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기업, 영업익 35% 급감
- 레미콘 출하량 감소, 판관비 증가
- YTN 인수·오너 지분 거래 논란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국내 레미콘업계 1위 기업으로 상장사인 유진기업의 작년 실적이 극히 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유진기업의 작년 잠정 영업실적에 따르면 작년 연결기준 매출은 1조3933억원으로, 2023년 1조4734억원에 비해 5.4%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2023년 844억원에서 작년 551억원으로 35%나 줄었으며, 당기손익은 23년 693억원 흑자에서 작년 983억원 적자로, 적자 전환했다. 종속 자회사 실적들을 제외한, 본사만의 실적을 뜻하는 별도기준 영업이익도 239억원에 그쳤고, 당기손익은 673억원 적자로, 역시 적자 전환했다.
이 회사 작년 3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연결 매출은 2023년 1~9월 1조905억원에서 작년 1~9월 1조442억원으로 소폭 줄었고,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844억원에서 495억원으로 많이 감소했다. 작년 전체 실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이다.
하지만 당기손익 부문은 많이 다르다. 2023년 1~9월 693억원 흑자에서 작년 1~9월 514억원 흑자로, 흑자 폭이 약간 밖에 줄지 않으면서 흑자는 유지했다. 작년 1~9월까지는 적자 전환이 없었다.
작년 전체 당기손익이 큰 폭의 적자로 빠지려면 작년 4분기(10~12월)에 큰 폭의 분기 순손실이 발생했다는 얘기가 된다. 도대체 작년 10~12월 석달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대규모 분기 순손실이 생겼을까?
유진기업 측은 우선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한데 대해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레미콘 출하량 감소와 원재료비 상승, 판매관리비 증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작년 사업보고서가 나오지 않아 작년 전체 영업흐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작년 1~9월 실적인 3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레미콘 출하량 감소와 판관비 증가는 대충 맞는 설명으로 보인다.
유진기업 별도 매출에서 레미콘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1~9월 66%에 달했다. 자회사들을 포함한 연결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0%를 넘는다.
또 이 회사 레미콘 공장들의 평균 가동율은 2023년 42.8%에서 작년 1~9월 36.1%로 크게 떨어졌다. 회사 주력인 레미콘 공장 가동율이 이렇게 떨어지면서 출하량도 많이 줄었고, 이것이 전체 매출 감소로 연결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원재료비 상승 때문에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는 설명은 맞지 않아 보인다. 작년 3분기 연결 재무제표 주석의 비용 항목을 보면 연결 기준 원재료비는 2023년 1~9월 3302억원에서 작년 1~9월 3027억원으로 오히려 8.3%나 줄었기 때문이다.
별도기준 원재료비도 같은 기간 8.6% 감소했다. 이런 흐름은 작년 4분기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원재료비 상승 때문에 영업이익이 줄었다거나 제품값을 올려야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원재료비를 포함한 연결 매출원가 감소율은 2.7%에 그친 반면 연결 매출 감소율은 4.24%였다. 같은 기간 판관비는 803억원에서 882억원으로 9.8%나 오히려 증가했다. 영업이익 격감은 원재료비나 매출원가 상승 때문이 아니라 매출원가 감소폭보다 더 큰 매출 감소와 판관비 증가 때문이라고 설명하는게 맞을 것이다.
유진기업 측은 또 작년 큰 폭의 당기손익 적자 전환의 이유로, 지분법 이익 축소 및 관계기업투자주식 손상차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분법 이익 축소는 작년 1~9월 실적에도 이미 나타났다. 작년부터 유진기업 관계기업으로 새로 편입된 보도전문 케이블TV YTN의 대규모 적자의 영향이 특히 컸다. YTN은 작년 1~9월 264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입어 유진기업에 82억원의 지분법 손실을 안겼다.
다른 관계기업인 건설사 동양과 그린이니셔티브2호사모투자도 작년 1~9월 각각 69억원 및 142억원 씩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지분법이익 축소만이 작년 대규모 적자 전환의 전체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회사 측 설명처럼 작년 4분기에 발생한 대규모 관계기업투자주식 손상차손의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어디서 손상차손이 발생했는지, 또 그 규모가 얼마인지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작년 1~9월 실적으로 볼 때 작년 9월까지 적자를 많이 냈던 YTN에서 대규모 손상차손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보통 기업들은 시세보다 비싸게 인수한 기업의 인수 프리미엄을 영업권으로 장부 처리하고, 이후 적자나 업황 악화로 인수기업의 자산가치가 많이 떨어질 때 영업권 가치 하락폭을 연말에 손상차손 처리하기 때문이다. 유진기업은 또 작년에 적자를 많이 낸 다올투자증권 주식도 다량 보유 중인데, 여기서 손상차손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분법 이익 축소나 대규모 손상차손 말고, 회사 측이 밝히지 않은 적자전환 요인이 또 하나 더 있다.
