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이용웅 칼럼]성큼 다가온 북일정상회담, 한반도에 毒될까 藥될까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실현을 위해서는 북한 톱(정상)과의 정상회담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총리) 직할 고위급 협의를 (북한과) 추진해 나가겠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13일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 외교·안보 집중심의에 출석해 이렇게 북일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재차 밝혀 주목을 끌었다. 이같은 북일정상회담과 관련된 발언들이 지난해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이 연일 남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외쳐대고 있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라도 북일 정상회담이 진짜 성사된다면 한반도를 들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핵폭탄급 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 문제는 그 파급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무척 어렵다는 현실에 있다.

 

지난 2월 14일 한국은 북한의 형제국을 자처하는 쿠바와 수교에 전격 합의했다. 2005년 코트라 아바나무역관 개설을 계기로 한-쿠바 관계에 다시 물꼬가 트인 이후 거의 20년 만이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북한에서 뜻밖의 뉴스도 돌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수교 다음날인 15일 “(일본이) 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갈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2002년과 2004년에 있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역사적인 방북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본과 북한이 관계개선 작업을 해온 세월도 거의 20년을 넘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과 쿠바가 첫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 20년 전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기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일본과 북한 모두 북일정상회담 통해 위기를 넘기려 하는 욕구에 일치

 

물론 김여정은 담화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그 즉시 일본측의 반발을 불러와 북일관계가 여의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일정상회담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일본의 접촉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져왔음을 보여주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주간지 ‘슈칸 겐다이’(週刊現代)는 기시다 총리가 6월 혹은 7월에 북한을 방문해 북일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사실 기시다 총리는 일본내 인기가 급락하고 있어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납북 일본인 5명의 일시 귀국을 성사시켰을 땐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이 20%포인트 넘게 폭등했었다.

 

일본만 북일정상회담을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상대방인 북한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미 북한은 김여정의 발언 이전부터 기묘한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1월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기시다 총리에게 위문 전문을 보낸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 위문 전문에서 기시다 총리를 ‘각하’로 호칭하며 “일본에서 불행하게도 새해 정초부터 지진으로 인한 많은 인명 피해와 물질적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신과 당신을 통해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동정과 위문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북한의 위로 전문에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북한 언론매체에서는 김여정 담화 이후 일본에 대한 비난 기사가 싹 사라졌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3.1절에도 일본에 대한 비난기사를 내놓지 않았다. 일본이 과거사를 사과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기사는 매년 단골메뉴였음을 보면 확실히 이례적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별리그 4차전 북한과 일본의 경기가 예정대로 오는 26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리는데, 이때 북한과 일본 사이에 실무적인 접촉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주목을 주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일본 내 여론은 북한이 북일정상회담의 가장 큰 걸림돌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왔다.

 

이와 관련, 지난해 9월 ‘슈칸분슌’(週刊文春)의 보도 내용이 매우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관심을 끌었다.

 

지금부터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2013년 일이다. 당시 이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참여가 북한을 방문했는데 북한의 송일호 조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가 기묘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송일호 대사는 “양국 관계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납치문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었다고 전했다. 일본의 일부 언론이 10년 전 일을 거론하면서 북한이 납북자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밑자락을 깔아놓은 의미를 긴 호흡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가 20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듯이 일본과 북한 역시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관계를 다져온 셈이다.

 

◇ 일본 배상금 규모는 물론 핵·평화 등 북일간 협상의제에도 관심가져야

 

이같은 상황에서 아직 북한과 일본은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문제가 끝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고이즈미 전총리가 20년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양측은 30억~100억 달러 규모의 배상금 논의가 있었다. 지금 화폐가치로 따지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 규모의 배상금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KDI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북일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수교까지 진척이 된다면 ‘과거 청산’과는 별도로 추가적인 대북 경제원조가 가능하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에 상당한 규모의 ‘공적 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ence; 이하 ODA로 약칭)를 제공하고 있는데, 북한도 이 제도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다.

 

북한은 한미일 동맹에 균열을 가하고 내친 김에 막대한 배상금을 받을수만 있다면 납북자 문제에서 양보를 하더라도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실리적인 판단을 오래 전부터 했을 수도 있다.

 

일본 역시 북한 핵위협을 완화시키고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수순으로 북일국교정상화를 도모해온 것도 사실이다.

 

고이즈미 방북 동행을 포함해 총 6차례의 방북경험을 갖고 있는 야마모토 에이지 전 브루나이 대사는 “현재 북한은 다시 한번 일본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 응한 야마모토 대사는 “한미일이 강하게 결속하고 있는데 반해 중국과 러시아는 문제를 안고 있어 (이들을) 얼마나 의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일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부정적이지는 않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일본의 대북 관여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사브리나 싱 국방부 부대변인은 김여정 발언 직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역내 안정을 원한다”며 “(북일) 대화가 그러한 결과로 이어진다면 물론 우리는 환영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로이터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확산 문제가 논의되지 않더라도 북·일간 대화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기시다 총리에게 대화의 조건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 “(북·일간 대화를) 진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에서 만약 트럼프가 당선이 된다면 북미관계가 어떤 쇼를 연출할지는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난제는 여전히 수두룩하다.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물꼬를 트게된다면 이게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구체적인 복안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당연히 우리 정부를 패싱하려 할 것이고, 바로 그 점이 북일정상회담 가능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한국이 소외된 상태에서 북일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국내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남북 화해와 북일정상회담이 같은 선 상에서 진행되는 것과 남북긴장 상태에서 북일간에 협상이 진척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문제는 북일정상회담 논의과정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어찌 해결된다고 해도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취급할 것이냐에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본이 엉뚱하게도 북한과의 정상회담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북일 양국간 평화협정 운운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당연히 한미일 공조에 큰 균열이 불가피해진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가 음으로 양으로 급변화하는 기로에 서 있지만 우리나라는 총선을 앞두고 구태의연한 집안 싸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