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태평양 전쟁 초기인 1942년 5월부터 6월 사이에 미일 해군은 두차례 큰 전투를 벌였다. 먼저 결정적인 전투인 미드웨이 해전 이전에 5월 7일 산호세 전투가 있었다.
미국의 신예 항공모함 요크타운은 5월 7일 산호세 인근 해전에서 일본 함재기의 공격을 받아 70여명의 승조원이 사망하는 아수라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승조원들의 노력으로 항공모함 자체는 구할 수 있었다.
일본 해군은 미국의 유력 항공모함 요크타운이 당분간 전선에 등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불과 한달도 안된 6월 3일 미드웨이에 출격한 일본 항공모함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요크타운 항공모함을 마주해야 했다. 이는 곧 일본 해군의 패배로 이어졌다.
한달 전 치명상을 입은 요크타운은 2000여명의 기술진들이 달라붙어 기적적으로 회생해 전선에 복귀한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 해군의 배후에는 바로 이같은 미국 조선산업의 압도적인 기술력이 있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 인수를 위한 제반 절차를 최종 완료했다고 밝혔다. 6월 20일 모회사인 노르웨이 아커사와 본계약을 체결한 뒤 6개월 만이다.
필리조선소는 1997년 미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된 이후 미국에서 건조된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등 대형 상선의 약 50%를 공급해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필리조선소가 미 해군 수송함의 수리∙개조 사업도 핵심 사업 영역 중 하나로 삼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필리조선소는 미 교통부 해사청(MARAD)의 대형 다목적 훈련함 건조 등 상선뿐만 아니라 해양풍력설치선, 관공선 등 다양한 분야의 선박 건조 실적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전략 산업 중 하나인 해군 수송함 수리 조선소을 한국 기업이 인수한 의미는 무엇일까.
2차대전 당시만 해도 전세계를 압도하던 미국 조선산업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안되고'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되고'
일본제철은 미국의 대표적인 철강회사인 US스틸을 인수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에서 국가 안보 우려를 완화하는 방법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모두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도 큰 변수였다.
미국의 현재 대통령과 미래 대통령 모두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의 핵심 산업인 철강사의 해외인수는 어불성설이라는 것. 특히 미국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해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필리조선소의 한화 인수에는 왜 반대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트럼프는 한국 조선산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주었다.
지금이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시도하는 바람에 잊혀진 이슈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이런 파국이 벌어지기 전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유지·보수·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조선산업에 대한 분석기사에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조선업은 글로벌 해군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차세대 구축함인 '정조대왕함'으로, 한국에서 건조됐다. 이 구축함은 건조 비용이 6억 달러에 불과하며, 같은 종류의 함정을 미국에서 건조할 경우 10억 달러 가까이 더 비쌀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군사전문지 디펜스뉴스는 지난 4월에 “미국 해군의 무기 조달과 예산 등을 책임지는 카를로스 델 토로 해군 장관이 한국 조선업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며 미국의 전함 건조 역량을 강화하려면 동맹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일찌감치 중국과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인 해군 전력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던 것이다.
한화그룹도 필리조선소 인수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미국 상선 및 방산 시장 본격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면서 특히 방산 분야에서의 욕심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필리조선소가 보유한 미국 내 최대 규모 도크는 향후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의 미국 함정시장 진입 시 함정 건조 및 MRO 수행을 위한 효과적 사업장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 함정시장은 해군 함대 소요 대비 생산 공급 부족으로 함정 건조 설비 증설 니즈가 있는 상황이다.
어성철 한화시스템 대표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 인수를 통해 글로벌 선박 및 방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사업적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히며 “중동∙동남아∙유럽을 넘어 미국 시장까지 수출 영토를 확장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화오션은 이에 앞서 11월에는 미국 해군 7함대에 소속된 급유함 ‘유콘함'의 정기 수리 사업을 수주했다.
유콘함은 전장 206m, 전폭 29.6m, 배수량 약 3만1000t에 이르는 대형 군함이다. 내년 4월까지 수리해 미국 해군에 재인도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 역시 최근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을 체결하는 등 한국 조선사들과 미 해군의 협력관계는 확대일로에 있다.
◇트럼프 시대 K방산의 한미협력 관계는 국내 정치와 밀접하게 연계될 듯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을 맡아 연방정부 개혁과 예산 삭감을 예고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최근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를 강하게 비판해 주목을 끌었다.
휴먼 AI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머스크는 인간이 원격으로 조종하면서도 자율 기동이 가능한 전투기가 도입돼야 한다며 ‘드론 전쟁’이 미래라고 주장해왔는데 “F-35 같은 유인 전투기를 만드는 멍청이들(idiots)이 아직 있다”고 지적했다.
머스크는 SNS에 “F-35 설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요구 사항 단계에서 망가졌다. 이로 인해 F-35는 비싸고 복잡한, 모든 것을 조금씩 할 수 있지만 어느 것도 뛰어나게 잘하지 못하는 기체가 되어 버렸다” 주장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아주 작은 드론이 첨단 전투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주장이 해군에는 통하지 않을 것인가.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해군이 기술적으로는 중국을 앞서고 있지만, 함대 규모도 중요한 요소이다. 함대가 클수록 잠재적 충돌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은 해군 함정 수를 신속하게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이 해군에 집중하는 이유는 대만과 중국 문제이고, 그것도 주로 바다에서 무력시위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력시위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물론 규모이고 덩치이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에 한국과 미국 사이에 방산협력이 강화되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국내정치 변화가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윤석열 정부의 계엄 시도와 탄핵사태로 국내정치 상황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에 크게 놀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방산수출 국회 동의법'을 당론으로 채택한 적이 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위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정부가 방산업체 수출을 허가하려면 사전에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는 비공개로 심의해 30일 안에 동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다만 미국과 같이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거나 UAE 등 국군을 파병한 국가는 법 적용에서 제외했다.
물론 이같은 개정안은 관련 업계의 반발과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우크라이나 종전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회에서 논의가 중단됐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조기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한국과 미국의 방산협력은 지금처럼 순탄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중국과의 대결국면에서 해군 전력 강화를 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간 조선산업 협력 문제는 사드 배치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와 중국과 관계에서 만만치 않은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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