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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한동훈 당선, 정봉주 돌풍이 갖는 함의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시중에 쏟아지고 있는 정치관련 칼럼을 아무리 자기 편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요즘 제도권 언론의 보도보다는 유튜브 등을 일반 국민들이 더 많이 보는 것도 “믿고 싶은 것만 본다”는 일반적인 추세와 맞물리는 것 같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이 정치 이야기를 나눌 때 분위기를 가만히 보면 자기가 믿는 것을 상대방도 믿는 것인지 그것만 확인해 보려는 경향도 농후하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자기확신의 무한 확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국민의힘 대표를 뽑는 경선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기이한 경험을 많이 했다. 특히 윈희룡 등이 “한동훈이 고의로 총선에서 졌다”는 주장을 펼칠 때 정치권에서 유행할 수 있는 음모론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변화무쌍한 우리 정치사에서 별의별 주장들과 음모론을 다 들어보았지만 ‘고의 총선 패배론’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찌라시’라는 것은 근거도 없고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시중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는 아주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기자는 총선 직전에 이런 찌라시를 받아보고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용와대 출입기자들 전언>

-국회 세종시 이전 한동훈 발표를 용와대는 모르고 있다 30분 전에 통보 받음

-용와대 크게 빡침 3차 갈등대전 일어날뻔

-용와대는 국힘이 130석 이상 확보할 경우 한동훈 리더십이 강화될 것을 우려 탄핵저지선 110석 정도를 최적의 의석수로 판단

-160석이상 민주당이 단독으로 확보할 경우 이재명 리더십이 강화되어 법원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

-윤한갈등 점점 고조 총선후 갈라설수 밖에 없는 상황

 

용산 대통령실 사람들이 사실상 총선 패배가 한동훈 주도의 승리보다 나은 선택지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인데 이 찌라시를 받아보고 “설마 그러겠느냐. 민주당이 역으로 퍼트린 찌라시로 보인다”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웃기도 했다.

 

기이한 일이지만 총선 결과 국민의힘이 얻은 의석수는 비례대표를 합해 108석이었다. 찌라시에서 기대(?)한 수치보다 2석이 적었다. 이쯤 되면 용와대(?)가 한동훈의 급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총선 패배를 기획했느냐는 음모론을 다시 퍼트릴만 하다.

 

◇상대진영에 대한 공격수만을 선호하는 우리 정치문화의 문제점은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오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와 '삼겹살 만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마주 앉은 것은 지난 1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오찬 이후 178일 만이라고 한다. 이 또한 무척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동훈은 지난 23일 당원투표·국민여론조사 합산해서 62.8% 득표율로 당대표에 선출됐다. 2차 결선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는데 1차에서 압도적인 수치가 나온 것을 보고 가장 놀란 사람은 한동훈 본인일지도 모른다.

 

한동훈 당대표가 총선 과정에서 미래비전이나 정책대안을 들고 싸우지 않는 모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들이 나왔다.

 

총선 과정에서 한동훈을 마크하던 기자들이 “도대체 매일 새롭게 쓸 내용이 없다. 맨날 ‘이조심판론’만 외치니 기사 제목거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고민하던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러니 출국 금지된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비명횡사, 친명횡재’로 국민의힘에 어느 정도 유리하게 기울었던 총선 기류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용산 대통령실의 귀책 사유도 크지만 비상대책위원장을 수행한 한동훈 본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고의 패배론’은 매우 기상천외한 비난이 아닐 수 없고 한동훈이 당대표 선거에서 얻은 압도적인 수치를 보고 새삼 놀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래도 국민의힘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은 한동훈 본인에 대한 지지보다는 “누가 더 민주당 등 야당과 잘 싸울 것이냐”는 기준을 가지고 투표에 임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이번에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보면서 여당이나 야당 열렬 지지자들 모두 ‘투사’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막말 파문으로 4·10 총선 공천이 취소됐던 정봉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현재까지 치러진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에서 누적 득표율 1위를 기록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는 뉴스도 관심거리다.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정 후보가 차기 최고위원회를 이끌 ‘수석 최고위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당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친명’들 입장에서는 민주당 열렬 지지자들이 이재명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반윤석열’이라는 큰 흐름에서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에 빠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반윤석열 기치’를 이재명보다 더 선명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야당 지지율 상당부분을 잠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이재명 ‘기본사회’, 조국 ‘사회권 선진국’, 한동훈 ‘웰빙정당 탈피(?)’

