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현재 3.5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낮췄다.
2021년 8월 0.25%포인트 인상과 함께 시작된 통화 긴축 기조를 마무리하고 완화 시작을 알리는 3년 2개월 만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다. 금리인하 자체는 2020년 5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그동안 불안한 부동산 시장을 언급하면서 금리인하 시점에 대해 계속 모호한 입장을 취해 10월은 고사하고 11월에도 금리인하가 어려울 수 있다고 연막을 피워왔다. 하지만 이제 부동산 시장도 어느 정도 완화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2024년 9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은 5조7000억원 증가한 1135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는데 9조2000억원 늘었던 8월에 비해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4.65(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1.6% 올라 2021년 3월(1.9%) 이후 3년 6개월 만의 1%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면초가 양상의 한국경제, 금리인하로 극복할 수 있을까
한쪽에서는 연일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내수가 부진하면서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대 초반에 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었던 게 저간의 상황이었다.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은 연일 사상최고 운운하면서 외형적으로는 한국경제가 잘 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내수부진은 요지부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일찌감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 ‘피벗’이 이달에 이뤄지지 않으면 4분기 경기 회복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누적되어 왔다.
기획재정부는 올 1분기 GDP가 1.3% 증가했을 당시 3분기 증가율이 전분기 대비 0.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재부가 올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6%로 대폭 상향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재부는 은근히 한국은행이 8월부터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2분기 GDP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0.2%를 기록하면서 기재부에 비상이 걸렸다.
내수의 핵심인 민간 소비와 건설·설비투자는 하반기 들어서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9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소매판매 현황을 보면 올해 상반기 소매판매(경상지수) 증가율은 작년 상반기 대비 0.3%에 그쳤다.
상반기 기준으로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8.1%, 7.1%씩 늘던 소매판매가 누적된 물가 상승으로 인해 2023년(2.2%)과 2024년(0.3%)에는 점차 둔화되고 있는게 현실이었다.
최근 한 달간의 공사실적을 뜻하는 건설기성도 5월 4.6% 감소한 이후 4개월 연속 마이너스 흐름이다. 특히 작년 3월부터 9월까지 건설수주가 7개월 연속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줄어들고 있어 내수회복 기대감을 꺽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서울과 수도권 주택 공급이 급감하고 있는데, 특히 공사 중단 및 지연은 시공사에 큰 타격을 주는 등 건설경기와 내수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었다.
설비투자도 올 8월 전달 대비 5.4% 감소했다.
올해 4분기 소매시장 체감 경기 회복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지난 6일 대한상공회의소는 500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 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전망치가 80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올해 RBSI는 1분기 79에서 2분기 85로 반등한 뒤 3분기 82, 4분기 80으로 다시 낮아졌다.
지난해 56조원에 이어 올해도 세수 결손이 30조원에 육박하고 있어 정부의 재정정책에 의한 경기부양은 갈수록 어려워진 상태여서 정부는 기준금리 인하만을 애가 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해서 시장에서는 금리인하로 내수를 살리기에는 이미 ‘실기’한 상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정부의 추가적인 대응이 절실해지고 있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대해 이창용 총재는 “금리를 8월에 내리지 않은 것이 실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금리 인하를 안했음에도 가계대출이 10조원 가까이 늘어났는데 (이런 부분도) 예상한 건지 물어봐달라”고 반발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8월에도 내부에서 금리 인하가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 당시 서울아파트실거래가 연율 20% 급등했고 부동산 가격이 조절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갈 조짐이 있었다”며 “금리 인하가 주택가격 심리를 추가 자극하지 않도록 정부와 얘기해서 거시안정성을 강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 취약차주 보호·부동산 PF 연착륙 등 정부 역할, 지금보다 커져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의 한은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내리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1조7000억원 가량 감소하는데 자영업자 1인당 평균 이자 부담은 약 55만 원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0.15%로 전분기(10.21%)보다 소폭 하락했으나 2분기째 10%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은은 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인 차주를 취약 차주로 분류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국내 카드대출 및 연체 현황'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 카드 대출 규모는 총 44조6650억원에 달했는데 이는 금감원이 통계를 추산한 2003년 이후 최대 규모다.
그만큼 우리 내수 시장이 밑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반증이고 한은의 이번 금리인하로 취약계층에게 일정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 총재가 실기론에 반발하고 있는 대목에서도 알수 있지만 한은이 내수 전반을 살피기 보다는 오로지 부동산 시장 문제만 바라보았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그동안 우려를 한몸에 받았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분기 연속 감소해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어 이번 금리인하 조치가 부동산PF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은이 지난달 말 발간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3월 말(134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2조1000억원 감소했다.
부실 우려가 있는 부동산 PF 사업장과 연관된 금액은 21조원 수준으로 나타났지만 한은도 향후 PF 리스크가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창용 총재가 11일 3개월 뒤에도 기준금리를 3.25%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금융통화위원이 6명 중 5명이라고 밝힌 대목도 관심을 모았다.
이 총재는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머지 1명은 3.2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5명은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미국 대선 결과와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 상황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이 총재는 전했다.
때문에 추가 금리인하를 놓고 앞으로도 시장과 한은의 줄다리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문제는 이번 금리인하 조치로 내수가 얼마나 회복될지 여부에 달려있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 여부도 관건이다.
금리인하 외에는 세수부족으로 재정정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국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팀이 ‘빈 곳간’ 타령만 하면서 한은만 바라보는 천수답 정책으로 일관해서는 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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