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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브][이용웅 칼럼] 미궁으로 빠져드는 한미관계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국내에서는 계엄과 탄핵이 이어지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2기가 등장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관계에 대한 전망이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발표하면서 미국을 패싱해 바이든 행정부가 당황했다는 뉴스는 이미 보도가 된 상태인데, 뜻밖에도 국회에서 김어준씨가 “한동훈을 사살하려는 암살조가 있었고 미군을 사망에 이르게 해서 미군의 북폭을 유도하려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증언하고 그 제보를 “우방국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들었다”고 해서 파장이 일고 있다.

군장성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 “미국 측에서 많은 정보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다 미국이 한국군 동향을 도청해서 얻은 정보일 수도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뉴스에 대해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 워싱턴DC 외신기자센터(FPC)에서 진행한 외신 대상 브리핑에서 암살조 운영 관련 정보를 미국이 김씨에게 전달했냐는 취지의 질문에 “미국 정부에서 나온 그러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국방위원회 내부 검토 문건에서 김씨의 주장에 대해 “과거의 제한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정보 공개가 제한되는 기관의 특성을 악용해 일부 확인된 사실 바탕으로 상당한 허구를 가미해서 구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김어준 증언은 계엄만큼이나 황당한 내용이 많아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조차 “계엄군의 ‘암살조 운영’이라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말을 충분한 사실 검증도 없이 공론의 장에 올린 국회 과방위에 유감을 표한다”며 비판에 나서고 있어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서둘러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비상계엄령 선포 당일 한 여권 관계자에게 전화를 받고 “국회에 절대 가지 마라. 내가 들은 첩보인데 가면 체포될 거고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변에 밝혀 김씨의 주장과 맞물리는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문제는 자칫 이번 계엄에 미국이 개입하지는 않았더라도 방조한 것 아니냐는 뚜렷한 근거없는 의심론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매우 가연성이 높은 이슈이다.

정치권의 신중하지 못한 대응이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한미관계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 파급력이 있어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정치에서 오래전 사라진 '반미' 구호, 여야 모두 대외관계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한미동맹과 관련, “한미동맹은 대통령 간의 동맹일 뿐 아니라 정부 간의 동맹이자 국민 간의 동맹”이라고 밝혔다.

한미동맹은 결코 가볍게 취급되는 관계가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외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시간)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국만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 대해서도 친분을 과시했다. 하지만 한국 정상에 관한 언급은 빠졌다.

어찌 보면 탄핵국면에 들어간 국내정세로 보아 당연한 반응이다.

한국 정치·경제에서 한미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사의 현장에는 언제나 ‘반미(反美)’라는 구호가 존재해왔다.

‘반미’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물론 해방 이후 한반도 분단때부터다. 하지만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고 군사정권이 자리잡으면서 수면밑으로 가라앉은 ‘반미’는 80년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한국정치사에서 하나의 결정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군이 사실상 미군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인식을 했다.

신군부가 미국과의 조율없이 광주에 군대를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심에서 미국과 신군부가 광주학살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학생운동권에서 ‘자주’와 ‘반미’는 거의 일상화된 구호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2년 6월 13일 당시 경기도 양주군(현 양주시)에서 중학생 두 명(효순이, 미선이)이 주한미군의 공병전차에 깔려 숨진 이후 반미운동은 한참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5월 2일부터 2008년 8월 15일에 걸쳐 한미 FTA 개정 당시 광우병 논란의 핵심이 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해 대규모 시위가 전개됐는데 공격은 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향했다.

당시 광우병 시위는 노무현 정권의 ‘한미 FTA’추진과 맞물려 진보진영의 중요 의제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책임을 묻는 직접적인 반미 움직임은 그 전에 비하면 적었다. 물론 미국 조야에서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도보수지인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당시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우려는 한국 대통령을 수세로 몰고 있으며 반미감정이 얼마나 효과적인 정치수단인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반미’라는 구호가 매우 설득력있는 정치적 메시지로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 정치·사회운동에서 ‘반미’라는 키워드는 사실 사라져가고 있었고 힘을 얻지 못했다.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 세월호 근처에 미군 잠수함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음모론이 등장했지만 시민들의 호응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트럼프 정부 1기때인 2018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서로 더 큰 핵버튼을 가지고 있다고 위협을 할 때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이 미국 언론에 기고문을 내어 미국의 전쟁위협을 우려했지만 국내에서 대규모 반미운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궁극적인 핵협상에는 실패했지만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가져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에 도움을 주는 그런 관계로 발전했다.

사실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급속히 호전되고 있었다.

2021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가운데 거의 8명이 미국을 가장 친밀하게 인식하는 나라로 꼽았다.

