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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7천억 날릴 판'…CJ ENM, K-컬처밸리의 악몽

- CJ ENM, ‘K-컬처밸리’ 무산으로 3486억 손실
- 3년 연속 적자, 총 손실 6천억 이상 예상
- 2천억 긴급 투입, 사업 재도전 여부 미정

일산 'CJ라이브시티 아레나' 조감도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CJ그룹이 경기도 일산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던 ‘K-컬처밸리 사업’이 작년 일단 무산되면서 이 사업 시행사인 CJ라이브시티와 모기업 CJ ENM이 작년 3분기(7~9월)에 인식한 1회성 손실만 3486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업 관련 손실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국내 최대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 ENM은 작년 2년 만에 다시 영업이익 소폭 흑자를 달성했으나 이 때문에 당기순손실은 작년보다 더 커지면서 3년 연속 적자에 빠졌다.

17일 CJ ENM이 최근 공시한 2024년 잠정영업실적 발표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작년 연결기준 매출은 5조2314억원으로, 23년 4조3684억원에 비해 19.8%나 증가했다. 2022년 4조7922억원까지 늘었던 이 회사의 연결 매출은 23년 다소 줄었다가 2년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2024년 CJ ENM의 잠장영업실적 공시

 

tvN과 글로벌 OTT플랫폼인 티빙 등의 미디어플랫폼과 스튜디오드래곤 등의 영화-드라마, Mnet 등의 음악부문 등 엔터부문 매출이 25%나 증가한데다 CJ온스타일 등 커머스부문도 8.5%의 견조한 매출 증가율을 유지한 덕이었다.

영업손익도 2년 만에 다시 소폭 흑자를 되찾았다. 2021년 2969억원에 달했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2년 1374억원으로 급감한데 이어 2023년에는 146억원 적자에 빠졌다. 하지만 작년에 다시 1045억원 영업흑자로 돌아섰다.

티빙과 미국 드라마제작 자회사 FIFTH SEASON의 손익 개선 및 Mnet의 흑자 전환 등에 힘입어 엔터부문 작년 영업이익이 213억원으로, 소폭 흑자전환한데다 커머스 부문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139억원 더 증가한 832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기손익은 적자규모가 더 커지면서 3년 연속 적자에 빠졌다. 2021년까지만 해도 2276억원 흑자였던 이 회사의 당기손익은 22년 1768억원 적자에 빠진 후 23년 3968억원 적자, 작년 5802억원 적자 등 3년 연속 적자 상태다.

작년 적자는 재작년 대비 46%나 더 커졌다. 적자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CJ ENM의 자산, 부채, 자본총계(자기자본) 모두 계속 줄고 있다.

CJ ENM은 영업흑자 전환에도 작년 당기순손실 규모가 더 커진 이유로, 금융손익과 관계기업투자손익 모두 재작년 대비 호전되었음에도 일산 라이브시티 사업 중단에 따른 유형자산 처분 손실 인식으로 기타영업외손익이 23년 948억원 적자에서 24년 4934억원 적자로, 적자규모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년 기타영업외손실들 중 가장 큰 것은 작년 3분기에 인식한 CJ라이브시티 관련 1회성 손실 3486억원이라고 밝혔다. 영업이익률이 2%가 안될 정도로 이윤이 박한 회사에서 이같은 대규모 영업외손실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CJ라이브시티의 작년 9월말 기준 자산, 부채 , 자본총계, 매출, 순익



K- 컬처밸리 조성사업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장항동 일대 경기도 소유 한류월드 부지 32만 6,400㎡에 CJ ENM의 자회사인 CJ라이브시티가 2조원을 들여 2만석 규모의 K-pop 공연장(아레나)과 스튜디오, 테마파크, 호텔 등 숙박시설, 관광단지 등을 조성하려던 사업이다.

CJ라이브시티는 CJ ENM이 K컬처밸리 사업시행자로 선정되면서 2015년 설립한 자회사다. CJ ENM 지분율은 90%다. CJ ENM은 K콘텐츠 위주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그동안 이 사업에 8천억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경기도는 작년 7월 CJ라이브시티와 맺은 K컬처밸리 복합개발사업 협약을 해지하고 공공개발 방식의 관 주도 사업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가 지체보상금 1000억원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CJ라이브시티는 세 차례에 걸친 사업계획 변경과 행정 절차에 따른 지연이라며 준공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경기도는 이를 거부했다.