 

한국은행은 25일 2분기 중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분기 대비 0.2% 줄었다고 속보치를 발표했다. 1분기 1.3% 성장에서 역성장으로 전환해, 2022년 4분기(-0.5%) 이후 6분기 만에 가장 낮은 분기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상반기 전체로는 전년 동기 대비 2.8% 성장하며 2022년 상반기(3.2%)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가 분기 기준으로 역성장을 했다고 하니 ‘경제위기론’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야당지지자들이 흥분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불황의 그림자가 아주 짙은 것도 아니어서 경제만 놓고 보면 이제 총선도 끝난 마당에 ‘정권 심판론’이 지난번 총선 때 불거진 ‘대파 파동’처럼 맹위를 떨칠 가능성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발표하고 있는 각종 수치도 전망을 엇갈리게 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3.6으로 전달보다 2.7포인트 올랐다. 두 달 연속 오른 것으로, 2022년 4월(104.3) 이후 최고 수준이다.

 

반면에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7월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전달보다 0.6포인트 떨어진 95.1을 기록했다.

 

이러니 경제 전망이 어떻다고 딱히 규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가 이처럼 어정쩡한 상황이면 여야간 지지도 차이는 큰 의미를 갖는 수준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같은 상황에서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5∼19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4.5%로 집계됐다.

 

이는 일주일 전 조사보다 2.2%포인트 오른 수치다. 체코 원준 수주의 영향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다고 한다.

 

정당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이 42.1%, 더불어민주당은 33.2%를 기록했다. 이밖에 조국혁신당 9.3%, 개혁신당 5.0%, 새로운미래 1.4%, 진보당 0.8%, 기타 정당 1.3%였다. 무당층은 7.0%로 조사됐다.

 

또다른 여론조사를 보자.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0%였다.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6%, 더불어민주당 25%, 조국혁신당 9%, 개혁신당 3%, 진보당 1%, '지지 정당 없음·모름·무응답' 22%였다.

 

범여권과 범야권이 비등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전당대회 흥행을 상실한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은 결국 여야간 극한 갈등이 지속되기 힘들고 정책 대결로 수렴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의 정책은 전국민에 대한 동일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기본사회’라는 플롯으로 되어 있음은 이제 대부분 유권자들도 알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사회권 선진국’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들고 나왔다.

 

조국 대표는 “주거권, 보육권, 교육권, 건강권이 보장되는 나라는 조국혁신당이 그리는 사회권 선진국의 모습”이라며 “조국혁신당이 국회에 들어가게 되면 법률과 정책으로 사회권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반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앞으로 웰빙정당에서 벗어나겠다”고 주장했는데 정책대안을 아직 구체적으로 만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앞에서 인용한 여론조사 등에서도 알수 있듯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처럼 현 집권당을 탄핵으로 무너뜨리는 전략은 이제 어렵다는 것은 야당 관계자들도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정치 경제 상황은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기에 예단은 어렵다.

 

최근 만난 민주당의 고위 관계자는 “만약 대통령 탄핵이 의미가 있으려면 지난번 채상병 사망 1주기때 이미 광범위한 촛불시위가 벌어졌어야 했다”고 기자에게 토로했다.

 

지금처럼 여야 지지율이 비등한 상황에서는 인위적인 정권 교체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 정치권도 정책 대결에 돌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핵심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 당은 종부세의 경우 절대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종부세는 지방자치단체의 핵심 재원이다. 종부세를 없애는 것은 결국 지방균형발전을 포기하는 것이다”고 주장하고 “그런데 요즘 민주당을  보면 종부세에 대한 입장이 애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야권 사이에서 정책적 차별화가 진행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조정 등 정부가 25일 내놓은 세법 개정안에 대해 야권은 “더욱 강화된 부자감세”라며 “재정 파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연임이 유력한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 후보는 금투세 공제액 한도 상향을 골자로 한 완화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조국혁신당 관계자 역시 “금투세 폐지는 당연히 부자감세이지만 개미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보완은 필요하다고 본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여론조사를 보니 극단으로 나뉜 진영에서도 금투세를 내년에 바로 시행하는 데에 찬성하는 여론이 34.6%, 반대는 43.2%”라며 “금투세 폐지 등 시급한 민생 정책을 최우선으로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금투세’ 논란 등을 보면 여야 극렬 지지자들이 서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정치인들을 강력 지지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제 우리 정치도 정책대결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런 단계로 넘어가야 하고 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