통일평화연구원은 그해 7월~8월 사이 한국 갤럽에 의뢰해 성인 남녀 1200명을 면접조사한 결과 주변국 중 어느 나라를 가장 가깝게 느끼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7.6%가 미국을 압도적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미동맹 70주년을 계기로 한국갤럽에 의뢰한 ‘2023년 한미관계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91.6%는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과반(53.7%)이 ‘한미동맹을 지속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변 국가들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결과, 미국(54.1%) 일본(20.4%) 중국(7.6%) 등의 순으로 가깝게 느낀다고 답해 우리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K팝, K드라마 등의 영향과 세계경제를 리드하는 한국산 제품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여론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로는 지난 10월 10일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 조사 결과가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미동맹이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도움 되느냐는 질문에 미국인들중 68%가 동의했다. 해리스 지지자나 트럼프 지지자 모두 비슷한 대답을 했다. 한미동맹을 응원한다고.

이같은 시대적 흐름 탓인지 이제 한국에서는 아무리 진보진영이라고 해도 ‘반미’라는 구호로 여론을 집중시킬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계엄 이후, 한국의 ‘반미 구호’보다 미국의 ‘코리아 패싱’이 더 큰 화두로 등장할 듯.

이처럼 한국과 미국 국민 모두가 서로를 가깝게 느끼고 있는 시점에 계엄이라는 최악의 정치 시나리오가 등장한 것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초에도 계엄 강행을 고려했다는 증언을 했다. 당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둔 시점이었으나 APEC에 불참하더라도 계엄을 단행하는 것이 어떤지 김 전 장관의 의견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윤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 파탄은 물론이고 여타 선진국 그룹들과 척을 지더라도 국내 정치와 계엄에만 몰두했다는 증좌인 셈이다.

벌써부터 계엄과 탄핵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적 위기가 한미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2기 관계자들은 계엄 이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한국정부를 걸림돌로 거론하기도 했는데 이제 미국에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한국내 미국인들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계엄을 일으키는 한국 정부를 불신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마무리된다고 해도 이번 사태는 방위비 부담을 증가시키려는 트럼프 계획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탄핵안에 “북중러와 멀리 하고 미국, 일본에 치우친 외교정책”을 문제삼은 대목에 미국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 탄핵안이 나온 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 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이 미국, 일본과 협력한 내용이 탄핵 사유로 포함된 건 매우 충격적(very disturbing)”이라고 평했다.

결국 외교관련 대목은 이재명 대표의 지시대로 2차 탄핵안에서는 빠졌다.

하지만 민주당의 외교색깔을 ‘친(親)북중러, 반(反) 미일’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 트럼프 정부와는 앞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더라도 험난한 관계를 예상할 수 밖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전후해 미국은 민주당 존슨 행정부에서 공화당 닉슨 행정부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닉슨은 박정희 정권의 불안정성을 문제삼아 주한미군 1개사단을 실제 감축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4일(현지 시간)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일 미국대사를 북한 등을 담당하는 특별임무대사로 지명했다. 이 사람은 과거 “트럼프가 한국, 일본, 독일 등의 미군을 귀환시키고 싶어 한다”며 주한미군 감축 검토 사실을 처음 공개한바 있다.

만약 탄핵정국 이후 우리나라 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된다면 트럼프는 1차 탄핵안을 집요하게 문제삼아 주한미군 철수와 방위비 증액을 연계할 것이 분명하고 통상분야에서도 우리의 큰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 여권 세력이 재집권을 한다고 해도 윤석열 정부의 독단적인 계엄을 문제삼으면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반미’ 기운이 힘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설령 민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해도 반미시위나 반미여론을 등에 업고 트럼프와 협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불법계엄이라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지금 국회에서는 ‘미군살해’ ‘생화학전’ ‘미군의 한국군 도청’ 등 어마무시한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미국 조야(朝野)에 자리잡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친중반미’ 이미지를 어느 정도까지는 고쳐야 집권이후라도 대미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조언하는 그룹이 하나도 없다면 그야말로 문제가 아니던가.

윤석열 정부가 인기가 급락한데는 김건희 여사 문제도 있지만 지나친 미일(美日) 편향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 등과 필요 이상의 갈등관계를 유발한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은 특히 러시아와 북한이 가까워진다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숙이 개입하려고 해 국내 반발여론이 아주 거세게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도 한국인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는 러시아와 중국에 편향된 외교로 일관하면서 특히 한미동맹에 균열을 일으킨다면 국민적 지지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말 그대로 ‘균형자 외교’가 절실한 상황이다. 때문에 여야 모두 외교에서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