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급등, 달러 패권 위협은 헛소리...외려 우군으로 작동
-넘치는 세계 유동성 미국 달러화로 흡수하는 장치로 비트코인 맹활약
“분석가들, 전문가들 그리고 언론인들은 지금 전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X(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는 “우리가 비트코인을 매입했을 때 언론은 문자 그대로 수천 개의 비판 기사를 썼다”며 “그러나 비트코인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팔면 40%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익률은 올라가 지금은 50% 이득이다.
엘살바도르는 2021년 9월 7일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했다. 물론 문제는 많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자 엘살바도르는 바로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부켈레 대통령을 비웃는 소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정작 엘살바도르 거리에서는 비트코인 법정화폐 반대를 외치는 시위가 일었고 일부 시위대는 비트코인 입출금기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실제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서 지난 2년 동안 적자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초 비트코인 가격이 2022년 4월 이후 처음으로 4만달러(약 5300만원)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흑자로 바뀌었다.
연일 폭등장세를 연출하는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 무대 뒤편에는 이런 소극(笑劇)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덩치를 키우고 있는 비트코인이 미국 달러화를 대신해서 국제결제수단의 왕좌까지 넘볼 것인지.
◇비트코인에 이어 금값도 급등, 달러패권 시대는 과연 끝나는가
2010년 5월 22일, 미국의 프로그래머 라스즐로 핸예츠(Laszlo Hanyecz)가 1만 비트코인(BTC)으로 피자 2판을 구매한 것이 비트코인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라스즐로는 2010년 5월 18일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살수 있는지 실험해보기 위해 당시 피자 2판 가격인 40달러에 해당하는 1만 BTC를 지불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그로부터 4일 뒤 한 네티즌이 1만 BTC를 받고, 달러로 피자를 주문해 라스즐로에게 배달했다.
가상자산이 실물 거래에 사용된 역사적인 첫 사례였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비트코인 피자데이가 이제 14년째를 앞두고 있다.
가상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이 사상 처음 7만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1월 10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현물 비트코인 ETF를 승인한 이후 비트코인에 자산가들의 자금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온 영향이 크다.
블록체인 시장조사 기관 룩인투비트코인(LookIntoBitcoin)에 따르면 지난 8일 현재 '고래'(whale)라고 일컬어지는 비트코인을 1000개 이상 보유한 '큰 손'들의 고유 주소(unique address)는 2104개로 집계됐다. 이는 2159개에 달했던 지난달 말보다는 줄어들었지만, 1998개였던 지난 1월 19일에 비해서는 여전히 많이 늘어난 숫자다.
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최근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현물 비트코인 ETF인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ETF(IBIT)가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은 19만5985개로 나타났다.
IBIT가 지난 1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을 받아 거래를 시작한 이후 두 달 만에 약 20만개를 사들인 것이다.
여기에다 비트코인 공급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비트코인은 당분간 더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화폐 헤지펀드 MNNC그룹의 아이샤 키아니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항상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대규모 청산이 있다”며 “일부 시장 조정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비트코인만 오르는 것은 아니다. 안전자산이라 할수 있는 금(金)값 역시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 금 관련 펀드와 금 ETF 수익률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지난 8일 KRX 금시장에서 1㎏짜리 금 현물은 전 거래일보다 0.64% 내린 1g당 9만1740원에 거래를 마쳤지만 장 중엔 9만2530원까지 올라 2014년 KRX 금시장이 거래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 가격은 지난해 중반 8만원 선에서 움직이다가 점차 올라, 최근에는 9만원대를 넘어섰다.
중국, 인도 등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금 보유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어 전세계적으로 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금보유량은 14개월 연속 늘어나고 있고 각국 중앙은행이 사재기한 금이 최근에만 800t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트코인, 금값이 급등하는 뒷배경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몰고 온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미국 달러화를 대신할 투자처 찾기에 목마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비트코인과 금값이 이처럼 크게 오르자 사람들은 일제히 ‘달러 패권’의 운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면서 달러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과도한 부채 때문에 전세계의 불신을 한몸에 받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수석 투자 전략가 마이클 하트넷은 최근 투자자 메모에서 “미국 정부의 빚은 100일마다 1조 달러씩 증가하고 있다”면서 “(달러 대체재인) 금과 비트코인 가치가 사상 최고치에 다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달러 대신 비트코인을 사재기해서 대박을 친 엘살바도르의 경우를 보라.
이미 오래전부터 달러패권에 도전해온 러시아와 중국이 위안화 차관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화 차관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더 나아가 브릭스 국가 간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결제 시스템인 '브릭스 브리지'(BRICS Bridge)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옛 소련권 경제협력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걸프 국가들과 이를 시험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처럼 달러 패권은 곳곳에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시장, 비트코인 결국 달러패권 강화에 도움될 수도
이처럼 석유거래에 기반을 두고 성장해 온 달러 패권 시대에 중대한 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달러 패권은 그렇게 쉽게 저물지 않을 것 같다.
모건 스탠리의 디지털 자산 시장 책임자인 앤드류 필은 세계적으로 약 1억 명이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며 82개국에서 비트코인 ATM이 운영되고 있다면서 달러 패권이 점차 침식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비트코인 ETF가 바로 미국 달러화에 연동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중앙은행 이사는 “블록체인 기술 및 가상화폐 기반 금융 거래(DeFi, 이하 디파이)가 미국 달러화의 패권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최근 바하마에서 열린 콘퍼런스를 통해 디파이에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달러의 지위를 더욱 강화시켜준다고 역설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화 등 법정화폐 또는 금과 같은 특정자산의 가치를 일대일로 추종하는 가상화폐로, 거래소에서 현금 대신 자산 매입에 쓰인다.
그는 “대부분의 디파이 거래를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포함한다”고 강조한 뒤 “스테이블코인 시장 시가총액 99%는 미국 달러와 연계되어 있고, 이는 가상화폐 자산이 사실상 미국 달러로 거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월러는 "미국 달러가 조만간 세계 기축 통화로서의 지위를 잃거나 무역과 금융에서 미국 달러의 우위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일부에서 달러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사건들이 오히려 지금까지 달러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역설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월러의 주장이 근거가 있는 것은 요즘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리는 이유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법원이 금융기관들이 비트코인 투자 상품 판매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고 올해 1월 처음 ETF가 출시된 뒤 전세계 자금이 몰려들면서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다.
미국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현물 ETF는 모두 달러화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테라·루나 사태 역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테라가 달러화와의 페깅(가치 고정)이 끊어지면서 테라의 가격을 지지해 주던 자매 코인 루나의 가격도 연쇄 폭락한 사건이다.
루나 사태는 결국 달러화의 보증을 얻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최근 국제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의 최고전략책임자인 알렉스 글래드스타인(Alex Gladstein)은 “주요 국가가 그들만의 법정화폐 대신 비트코인을 사용한다면 전쟁에 참여할 동기가 줄어들 것”이라고 이색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글래드스타인은 “달러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달러 표시 채권을 마구 찍어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전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논리전개 때문에 비트코인이 달러화를 대신하면 세상에서 전쟁도 사라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내막을 살펴보면 이같은 기대감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는 금방 눈치 챌수 있다.
비트코인 급등을 보증해주는 것이 바로 미국 달러화임을 확인한다면 미국이 앞으로는 가상화폐를 통해서도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큰 손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에서 미국이 미국 국채대신 금이 대체투자수단의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비트코인 ETF로 전세계 유동성을 흡수하려고 한다는 음모론이 퍼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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