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30년전에 나온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프랑스 영화 ‘여왕 마고’에서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기자 뇌리에 생생하다.
영화는 초반부 상당부분을 파리 전역에서 벌어진 대학살극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너무 끔직한 장면이 많아 왠만한 공포영화들을 두루 섭렵(?)한 기자의 눈에도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학살극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프랑스어 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이다.
1572년 8월 24일(성 바르톨로메오의 축일) 부터 10월까지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 추종자들이 위그노 즉 프랑스 개신교도들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희생자의 수는 무려 최대 7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데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 학살의 날을 축하하여 ‘하느님께 찬양’이란 뜻의 ‘떼 데움’(Te Deum)이라는 성가를
부르도록 신도들에게 명령을 내렸으니 종교전쟁의 그 비이성과 참혹함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등 범 서방세계와 지속적으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내부 갈등이 아주 크고 깊은 것은 비슷했다. 바로 수니파와 시아파 갈등이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아 시아파로 나눠져 지금까지도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간단하게 두 파를 정의하면 수니파는 무함마드 사후 세속적인 권력 승계자들이 주도하는 분파이고, 시아파는 무함마드와 혈연 관계인 알리를 숭배하는 교파이다. 현재 이슬람 세계를 주도하는 분파는 90%에 달하는 수니파이다.
수니와 시아를 분석하는 글만 써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깊이 들어갈 수는 없고 간단하게 분류하자면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 비교적 세속적인 정치를 하는 나라들이 수니파이고 오래전 신정혁명을 거친 이란이 시아파의 으뜸가는 나라이다.
흔히 주변 사람들 평가를 보면 이란이 시아파의 선도국가라고 하니 시아파가 과격하고 수니파는 비교적인 합리적인 정파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우선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수니파 교도이고 미국과 치열하게 전쟁을 치룬 아프카니스탄 탈레반도 수니파이다. 그리고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역시 수니파 계열이다. 한때 서방세계를 공포에 빠트렸던 IS 역시 수니파이다. 해서 시아파인 이란에서는 IS에 대한 공격을 지속해왔다.
수니파에 테러단체가 많은 이유는 오래 전부터 소수파인 시아파를 탄압하기 위해 테러집단을 양성하고 교육해 온 경험이 축적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닌자집단과 유사한 형태이다.
끝을 모르고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으로 촉발됐다.
시리아 인구 2200만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인데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가 군과 정부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 갈등이 증폭됐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정권을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을 지원하면서 사태가 국제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사린가스까지 등장하는 시리아 내전양상을 보면 유럽 종교전쟁의 극치였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여 수니-시아파 갈등에 불붙이려는 이스라엘의 속셈은
1년 전인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7일 새벽 6시30분쯤 이스라엘 동남부 네게브 사막의 음악 축제장에서 하마스의 로켓포탄과 무장대원들의 무차별 총격이 발생해 수백명이 실종됐다.
최근 일련의 중동사태는 이처럼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물론 수십년간 전쟁과 테러로 점철되어 온 중동사태를 하마스의 선제공격만으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민간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여전히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는 하마스의 선제공격이 명분을 제공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당시 하마스는 왜 이스라엘을 무모할 정도의 규모로 선제공격을 했을까.
이미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급속한 관계정상화에 대한 하마스의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2023년 7월 전후로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이 비밀리에 미국을 방문해 미 고위 관리들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 등을 논의했다.
바르니아 국장은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브렛 맥거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북아프리카 조정관, 아모스 호치스타인 국무부 에너지 특사 등과 만나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 이란 문제 등을 집중 논의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사우디에 민간 핵프로그램 개발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그같은 소식을 전했는데 한발 더 나아가 사우디의 민간 핵개발에 이스라엘이 지원을 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고위 관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핵 문제에 대해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히 무엇을 할 수 없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견이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의 모든 농축 프로그램에 많은 안전장치를 두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사우디의 민간 핵개발을 이스라엘의 감시하에 인정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 에브라힘 라이시 당시 이란 대통령은 이슬람 국가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는 것은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행위이며 이스라엘에 굴복하고 타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슬람 세계가 취해야 할 유일한 방안은 저항이며, 이스라엘로부터 예루살렘을 해방시키는 것이 이란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자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더 이상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전에 수니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은 2020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때문에 하마스의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중동사태가 갈수록 격화되면서 최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가 이스라엘 공습에 폭사한데 이어 레바논 민간 지역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이란의 개입이 구체화되지는 않고 있다.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는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사실 이란의 개입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란이 레바논 사태에 무력개입을 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의 반이스라엘 노선에 금이 갈수 있다는 점을 계산에 넣은 것이다. 국제사회의 우려와는 달리 이란이 레바논 사태에 개입을 하지 못하면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소외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막기 위해 선제공격을 가했다면 이스라엘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레바논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무력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전쟁의 꽃놀이패”를 즐기는 양상이 되고 말았다.
로이터 등 외신의 분석에 따르면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나스랄라 사망 발표가 나온 다음날인 29일 성명을 내고 레바논 후속 상황을 “깊은 우려 속에 지켜보고 있다”고 밝힌 것 말고는 카타르, UAE, 바레인 은 여전히 침묵을 고수 중이다.
게다가 시리아 반군이 점령한 북서부 도시 이들리브의 거리에서는 지난 28일 나스랄라 죽음에 환호하는 주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나스랄라가 시아파인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왔기 때문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구조를 파고 들어간 이스라엘의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동지역의 열악한 경제환경, 이스라엘에 도움이 되고 있지만 더 큰 화약고로 변질될 수도
헤즈볼라 요원들이 소유하고 있는 호출기가 일제히 폭발하며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가 폭사한 배경에는 ‘레바논의 가난’이 있다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베이루트아메리칸대학의 헤즈볼라 전문가인 힐랄 카샨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단순히 (헤즈볼라 내부에) 침투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완전히 침식당했는지의 문제”라며 이스라엘측 정보원의 헤즈볼라 침투 가능성을 제기했다.
2019년부터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레바논의 경제가 코로나19 대유행, 2020년 베이루트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면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면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카샨은 “레바논의 빈곤은 이스라엘을 위해 활동하는 스파이들의 온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같은 논리로 따지면 하마스 내부에서도 이스라엘 첩자들이 암약을 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고 이란 역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서방의 경제제재로 동맹국이나 동맹조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결국 시아파 국가나 조직의 가난이 이스라엘과의 투쟁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경제 문제는 역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미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물론 내전 중인 시리아에 이어 레바논 등이 전화에 휘말리면 일부 산유국을 제외한 중동 지역 전역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질 것이고 결국 반서방, 반이스라엘의 움직임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가령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9개월째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경제 성장률이 올해 1분기 마이너스 86%라는 기록도 있다. 가난은 배신자도 양산하지만 전사들을 더 많이 배출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수니파와 시아파가 아무리 갈등을 한다고 해도 반서방 정서는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2022년 월드컵 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2대1로 이기자 전 아랍권과 전세계의 무슬림이 일제히 환호했다.
사우디와 오랜 기간 전쟁을 치렀던 예맨 반군도, 단교했던 카타르도 중동 축구의 '매운맛'을 보여준 사우디에 박수를 보냈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또한 경기 종료 후 사우디 국기를 자신의 몸에 걸치며 사우디의 승리를 축하했다. 한때 서로 단교했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국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무모한 확전 전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예측불허이지만 중동은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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