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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티몬·위메프 사태' 국내 이커머스 생태계 교란의 책임은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소비자 환불 대란으로 촉발된 ‘티몬·위메프 사태’는 쿠팡, 알리 등에 대결하기 위해 실속없이 은근슬쩍 몸집만 키워온 국내 일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에 숨어 있던 시한폭탄이 이제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싱가포르 기반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의 계열사인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로 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뿐만 아니라 판매자(셀러)들도 피해를 입으면서 피해 회복을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위메프의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이 2023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계속 기업으로서의 불확실성이 높다”란 취지의 감사 의견을 밝혔지만 아무런 규제도 없이 영업을 계속 해오다 결국 카드 사태를 연상시키는 금융대란이 코 앞으로 닥친 것이다.

 

티몬는 지난 4월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2022년 기준으로 보면 티몬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80억원에 불과하다. 현금화가 가능한 매출채권 및 기타 채권액은 197억원대이다.

 

때문에 금융감독원이 이 때라도 뭔가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은 아무 것도 안했고 결과적으로 6월에 티몬은 ‘상품권 깡’ 사업에 나서는 바람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티몬은 도서문화상품권을 '선주문' 형태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시중에도 통용되는 3% 할인판매가 아니라 최대 10% 할인해 판매했다. 대신 이달에 주문하면 한 달 뒤에 상품권을 발송해주는 '선주문' 형태로 판매했다.

 

티몬 입장에서는 상품권 판매 시점부터 발송 시점까지 약 한 달 동안 자금을 돌려쓸 수 있게 됐다. 때문에 작금의 티몬 사태는 폰지 사기와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함께 티몬의 모기업인 큐텐의 싱가포르 기반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실적 부풀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당연히 시중에 유포되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티몬과 위메프에서 보고한 미정산 금액이 1600억∼1700억원 정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티몬 직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는데, 피해 규모가 1조원대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큐텐그룹 계열사를 통해 거래하는 일 거래액은 2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들 거래는 대부분 두 달 기간으로 정산이 된다. 그러니 얼추 계산해보아도 지급 불능상태가 오면 최대 1조2000억원 안팎의 판매 대금이 공중 분해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입주 빌딩에는 정산 지연 사태로 직접 환불을 받으려는 소비자 수천명이 몰려들어 “이러다 이태원 사태같은 압사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졌다고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의 행방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국내 언론과는 주로 문자메시지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데 당연히 피해자들의 초조감은 커지고 있다.

 

구 대표는 사태 대응방안을 묻는 국내 모 경제일간지의 문자메시지에 “지금은 상황을 안정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또 다른 경제지 기자의 출국했냐는 문자 질문에 “국내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답을 찾고 있다. 상황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어 출국은 못한다”고 문자로 답했다.

 

이처럼 일부 매체들이 ‘단독’이라는 타이틀로 구 대표의 문자 메시지를 내보내면서 마치 구 대표가 사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티몬과 위메프의 주요 임원들조차 그의 소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 대표가 사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스닥 상장을 추진해온 큐익스프레스에 티몬·위메프 사태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직에서 사임하고, 큐익스프레스는 티몬·위메프 사태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 대표는 2009년 G마켓을 이베이에 팔 때 ‘한국에서 10년간 겸업 금지’를 약속했다.

 

구 대표는 이 기간이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티몬, 위메프를 인수 했는데 현금을 지급하는 대신 주식 스왑으로 이 회사들을 인수했다.

 

이어 올해 2월에는 위시(Wish)를 인수하고 3월에는 애경그룹의 온라인 쇼핑몰 ‘AK몰’을 사들였다.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다는 뉴스는 2021년부터 꾸준히 나왔다. 공교롭게도 구 대표가 나스닥 상장을 통해 노리는 시가총액은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 규모로 추정되는 1조원대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에 투자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당시 연 매출이 1500억원에 불과한 큐익스프레스가 나스닥 상장을 노리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 상당했기에 결국 무리한 몸집 불리기가 작금의 사태를 몰고 온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구 대표는 과거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하기 전에 나스닥에 상장시킨 바 있다. 바로 그같은 성공신화를 되풀이할 욕심으로 자본잠식 등 경영난을 겪는 온라인 쇼핑몰을 잇달아 인수한 것도 큐익스프레스에 물량을 몰아주기 위한 전략으로 의심받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무너지면 알리 등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눈앞에

