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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 심상치 않은 국내외 부동산시장, ‘컨틴전시 플랜’ 절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미국 동부시간 2008년 9월 15일 자정 무렵. '4대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는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보도자료를 확 뿌렸다. 날이 밝는 대로 뉴욕 남부 파산법원에 파산보호(Chapter 11)를 신청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뉴욕 다우지수는 504.48포인트(4.42%) 폭락했다.  9·11 사태 직후 전개된 주가폭락 이후 가장 큰 낙폭이었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이튿날 개장한 코스피지수는 6%대 수직낙하했다. 더군다나 리만브라더스는 우리나라 산업은행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포기한 금융사가 아니었던가.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규모는 무려 6700억 달러. 당시의 한국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700조원 규모였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24년 3월, 국내외 부동산 시장은 그 날 그 시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나쁜 뉴스’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르면서 위기국면을 관리하고 연착륙을 유도하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이 절실한 것은 아닌지.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사업) 절차가 진행 중인 태영건설이 결국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지난 14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5626억원으로 드러났다. 자산(5조2803억원)보다 부채(5조 8429억원)가 많아졌다. 자본 잠식 상태에 처한 것이다.

 

태영건설 사태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위기적인 국면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얼마 전부터 시장에 유령처럼 떠돌던 ‘4월 위기설’이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美 상업용부동산 시장에 잇따른 경고음... 리만브라더스 사태 재현되나

 

뉴욕타임스는 지난 14일 상업용 부동산(CRE) 가격 폭락으로 미국 도시들이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내 오피스 가치는 3년 전보다 6,641억달러(약 880조원) 줄어들었다. 고금리 등으로 건물주 부담은 커졌는데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 사태로 원격 근무 형태가 크게 늘어 수요는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시카고의 한 오피스 건물은 2,000만달러(약 266억원)에 팔렸는데 20년 전 가격(9000만달러·약 1200억원)보다도 80%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캐나다 연기금(CPPIB)은 최근 맨해튼 내 오피스 타워의 지분을 모기지 부채와 운전 자본을 함께 넘기는 것을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매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세수가 줄어든 미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적자의 늪에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걱정이다.  

 

중국 등을 강타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약 9,290억달러(약 1,234조원). 6,700억달러 규모의 리만브라더스의 파산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장기간 지속된 고금리로 부동산 거래가 실종되어 매각에 따른 대출상환이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미국상업용 부동산 시장 불황은 그대로 우리나라 금융사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만기도래 익스포져(위험노출액)가 향후 3년간 5조원을 넘을 전망이라고 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4~2026년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 유럽 중심 해외 상업용 부동산의 익스포져는 4조7,000억원(2023년 9월 말 기준)에 달한다. 

 

증권사들만 미국 상업용부동산 침체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5대 금융그룹(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모두 782건. 금융그룹들이 자체 집행한 투자 규모인데 전체 익스포져는 20조 3,868억 원에 달한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글로벌 금융 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국내 금융그룹은 지난해 이미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장부에 반영했고 그 규모는 갈수록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정부 당국은 부인하지만 국내에서도 ‘4월 위기설’ 계속 확산중 

 

국내 부동산 시장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증권가에 ‘건설업 4월 위기설’이 은근하게 퍼지고있는 터에 올해 들어 새천년종합건설과 선원건설 등 시공 순위 100위권의 중견 건설사들이 법정관리를 잇달아 신청하면서 위기론이 힘을 얻고 있다. 작년에도 9월 위기설, 12월 위기설 등 분기마다 위기설이 재점화되곤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월 총선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건설사들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대해 "'4월 위기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4월 위기설’은 정부에 대한 불신도 한몫하고 있다. 4월 총선 이후 정부가 PF 구조조정에 본격 돌입하게 되면 건설사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주요 20개 건설사의 민간 주택사업 PF 우발부채를 지난해 하반기 기준 약 30조원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말 현재 공사가 끝난 뒤에도 팔리지 않은 ‘악성 미분양’이 1만857가구에 달한 것도 예사롭지않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움직임에도 이상기류가 퍼지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 기관 S&P(Standard & Poor's) 글로벌은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향후 평가에서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평가사 측은 “국내외 부동산 시장 둔화로 인해 증권산업의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부정적’ 등급전망은 향후 1∼2년 동안 부동산 관련 리스크가 국내 증권사들의 자산건전성과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평가사가 “국내외 부동산 시장 둔화”라는 표현을 쓴 사실에서 알수 있듯이 작금의 부동산발 위기는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더블 위기의 성격이 크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행의 경고 귀담아 듣고 ‘컨틴전시 플랜’ 착수해야  

 

국내외를 가릴 것없이 코로나 시대에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거품이 이제 터지고 있다. 특히 해외부동산 부진이 국내 금융사의 부실로 이어지고, 이 문제가 이미 허약해진 국내 건설시장을 재차 압박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지난 14일 한국은행은 ‘3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동산PF 대출 연체율 상승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PF대출을 대폭 늘린 비은행 금융기관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부동산 PF 부실화, 취약차주의 신용위험 등 부동산시장과 관련한 금융부문의 잠재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만큼 주택시장 부진의 영향을 면밀히 살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여기에 더해 미국의 지역은행인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에서 시작된 미국의 CRE발 리스크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지역은행 부실로 인한 시스템 위기 발생 가능성이 재부각되는 한편 미국의 위기가 다른 나라로 파급될 우려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도 지난 1월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대체투자가 지역별로는 미국 58%, 유럽 23%, 투자유형별로는 오피스 비중이 높아 가격변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중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또 연기금이 주요국의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금액이 이미 상당규모에 달해 관련 리스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증권사나 은행권만 미국발 부동산 위기에 노출된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주요 연기금·공제회의 지난해 6월 말 기준 해외 대체투자 잔액은 1153억달러(약 154조원)이며 이 가운데 부동산은 416억달러(약 55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국내외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어 ‘위기설’이 진짜 ‘위기’로 넘어가지 않게 정책당국의 정교한 ‘컨틴전시 플랜’의 설계가 절실하다.  

 

또한 위기설의 직접적 당사자인 금융사 그리고 건설사들의 책임있는 비상경영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