작년 CJ 주도사업의 사실상 무산 직후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이 사업에서 CJ가 끝까지 배제돼 최종 무산될 경우 CJ ENM이 입을 손실(매몰비용)은 최악의 경우 7천억원이 넘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CJ ENM의 주요 사업부문별 실적

 

당시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는 작년 6월 말 기준 CJ라이브시티가 이 사업을 위해 빌린 차입금은 CJ ENM이 보증한 기업어음 3천억원과 전자단기사채 900억원, CJ라이브시티가 CJ ENM에서 직접 빌린 차입금 800억원, 토지 유동화 차입금 1416억원, 해외 사모사채 2400만달러(323억원), 영구채(CJ이엔엠 자금보충약정 제공) 600억원 등 총 703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 중 CJ ENM이 보증 또는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한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영구채 등 4823억원은 CJ라이브시티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CJ ENM이 결국 물어줘야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작년 9월 말 기준 CJ라이브시티의 자산은 928억원에 불과한데 비해 부채는 3993억원에 달해 자기자본은 -3065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또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에 따르면 차입금 외에 이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CJ ENM 1500억원 등 CJ그룹이 모두 1550억원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그때까지 CJ그룹이 투입한 총 사업자금은 8589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한신평은 이렇게 조달된 자금이 당시까지 사업현장에 투입된 것은 2023년 말 기준 모두 8116억원이라고 추산했다. 토지 2700억원(재평가이익 656억 제외), 건설 중인 자산 2663억원, 판매관리비 1379억원, 유형자산폐기손실 810억원, 신종자본증권 배당 247억원, 기타 317억원 등이다. 반면 2023년 말 CJ라이브시티에 남아있는 현금은 33억원에 불과했다.

한신평과 나신평은 차입금 중 토지 유동화 차입금(1416억원)의 경우, 이번 사업이 종료되면 토지를 경기도에 반환해 회수하는 대금을 통해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신평은 또 경기도 및 경기도시공사로부터 분양받은 A, C부지 매입 원금 2164억원도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사업협약 해제에 따라 토지에 추가로 반영되어 있는 유동화차입금 자본화 금융비용 및 아레나 부지에 이미 투입된 공사원가(건설중인 자산)의 경우 손상인식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CJ ENM의 2024년 잠장영업실적 공시

 

경기도에 물어줘야할 지체상금 규모에 관해 한신평과 나신평은 모두 1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공사기한 지연에 CJ라이브시티 측 귀책사유 외에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전력 공급불가 통보, 한류천 수질 개선 공공 사업 지연 등의 사유도 있어 향후 협의에 따라 지체상금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건설 중인 자산 2663억원을 모두 회수하지 못하고, 지체상금을 1천억원, 대여금과 지분가치 손상율이 100%라고 가정했을 때 CJ그룹이 입을 최대손실은 7122억원 정도다. 그러나 이 외에 경기도가 지금까지 진행된 공사의 원상복구 비용 등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신평과 나신평은 사업 종료로 인해 사업 진행에 따른 추가 자금 소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모두 평가했다. 계속 사업이 진행되었더라면 공사비 상승 등으로 대규모 자금 소요가 불가피하고, 완공 후 투자 성과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수천억원 손실은 불가피하지만 공사를 계속 진행했을 경우 예상될 수 있는 더 큰 손실과 불확실성은 막았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는 설명이었다.

CJ라이브시티가 작년 3분기 중 인식했다는 유형자산 처분손실 등 3486억원은 관련 부지나 설비 등 유형자산 상당수를 팔거나 정리했지만 투입원가에 비해 입은 손실이 이 정도라는 설명으로 보인다.

실제 2023년 말 6623억원에 달했던 씨제이라이브시티 총자산은 작년 9월 말 928억원으로 급감했다. 자산 대부분은 토지 등 유형자산이다. 사업장 부동산이나 설비 등을 대거 처분하거나 상각 처리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어느 부지나 설비, 건물 등을 처분했는지는 CJ ENM 측이 아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CJ ENM 미디어플랫폼 부문의 2024년 실적

 

CJ ENM은 현재 CJ라이브시티 완전 청산과 K컬처밸리 재도전 사이에서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경기도가 K컬처밸리사업을 다시 민간사업으로 전환하고 올해 4월 초 공모를 통해 연내 재착공한다는 계획을 작년 말 밝혔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CJ라이브시티도 민간 공모 세부사항이 확정되면 재검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CJ ENM이 K컬쳐 중심기업이고, 이 사업 관련 축적 경험이나 노하우 등도 많아 막대한 손실을 더 입는 것보다 조건이 맞다면 다시 재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CJ ENM은 지난 1월 CJ라이브시티에 유상증자 참여 방식을 통해 2000억원을 긴급 수혈했다. 목적은 1월 말 만기가 도래하는 CJ라이브시티 기업어음(CP)의 상환자금 지원용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K컬처밸리' 조성사업 재도전을 위한 사전준비 중 하나인지, 아니면 단순 채무상환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이번 2천억원 유상증자 지원도 따지고 보면 K컬쳐밸리 관련, CJ ENM이 결국 감당해야하는 부담 또는 손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작년 3분기 유형자산 처분손실 3486억원과 합하면 벌써 5500억원에 육박한다.

IB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지금까지 들어간 다른 비용들까지 모두 합하면 관련 손실은 이미 6천억원을 훨씬 더 넘었을 수도 있다”면서 “CJ그룹과 CJ ENM 입장에서는 이 정도에서 손절매를 할것인지, 더 큰 손실도 감수하고 K컬쳐 대박을 노려 재도전해야할지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