 

위메프와 티몬이 정산 지연 사태로 판매자와 소비자까지 이탈하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알리 등 중국기업들이 더욱 큰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은 27일 서울 강남 티몬 입주 빌딩에서 피해자들이 '큐텐의 600억원 지원설'을 묻자 “그게 중국에 있는 자금이다. 중국에서 바로 빼올  수가 없어 론(대출)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발언의 진위와 중국에 있다는 600억원의 성격 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과 알리익스프레스·테무로 대변되는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 양자 대결 구도로 좁혀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국내 종합몰앱 순위는 1위 쿠팡(3129만명), 2위 알리익스프레스(837만명), 3위 테무(823만명), 4위 11번가(712만명), 5위 G마켓(497만명) 순이다. 티몬은 437만명으로 6위, 위메프는 432만명으로 7위다.

 

티몬과 위메프가 빠지면 사실상 쿠팡과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양강 구도로 재편된다.

 

여기에 1세대 이커머스로 대변되는 11번가와 G마켓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뒤로 밀려나는 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1번가는 지난해부터 두차례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서울역에 있던 본사도 광명으로 이전하는 등 악전고투하고 있는데 투자업계에서는 신선식품 배송업체 오아시스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

 

11번가는 2022년부터 2년 연속 1000억원 이상 영업적자를 내며 몸값이 5000억원대로 주저앉은 상황이다.

 

G마켓·옥션 역시 상황이 만만치가 않다. 올해 1분기에 이미 8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21년 신세계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이커머스 계열사인 G마켓과 SSG닷컴 수장을 한꺼번에 교체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결국 거대자본을 내세운 알리 등 중국계 이커머스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것으로 우려되는게 현실이다.

 

쿠팡도 이번 사태로 상대적으로는 이익을 볼 것으로 전망되는데 관련기업인 KCTC 주가는 26일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쿠팡과 물류 및 창고 업무 제휴를 맺은 업체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쿠팡 물류를 전담하는 운송사 동방과 쿠팡과 계약을 맺어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갤럭시아머니트리, 헥토파이낸셜, 다날 등도 주가 역시 큰 상승세를 보였다.

 

◇또다시 사후약방문 된 ‘전자금융거래법’ 등 이커머스 관련 규제방안 시험대에

 

티몬 등 큐텐그룹이 심각한 유동성 부족사태를 겪고 있는 가운데 개정 전금법(전자금융거래법)이 보다 일찍 도입됐다면 이번 사태가 덜 심각해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나오고 있지만 개정 전금법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머지포인트 사태’ 이후 정부는 2021년 전금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2023년이 돼서야 국회 문턱을 넘었고 시행일은 9월 15일로 정해졌지만 언제 시작하는지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전금업자는 선불충전금 발행 잔액이 30억원 이상이거나 연간 총발행액이 500억원을 넘어서면 충전금 잔액 100%를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자본잠식에 빠진 업체들이 상품권깡을 유도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등의 사태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법안도 맹점이 있다. 전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무는 상품권 등을 발행한 주체에게만 적용된다.

 

이번에 취소 논란이 된 해피머니, 문화상품권, 요기요상품권 등은 발행자가 티몬이 아니다. 티몬은 상품권 발행자가 아니라서 개정 전금법에 따른 예치 의무를 피해 갈 수 있다는 허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사과하며 “머지포인트 사태 이후에 선불 충전금 부분은 제도 개선이 돼서 9월 시행 이전에도 예치금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정산 시기나 정산금 복원 방법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있어서 제도 미비점을 점검하겠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태의 뿌리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통한 대박의 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인터넷 기반 기업들과 경영자들이 혁신보다는 돈장사에 너무 몰두하고 있어 과거 대마불사를 외치다 사라져간 일부 대기업집단들처럼 시대의 낙오병으로 전락하는 비극을 연출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음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