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슈는 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또 무심해지고 싶은 이슈는 하루 종일 우리 귀를 때리고 눈을 가리는 총선이다. 그리고 누구도 무심해질 수 없는 발등에 떨어진 촌각을 다투는 이슈가 의료대란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찌 해볼수 없이 막막한 이슈, 바로 저출산 쇼크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인구를 현수준에서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되어야 한다. 한국은 그 3분의1 수준이다. 0.7명대의 출산율은 지금 한참 전쟁중인 우크라이나 수준이다.
그러니 외신들도 요란스럽게 한국의 저출산 쇼크를 이리저리 해석을 해서 전세계에 퍼트리고 있다.
◇연봉 1억 넘어야 결혼할수 있다고? 벽이 너무 높아지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요즘은 지인들을 만나면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기 쉬운 주제는 저출산 문제이다. 정치이야기는 서로 피한다. 잘못되면 인간관계가 파탄날 수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사람들이 두쪽이 나서 난투극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지적하겠지만 이런 정치적 대립도 기록적인 저출산의 한 요인이 된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저출산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과년한 딸이 있는데 시집갈 생각을 안한다. 결혼이야기를 꺼내면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것이다. 애 하나 키우려면 월급이 700만원은 넘어야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때문에 애 키우는데 돈이 월 700만원이나 들어간다는 말이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보모 한명 고용하려면 200만~300만원은 기본이고 애들 학원비를 대고 자기들도 일정부분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집도 사려면 월 700만원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냐는 주장이다”
그런가. 월 700만원이면 적어도 연봉이 1억원은 되어야 한다는 계산인데, 2022년 기준으로 1억원을 초과하는 억대 연봉자는 131만7000명이다. 억대 연봉자 130만명 중에서 결혼 적령기의 비율을 따지자면 더 쪼그라들 것이다. 10만명?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인가.
◇ 지나친 ‘헬조선’ 주장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 열풍으로 이어지고
어쨌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답게 살아가기 힘든 ‘헬조선’에 아이를 낳아 던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말이 버젓이 유통이 되는 현실이 무섭다.
수년간 우리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에 강한 충격을 준 ‘헬조선’이라는 상징적 은유는 우파 국뽕들이 대한민국을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 유통을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좌파들에게 전이되어 주로 정부를 공격하고 나아가 사회 그리고 국가 자체를 공격하는 왼쪽 이데올로기로 변질이 되었다.
좀 지난 자료이기는 한데 빅데이터업체 '아르스프락시아'가 저출산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 459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청년 세대의 반응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헬조선에서 아이를 낳아봤자 금수저 가문의 노예를 공급해주는 것뿐."
"헬조선은 나만 겪으면 된다. 굳이 2세까지 헬조선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이쯤 되면 우리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는 막무가내식 절망감에 빠져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돈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 큰 것인가.
출산율 추세를 보면 그래도 2017년까지는 1 이상에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는데 2018년부터는 아예 1 밑으로 내려가 급락지세가 뒤집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21년 11월 미국의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가 이같은 추세를 뒷받침한다. 조사대상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17개 선진국이다.
성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지’ 물었는데 응답자들의 가장 많은 숫자(38%)가 가족을 첫 번째 가치로 뽑았다. 유독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큰 의미라고 응답하고 가족은 건강에 이어 3위에 그쳤다.
물론 갈수록 커지는 주거비 부담은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쳐도 한국 특유의 초경쟁 사회가 주는 압박감까지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령 최근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를 집중 조명한 BBC가 소개한 32세 민지씨의 사례를 보자. 민지씨는 어릴 때부터 20대까지 공부하면서 너무 지쳤으며 ‘한국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가끔 마음이 약해진다면서도 아이를 원하던 남편 역시 이제는 그의 뜻을 들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나라가 여러 진영으로 동강나면서 희망보다는 절망을 전파하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는 현실에 있다. ‘(상대진영이 지배하는)세상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염세주의를 퍼트리는 진영논리도 우리나라의 저출산 재앙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점가에 불고 있는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작년 9월 출간 이후 무려 12주간이나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했다. 뿐만 아니다. ‘예스24’에서 쇼펜하우어 관련서 판매량은 2023년에 전년 대비 14.5배, 올해 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26.5배나 폭증했다고 한다.
◇ 정부, 기업들이 적극 나서 젊은이들이 ‘살만 하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 저출산 해법의 첫 발
물론 저출산 원인에 대한 분석을 이처럼 정치적인 해석이나 사회적 유행만으로 마무리하자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을 정치인들의 선동에 휘둘리는 비주체적 존재로 치부하는 것도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세상살기가 어렵다고 외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이나 선동가들이 절망의 불씨에 부채질을 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절망감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음도 부인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의 성난 감정을 이해하고 어루만져주는 것은 당연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의 예를 들었다. 스웨덴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주겠다”면서 필수 정책들을 정교하게 만들어내어 저출산 문제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외 기업들의 가족친화 복지 강화 움직임도 주목할만 하다.
일본 이토추 상사는 아침형 근무를 선택하면 오후 3시 퇴근이 가능하게 만들었더니 2010년 0.94명이었던 사내 출산율이 2021년에는 1.97명으로 뛰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부영그룹은 2021년 이후 출산한 직원 자녀 70명에게 출산장려금 1억원씩 총 70억원을 지급했다. 쌍방울은 3자녀 출산시 1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롯데그룹은 올해부터 3자녀 출산 직원들에게는 2년동안 승합차를 무료로 탈 수 있는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정부 지원책이 숫자만 요란하지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기업들의 선도적인 지원이 저출산 극복에 효과적일 것은 분명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아주 간단명료한 사회분위기를 형성해가는 것이 저출산 극복의 첫걸음이 되어야할지도 모른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아무리 깊고 넓어져도 가족이 붕괴되는 사회에서는 별무효과일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 극단적 진영대립, 하늘높은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주거비 부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계급간 격차 등은 사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이슈이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결혼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여려가지를 곰씹게 해준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최근 15년간 미국 성인 250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기혼자의 행복지수는 미혼자보다 일관되게 높았고, 조사 연도에 따라 12%p에서 24%p까지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정부나 기업들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결혼은 지옥이 아니다’는 사회적 공감대 확장도 절실한 사회분위기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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