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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브][이용웅 칼럼] 계엄·탄핵으로 위기감 높지만 제2의 외환위기는 없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장기간 지속된 저성장 기조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시름시름 앓던 한국경제는 12월 들어 갑작스런 계엄 파동 이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딘가 어색하기 이를데 없는 외신이 하나 전해졌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지난 26일 장기 전망을 담은 '세계 경제 순위표 2025'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조9030억 달러(2790조원)로 추정되고 올해 세계 13위에서 내년 12위로 한 계단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CEBR은 내년부터 2029년까지는 한국 경제가 연평균 2.1%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해 1% 저정상까지 예측하는 다른 기관과는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물론 이같은 보고서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에 계엄과 탄핵사태를 변수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외부 전문기관이 볼 때 특별한 정치적 변수가 없다면 빠르지만 않지만 차분하게 성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1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생산지수(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는 112.6으로 전달보다 0.4% 감소했다. 이같은 감소세는 지난 9월 이후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매판매는 준내구재 소비가 늘면서 전달보다 0.4% 늘어나 석 달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물론 계엄 이전의 수치이지만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던 소비 부진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반가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계엄 이후 탄핵국면에서 앞다퉈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정치권의 모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을 전후해서 여야는 자기들만의 시각으로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한덕수)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마자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1달러당 1500원을 넘으면 제2 외환위기가 온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환율은 계엄 선포로 요동쳤고 탄핵 부결, 윤석열 추가 담화, 한덕수의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에 폭등했다”고 주장했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한국경제 전반에 증시와 환율 위협이 높아진 것인 만큼 헌법재판관 3인 임명, 내란·김건희 특검법의 국무회의 의결 절차가 신속히 진행돼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작금의 환율 폭등을 상대방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서로의 정치적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제2의 외환위기가 온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의 공방을 차치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이 연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같은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계엄 선포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에서 촉발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때문에 계엄에 이은 탄핵 국면에 대한 예측가능한 시간표가 나와야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상식적인 판단이다.

◇트럼프 관세폭탄의 현실화에는 시간이 걸리고 수출호조, 외환 보유도 넉넉해

무엇보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전선은 이상없이 전진하고 있다.

관세청은 12월 1일부터 20일까지 한국의 수출액이 403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6.8%의 견조한 증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 25억 2000만 달러로 3.5% 늘었고 수출은 지난달까지 14개월 연속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세계 10대 수출국 순위에서 한국은 6위를 기록해 5위를 차지한 일본을 200억 달러 차이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29일 한국무역협회가 일본 재무성의 수출액 잠정치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올해 1∼11월 한국의 대(對)세계 수출액은 6223억86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일본(6425억9800만 달러)과의 격차는 202억1200만 달러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같은 수치에서 한국 수출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으로 수출 전선에 변수가 생긴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29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트럼프 보편관세의 효과 분석: 대미 수출과 부가가치 효과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보편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 규모는 최소 9.3%에서 최대 13.1% 수준으로 추정됐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수입 상대국에 10%,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은 9.3%로 감소되는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체결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10%, 중국에는 60%, 한국을 포함한 그 외 국가들에 20%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대미 수출은 13.1%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트럼프가 후보자 시절 관세폭탄을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선거운동 때 주장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할지는 미지수이다.

바클레이스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도이치방크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트럼프가 당초 공약한 관세 수위를 그대로 추진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변수로 내놓았다.

보편적인 관세 인상이 100% 실현될 경우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은 5배 이상 늘어 성장률과 물가 상승에 타격을 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가 2기 연임에 실패한 것은 무엇보다 물가 앙등때문이었는데, 트럼프 역시 물가추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따르면 고강도의 관세 정책이 그대로 실현될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기업 투자의 위축, 관세 회피로 인한 공급망 비용의 증가라는 부메랑이 찾아와 미국의 연간 GDP 성장률에 0.1~0.3%포인트 정도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2024년 미국 경제 동향, 2025년 전망'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공약한 관세 정책은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관세 인상을 위해 필요한 절차들과 의회와의 관계, 의회의 추인 등 합법적인 절차들을 모두 시행할 경우 관세 인상의 시작 시기가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기 때문인데, 실제 트럼프 1기 때도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본격적인 관세 인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의 고강도 관세부과가 늦춰질 경우 수출 증가세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내 수입업자들이 관세인상에 앞서 선도구매에 적극 나설 것이 분명하다.

관세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최근 미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의 양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줄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전문직 외국인 노동자에 발급되는 H1-B 이민 비자 정책을 놓고 트럼프의 전통적인 지지자이자 이민 반대자들이 전문직 비자까지 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강력 반발했는데 트럼프는 28일 “H1-B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며 우선은 전통 지지층보다는 머스크의 손을 들어줬다.

이와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관세문제에 있어서도 현실적인 장애물에 부딪히면 언제든지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한국 경제가 지금 위기국면에 빠진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수출호조가 이어지고 외환보유고도 4000억 달러에 달해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대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적정 외환 보유액 수준에 보면 한국이 조금 밑에 있다”면서도 “이는 금융 신흥국에 대해서 적용하는 정량평가 기준”이라며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IMF는 더 이상 한국을 정량평가 방식으로 측정하지 않는데, 2014년부터 순대외자산국이 된 만큼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4000억 달러면 충분하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예상치 못했던 정치 상황 변화는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런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이고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외환위기 같은 경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 상황은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며 “우리나라는 지난 30년간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 왔고 현재 대외순자산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50%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2024년 3분기 기준 한국의 대외순자산은 9778억 달러로 역대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작년에 예측한 한국의 2024년 GDP규모인 1조8700억 달러와 비교하면 GDP의 약 52%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 규모는 8103억 달러로 세계 9위였다. 올해 순위는 이와 비슷하거나 더 올랐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고 1500원대를 위협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제2의 외환위기’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참고로 외환위기 당시를 보면 1990년에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이래로 무역수지 적자행진은 멈추지 않았고 1996년의 무역 적자는 무려 230억 달러에 달하며 외채는 1,000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반면에 2024년에는 11월까지 누적 무역수지는 452억 달러 흑자인데, 지난 2018년 이후 최대 규모다.

물론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올려 국내 기업이나 가계 모두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 시간표가 예측 가능하게 정리되고 트럼프 2기에 적극 대응한다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이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행 체제라고 해서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우선 급한 기업들이 앞장서겠지만 한계가 있고 여야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작금의 정치풍향을 보면 여야가 협의를 하면서 대응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