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시장 안정 정책이 즉시 집행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력체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의 경우 중견 건설사인 남흥건설과 익수종합건설이 최근 부도처리됐다.

남흥건설은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액 790억원 규모로 부산에서 상위 25위, 전국 307위를 차지했던 업체이다. 익수종합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액 705억원 규모로 부산 29위, 전국 344위였다.

도급순위 99위인 광주지역 대표 건설사인 한국건설 역시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금감원은 또 고금리 지속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부담을 방지하기 위해 신속하고 질서 있는 연착륙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곧 발표할 예정이다.

PF 부실 위기로 일부 지방 저축은행의 연체율이 8%대까지 치솟아 위기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예금보험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광주·전남·전북지역 저축은행 연체율은 8.1%로 전년(4.3%) 대비 3.8%포인트 올랐다.

연체율 상승의 주범은 대부분 부실해진 부동산관련 대출이다.

고금리 지속은 자영업자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분기별 개인사업자 대출 및 연체잔액을 취합하면 연체금액과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잔액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후 최대 수준이라고 한다.

올해 1분기(1~3월) 한 달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액은 1조3548억원으로 무시못할 수준이다.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등 대표적인 '서민급전'을 제공하는 카드사들의 연체율도 예사롭지가 않다.

카드사의 연체율은 카드 대금, 할부금, 리볼빙, 카드론, 신용대출 등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을 뜻하는데 신한카드의 경우 1분기말 연체율은 1.56%로 전년 동기(1.37%) 대비 0.19%포인트 상승해 2015년 9월(1.68%) 이후 9년여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다른 카드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과연 이같은 취약계층과 취약산업분야에서 경기회복의 온기를 느낄수 있을까?

경기회복은 커녕 금융위기급 불안감이 시장에 맴돌고 있음을 취약계층은 누구보다도 실감하고 있다.

영세사업자 등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취약계층은 물론 부실한 지방 건설사들과 이들과 연계된 금융기관들이 동반 부실화되는 상황은 우리 경제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은 물론이다.

때문에 금융정책 당국자들은 고금리 지속을 경고하는 것을 넘어서 비상한 상황에 대응하는 비상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의 작동에 한치의 착오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