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시간이었다. 삼성전자가 예상치를 뛰어넘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하자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최고 12만원까지 내다보는 보고서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한국투자증권은 5일 실적 발표 후 “메모리 업사이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목표가를 12만원으로 올렸다. 같은 날 KB증권과 IBK투자증권은 11만원을 제시했다.
JP모건, HSBC, 씨티증권 등 외국계도 목표주가를 일제히 11만원으로 올렸다. 국내외 증권사들의 분석이 거의 일치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목표주가가 9만원에서 10만원 11만원 12만원으로 계속 수직상승하고 있는 것은 물론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삼성전자 목표주가 12만원은 업황회복에 기술혁신이 더해져 가능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조6천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31.25%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작년 연간 영업이익(6조5700억원)보다도 많은 수치이다.
이러니 시장이 깜작 놀랄만도 하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SK하이닉스에 밀린 고대역폭메모리(HBM) 2등 회사'였다면 이제는 12만 고지를 향해 뛰는 절대 강자가 된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를 팔면 팔수록 적자였지만, 메모리 하락 사이클이 끝나고 상승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팔면 팔수록 이익을 보는 구조로 바뀌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D램 평균판매단가(ASP)는 전분기 대비 최대 20%, 낸드플래시는 22~28% 상승했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반도체의 두 자릿수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작년) 4분기 실적은 중요하지 않다”며 “수요는 이제 순풍이 되고, 실적에 대한 가시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SK하이닉스에 밀렸던 HBM에서도 청신호가 나오고 있어 삼성전자의 주가 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의 HBM을 테스트하고 있다. 기대가 크다”고 발언한 후 삼성전자를 둘러싼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황 CEO는 삼성 HBM3E 12단 실물 제품에 '젠슨 승인(approved)'이라고 서명을 남기기도 했다.
그동안 삼성전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시장이 삼성전자의 기술혁신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AI) 특수로 인해 AI칩 제조에 투입되는 HBM이 삼성전자의 실적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HSBC에 따르면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올해 65% 성장할 것으로 추정됐다. 2025년에도 48%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기술 빼오던 삼성전자 ,이제는 기술유출 걱정해야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1983년 12월 1일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격차가 났던 반도체 기술을 4년 정도로 단축시키는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1983년 삼성반도체통신 반도체사업본부장으로 64K D램 개발 현장을 지켰던 김광호 전 삼성전관(현 삼성SDI)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당시를 회고했다.
“64K D램 개발은 삼성이라는 회사가 첨단 기술을 갖춘 업체로 국내외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첫 번째 사건이다. 개발 발표 이후 재고로 쌓여 있던 삼성 전화기가 동이 날 정도로 관련 사업에 주는 파급 효과가 엄청났다.”
기술을 얻기 위해 회장은 일본을 부지런히 넘나들었고 총 309개에 달하는 공정개발을 위해 107명의 개발인력이 마치 군대처럼 움직였다.
삼성전자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기술 개발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반도체가 몰락할 때 일본 언론에 등장했던 기사 하나를 보자.
“일본 기술인력이 한국기업으로 탈출하고 있다. '기술자의 반란'을 통해 구조조정과 종신고용제 붕괴로 회사에 대한 불신감이 커진 기술자들이 삼성 등 한국 회사로 전직, '제조강국' 일본의 장래를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경제가 불황기에 접어든 지난 90년대 이후 대기업들의 연구개발비 축소로 기술자들의 사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제조업의 연구개발 효율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닛케이비즈니스의 2006년 6월 커버스토리에 나온 기사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도시바에서 일하다 삼성으로 옮긴 C씨는 “현재 한·일 기업 간 기술 격차는 5~10년이지만, 곧 3~5년으로 좁혀지고 장래는 추월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성은 90년대부터 일본 인력 스카우트에 나섰는데, 히타치 미쓰비시 마쓰시타 등 일본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 출신 임직원 100여명이 삼성으로 이직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경영 효율만 따지면서 연구자를 무시하는 풍조가 계속될 경우 일본의 우수 인력 해외 탈출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일본의 유력 주간지 슈칸신초의 인터넷판 데일리신초 역시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 최고였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무너진 것은 한국·대만 등 해외기업에 기술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됐던 한 일본 반도체 전문가는 “1990년대 중반 많은 일본인 기술자들이 주말마다 한국과 대만으로 일본 반도체 기술을 전수하러 다녔다”며 “토요일에 나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온다는 뜻의 '토귀월래' 아르바이트도 성행했다”고 전했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이 어쩌면 20년 전 일본의 모습과 그리 비슷한지.
지난 1월 검찰은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기술 등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전직 삼성전자 부장과 전직 협력업체 직원을 전격 구속 기소했다.
삼성전자 전직 부장 김모씨와 협력업체인 반도체 장비납품업체 A사 전 직원 방모씨는 국가 핵심 기술인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기술을 중국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무단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김씨가 2016년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당시 신생 업체였던 CXMT로 이직하면서 반도체 ‘증착’ 기술을 비롯해 8개 핵심 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 등은 기술을 유출하는 대가로 수백억원대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경력 20~31년의 베테랑 직원 3명이 한국 화성·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정보를 빼돌려 중국에 ‘복제공장’을 세우려다 구속이 된 경우도 있다.
이는 삼성전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SK하이닉스에서 D램과 HBM 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연구진이 2022년 7월 SK하이닉스를 퇴사하고 이후 미국 마이크론에 임원급으로 이직했는데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 사례는 총 96건에 달한다. 업종별로 보면 반도체에서 가장 많은 총 38건의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됐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부의 승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국가 핵심기술에 관련돼 있고 개발하고 컨트롤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특단의 보호조치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국가간 기술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핵심기술과 인력이 중국 등에 자꾸만 넘어가는 것은 그만큼 보호와 통제, 보상이 미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일본 언론은 일본에서 기술이 한국 등으로 유출되는 이유를 일본 기업 내 보상체계의 미흡에서 찾기도 했다. 바로 그와 똑같은 일들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 4일 국가안보실 왕윤종 제3차장을 초청해 제3차 '글로벌 경제 현안대응 임원협의회' 회의(협의회)를 개최한 것도 다 이같은 기술유출 현실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김봉만 한경협 국제본부장은 협의회에서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을 기업 특혜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무대에서 우리 기업들의 제대로 된 실력발휘를 위해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최근 총선 국면에서 일부 정당에서는 아예 “대기업 임금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에서도 알수 있듯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선도적 기술인재에 대한 보상이 마치 무슨 특혜처럼 인식되는 일부 사회적 분위기도 우려스러운게 사실이다.
90년대초 일본 반도체 기술자들은 자국에서 임금이 20% 삭감되는 상황에서 연봉 3억원을 제시하는 삼성에 몰래 취업을 했다고 다름아닌 일본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기술인재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우가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이런 일에는 기업은 물론 국가적 지원도 가세해야 우리는 삼성전자 주가가 12만원은 물론이고 20만원, 30만원까지 오르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지금처럼 방치하고 기술입국에 대한 초심을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든다면 우리는 삼성전자 주가가 외려 3만원까지 빠지는 장면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실재 전개된다면 그것은 결코 삼성전자만의 재앙은 아닐 것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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