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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한미약품 분쟁’ 불씨 된 상속세,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지난 28일 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전 사장 형제의 승리로 1차 정리가 되었다. 여기서 1차라는 용어를 쓴 것은 가족간 분쟁이 이번에 완결이 되었다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0년 창업주 별세 후 송영숙 회장과 딸 임주현 그리고 아들 형제로 나뉘어 벌인 경영권 분쟁의 속사정을 외부에서 누가 정확하게 알 것인가.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상속세 문제가 분쟁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어쨌든 임성기 창업주의 별세 이후 한미사이언스(그룹 지주사) 주식은 아내인 송 회장에게 698만9887주, 세 자녀에게는 각각 354만5066주 상속됐다. 상속될 당시 주가 기준으로 1조370억원 규모다. 이네들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총 5400억원. 송 회장이 약 2200억원, 세 자녀가 각각 약 100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오너 일가는 은행이나 증권사의 주식 담보대출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일부 마련했지만 완납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송 회장은 2021년 은행과 증권사 등을 통해 약 1300억원 규모 주식 담보대출을 받았다.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은 1871억원, 차남인 임종훈 전 사장은 840억원, 딸인 임주현 부회장은 680억원가량 담보대출이 남아 있다.

 

이번에 주총에서 승리한 임종윤 전 사장의 경우만 보자.

 

그가 주식담보대출 등 금융권에 등재된 개인 부채의 연간 이자만 100억원에 달한다. 임종윤 사장이 보유 중인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9.91%로 이를 활용한 주식담보대출 비중은 99%를 웃돈다. 뿐만 아니라 아내인 홍지윤 씨와 자녀들을 합한 가족 대차 비율은 보유 주식 비중의 121%를 넘긴다.

 

상속세 문제가 이들 일가를 완전히 짓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모펀드 등이다.

 

한미그룹은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약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무산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등장한 기업이 OCI그룹이다. 한미그룹과의 통합으로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7703억원에 취득할 예정이었다. 이 중 일부를 현금으로 확보하게 되므로, 합병을 추진했던 송영숙 회장의 상속세 마련에 숨통이 트이게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임종윤, 임종훈 형제들의 상속세는? 이들 옆에도 몇 개 펀드 등이 어른거리고 있다. 해서 이네들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송영숙 회장은 표대결에 앞서 “해외자본에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두 아들의 선택은 해외 자본에 아버지가 남겨준 소중한 지분을 일정 기간이 보장된 경영권과 맞바꾸는 것이 될 것”이라며 “두 아들의 말 못할 사정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한국기업 짓누르는 상속세 문제...누가 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국의 상속세는 2000년 이후 24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상속세 부담이 갈수록 우리 경제와 기업을 짓누르고 있지만 개선책이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부자감세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상속세 문제를 전면에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정치권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1997년 45%, 2000년 50%로 계속 인상됐다. 더욱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적용하면 실제 상속세율은 60%에 달하며 이 부분만 따지면 일본(55%)을 넘어 세계 1위 수준이다.

 

반면 G7 국가들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있다. 캐나다는 이중과세 문제 해소를 위해 1972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상속세를 처음 도입한 영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40%에서 20%로 대폭 낮추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미국은 연방세로 40%의 상속세가 있고 유산취득세 개념으로 각 주에 따라 15% 까지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다. 상속세 있는 나라의 공통점은 공제가 크다는 것이다. 독일은 300억원까지, 미국은 100억원 까지는 과세를 안한다.

 

상속세가 아예 없는 OECD 회원국도 15곳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 GDP(국내총생산)에서 상속·증여세의 비율도 0.54%(2020년 기준)로 OECD 평균(0.13%)의 4배를 넘는다.

 

이 때문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건의서를 통해 “지난 30년간 G7 국가는 상속세를 점진적으로 낮춘 반면, 우리나라는 상속세를 높임에 따라 부의 해외 이전, 편법적 탈세 등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과도한 상속세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민간 소비 여력을 높일 수 있는 세제를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일정 규모 이하의 기업에 한정해 적용하는 '가업상속공제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여론을 떠보는 원칙론을 내비친 것에 불과하지 언제 우리나라가 부자감세라는 개념적 굴레에서 벗어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소득세도 높고 상속세도 높으니 세율이 높은건 틀림 없다. 거기에 주식에 대한 할증 평가도 하니 너무한거 아니냐는 여론이 나오는 것 같다.

 

상속세 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의 재분배’ ‘오너보다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으뜸’ 이라는 말들을 금과옥조처럼 외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우리나라가 왜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 국가가 되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상속세는 이제 재벌 등 초고액 자산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경제인협회가 KB월간주택가격동향·통계청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 상속세를 내야 하는 서울 아파트 거주 가구는 올해 77만2000가구에서 2030년 175만3000가구로 늘어나 서울에서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가구는 80%로 급증할 전망이라고 한다.

 

◇상속세 문제 해결은 결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서 출발해야

 

락앤락, 유니더스, 농우바이오, 쓰리세븐은 국내 또는 해외 시장을 제패한 1등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경영권이 모두 해외 자본 등에 넘어갔다.

 

이유는 바로 상속세였다.

 

밀폐용기 생산업체 락앤락 총수일가는 상속세 부담 등의 이유로 2017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에 경영권을 넘겼다.

 

손톱깎이 세계 1위 업체였던 '쓰리세븐'은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인해 발생한 상속세금 150억원을 마련하고자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콘돔 생산업체 1위였던 '유니더스'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지난 2015년 창업주였던 김덕성 회장이 타계하면서 아들인 김성훈 대표가 최대주주로 올랐지만 상속세 5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겨야만 했다.

 

1984년 스웨덴의 유명 제약 회사 ‘아스트라’의 최대 주주였던 창업주 부인 샐리 키스트너가 사망하자, 자녀들은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물려받은 주식을 모두 팔았지만 주가가 대폭락을 해서 결국 세금을 다 내지도 못하고 회사는 영국의 ‘제네카’에 헐값에 넘어갔다. 이 회사는 현재 세계 제약업계에서 매출 10위권 안에 드는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70%에 이르렀던 스웨덴의 상속세는 지금 0%이다.

 

이 대목에서는 아들이 회사를 외국계에 넘기려 한다는 송 회장 주장의 진위여부를 다시금 곱씹게 된다.

 

최근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재벌드라마가 하나 있다.

 

‘퀸즈’라는 가상의 재벌가문을 다룬 tvN 주말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그것인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68개국에서 TOP10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눈물의 여왕’에서는 재벌 그룹 내부 가족간 갈등을 활용해서 아예 드라마속 재벌인 퀸즈그룹을 송두래째 먹으려는 빌런(악당)이 등장하는데, 그림자 기업과 정체불명의 펀드 등이 은밀하게 작동한다.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넘어간 케이스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전문 경영인이나 성실하게 일했던 임직원들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돈냄새만을 맡고 다니는 사모펀드 등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작가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드라마를 볼 때와는 달리 기업을 공격하는 M&A세력을 빌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너 집안 자체를 빌런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것 자체가 빌런으로 인식이 되는 반기업정서가 우리 사회에 깊어진 것을 좌파들의 상투적인 공격탓으로만 돌릴수는 없다. 기업인들 스스로 책임질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것 저것 따지기 전에 기업들이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충실하는 것이 상속세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