유진기업 분기보고서를 보면 유진기업은 작년 11월 종속 자회사인 천안기업 보통주 31만3379주를 특수관계자로부터 246억원에 취득한 것으로 나온다. 천안기업은 2023년 매출 80억원 중 임대수익이 76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임대업체다. 본사는 천안에 있지만 임대사업장인 빌딩은 서울에 있다.
이 서울 빌딩을 유진그룹 주력사들인 유진기업과 유진투자증권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아 먹고 사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2023년 임대료 수익은 유진투자증권에서 63억원, 유진기업에서 11.3억원씩이었다. 두 주력 계열사 덕에 편안하게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는 회사다.
2023년 말 천안기업의 최대주주는 유진기업(80.88%)이고, 유진그룹 최대주주인 유경선 그룹 회장과 그의 바로 밑 동생인 유창수 부회장도 각각 11.56%, 7.56%씩 갖고 있다. 작년 11월 유진기업이 특수관계자로부터 취득했다는 천안기업 주식 31만3379주는 정확히 이 두 형제가 보유 중이던 천안기업 지분과 일치한다.
유진기업이 246억원을 들여 오너일가 회장 형제가 보유 중이던 천안기업 주식을 모두 사준 것이다. 이로써 유진기업의 천안기업 지분은 100%가 되었다. 회장 형제는 유진그룹 두 주력기업들이 임대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려주는 계열사 주식을 그대로 계속 갖고 있어도 될 텐데 왜 한 주도 안남기고 싹 팔아 치웠을까?
어디에도 그 설명은 없지만 유경선 회장 형제가 어딘가 다른데 쓸 급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유진기업은 회장 형제를 위해 굳이 더 안사도 될 천안기업 지분 매입에 246억원을 더 지출했다. 이 비용 만큼 당기순익을 까먹었다.
오너 일가 강요에 의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이 더 지출됐다면 배임이나 공정거래법상의 사익편취 혐의까지 적용될 수도 있다. 정확한 판정은 국세청이나 공정위 등 관계당국만이 내릴 수 있다.
아무튼 작년 유진기업의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많이 감소하고 당기손익이 큰 폭의 적자로 전환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다시 정리할 수 있다. 건설경기 침체 지속으로 레미콘 출하량이 감소했는데도 판관비는 더 늘었고, 여기에다 YTN 인수 부담과 유경선 회장 형제 지분 매입 부담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회사 측이 주장하는 원재료비 상승은 영업이익 급감의 원인이 아니다. 다만 시멘트분말류, 자갈 등 레미콘 주요 원재료 가격이 작년에도 대부분 계속 오른 것은 사실이다.
유진기업의 작년 1~9월 시멘트 평균 매입가격은 톤당 97792원으로, 23년 89931원, 22년 76368원에 비해 각각 8.7%, 28%씩 올랐다. 같은 기간 자갈 평균 매입가격도 ㎥당 11494원, 11175원, 10567원 등으로 조금씩이지만 계속 오름세다.
반면 다른 레미콘 제조 원재료인 모래는 같은 기간 ㎥당 20129원, 20348원, 17378원씩으로, 23년까지 크게 올랐다가 작년에는 소폭 하락했다. 레미콘 제조 원재료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시멘트분말류가 64%, 모래 20%, 자갈 15.4% 정도씩이다.
시멘트와 자갈 매입가가 작년에 계속 올랐는데도 전체 원재료 비용이 작년에 오히려 줄어든 것은 전체 레미콘 출하량이 많이 줄어든 때문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진기업은 시멘트와 모래값이 계속 오른다는 이유로, 레미콘 제품값과 모래제품가격 등을 작년에도 계속 올렸다. 레미콘 제품 평균가격은 작년 1~9월 10만1119원으로, 23년 95189원, 22년 80635원 등에 비해 각각 6.2%, 24.4%씩 올랐다. 같은 기간 모래제품 평균가격도 19492원, 17460원, 16600원 등으로 계속 올랐다.
정작 자신은 다른 이유들로 큰 적자에 빠졌으면서 이렇게 레미콘업체나 시멘트업체들이 원자재값 상승을 핑계로 경쟁적으로 제품 가격을 마구 올리는 바람에 물가불안이 가속된 것은 물론이다.
전국 재건축, 재개발 시장 등도 폭등하는 공사원자재값과 인건비 등 때문에 거의 올스톱 상태다. 이것이 건설경기를 다시 마비시키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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