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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전쟁에도 승승장구하는 러시아, 병든 서유럽을 비웃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선언하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그로부터 만 2년이 지나고 이제 3년째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마치 장기간 지속되다 잊혀져간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보듯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다.

 

그 사이 러시아는 최근 선거를 통해 푸틴의 종신집권을 사실상 승인했고, 서유럽은 전쟁발 인플레이션으로 장기간 신음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 전쟁 당사국은 '고도성장', 주변국은 '저성장' 아이러니

 

이같은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올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해 세상을 깜작 놀라게 했다.

 

IMF는 러시아가 지난해 3%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의 GDP 성장률을 앞서는 수준이다. 미국은 올해 2.1% 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2%에서 2.1% 정도 성장률이 예상되는 한국보다도 물론 높은 수치이다.

 

이같은 성장에 힘입어 러시아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2.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서방 기업이 철수한 빈자리는 병행수입 제품과 자체 브랜드가 아무 문제없이 채워놓고 있다.

 

가령 짝퉁 맥도날드 체인점인 ‘프쿠스노 이 토치카(맛있으면 그만)’는 언제나 손님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 3000억 달러를 동결하고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출에 타격을 가하는 등 세계 경제로부터 러시아를 격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2년 12월 미국은 G7국가들 및 호주·노르웨이·스위스와 함께 유가 상한제를 도입해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을 배럴당 60 달러로 제한했다. 2022년 12월 5일에는 EU의 러시아산 원유 해상 금수조치가 발효됐고 이듬해 2월 5일에는 EU가 러시아산 석유제품의 수입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는 “러시아 당국의 통계 미발표로 러시아 석유 수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 및 석유회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 및 인도가 EU 시장을 대체하는 러시아 석유의 주요 수입국임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중국 석유 수출은 전년 대비 24% 증가한 1억7000만t에 달했으며, 대인도 석유 수출 또한 전년 대비 70% 증가한 7000만t에 달해 러시아 석유 수출 비중에서 중국과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0%와 28%로 추정되는 상황이라고 코트라 뉴스는 전했다.

 

더욱 기막힌 일은 산유국인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로부터 석유를 수입해 국내의 수요를 채우고 자국산 석유를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한 국가에 수출하는 일종의 석유 교환을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통에도 성장하는 나라는 러시아뿐만은 아니다. 전쟁 상대국인 우크라이나는 더욱 가파르게 성장했다.

 

우크라이나 통계청은 지난달에 2023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5.3% 올랐고, 4분기(10∼12월) GDP도 4.7% 성장해 3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첫 해인 2022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28.8% 하락했지만, 지난해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곡물 수출 재개가 결정적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풍작을 맞아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러시아의 곡물 수출 협정 파기로 막혔던 흑해 항로도 되찾으며 곡물 수출량을 전쟁 전에 가깝게 회복했다.

 

다만 올해 경제 성장세는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는 한다. 그래도 2024년 예상성장률이 3~4%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넘쳐나자 이에 항의하는 폴란드 농민들이 시위가 몇 달째 이어지기도 했다. 유럽 내 다른 나라도 비슷한 상황이다.

 

반면 독일 등 서유럽은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23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월 대비 0.3% 하락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보다 성장률이 낮다.

 

독일을 포함한 유로존의 2023년 4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약 0으로 기본적으로 증감하지 않고, 연율로 환산하면 0.1% 성장한다.

 

유로존에서 30%를 차지하는 독일 경제는 이처럼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2023년 전년 동기 대비 0.2% 하락했다. 독일경제연구소는 2024년 독일 GDP가 0.5%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독일 경제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걱정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경제상황이 단기에 개선되기 어려워 독일이 다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유로에서 탈퇴했지만 여전히 서유럽 경제권인 영국은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0.3% 감소했다. 이미 작년 3분기에도 역성장을 기록한 영국은 독일에 이어 기술적 경기침체에 진입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구매력 평가(PPP) 기준 자산 순위를 보면 더 기가 막힌다.

 

2022년 말 기준 러시아의 PPP 기준 자산규모는 처음으로 5조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유럽의 3대 경제 대국인 독일, 프랑스, 영국을 모두 앞지른 수치이다.

 

순위로는 유럽 1위, 세계 5위였다.

 

PPP는 단순한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다른 국가 간의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비용까지 고려, 환율과 물가상승률의 관계를 말해주는 개념이다.

 

◇ "한국, 유럽의 병자 독일과 비슷" 국책기관의 경고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독일의 경제침체 원인은 에너지 가격 상승, 노동시장 경색 등 공급 요인과 금리 인상, 중국 경기둔화 등 수요 요인, 그리고 재정지출 여력 제한, ICT 분야에서의 낮은 경쟁력, 에너지 전환 비용 등 정책 및 구조적 요인을 꼽을 수 있다”고 요약했다.

 

듣고보니 마치 우리나라 경제를 말하는 것같은 느낌이다.

 

한국도 사실 러시아 전쟁의 여파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고 중국의 경기둔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재정 여력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한국은 제조업 비중, 대중국 무역 비중, 대외의존도, 인구구조 변화 등의 측면에서 독일과 유사하기 때문에 독일 사례를 참고하여 경제체질 개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독일 사례를 참고하여 재생에너지 인프라 등 친환경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되, 에너지 비용과 국내 산업 역량을 고려한 속도 조절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은행도 보고서에서 최근 20년간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이어져 온 한국경제를 독일이 처한 현상과 유사하다고 보고 “우리도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대비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전쟁을 치루는 나라들보다 더 깊은 저성장에서 허덕이는 것은 비단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경제 역시 기운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심지어 한국은 경제성장률에서 지난해 일본에 뒤쳐졌다. 외환위기 때였던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따지고 보면 독일이나 한국은 전쟁이라는 무서운 재앙보다 더 깊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출산, 고령화, 경직된 노동시장, 빡빡한 재정구조, 무모한 에너지 전환 비용 등등...

 

경제는 한번 병이 들고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백약이 무효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오래 끌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보다 출생률이 떨어진다고 하더니 이제는 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보다 경제가 죽어있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이 수십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일본의 ‘잃어버린 시간’을 닮아간다는 경고를 귀가 따갑게 들었는데 이제는 ‘유럽의 병자 독일’과 비슷한 환경에 처했다는 경고가 국책기관에서 나오고 있는 현실이 어찌 예사롭다 할 수 있겠는가.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