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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용웅 칼럼] 계엄령이 한국 경제에 남긴 것

-계엄 파장 한미관계에 치명타, 삼성·SK 등 대기업도 영향권에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3일 밤 급작스럽게 국내외를 뒤흔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시도는 정치 경제 외교 여러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공을 들여온 한미일 공조체제, 특히 한미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이 불가피해질 것 같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현지시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계엄령에 대해 한국 정부와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세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TV를 통해 발표를 알게 됐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미국의 국방산업 기반을 주제로 연설한 뒤 이렇게 말했다.

 

또 향후 한국의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 역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반나절 만에 이를 해제한 것에 대해 “매우 문제 있고 위법한 행동으로 예측할 수 없었다”며 “윤 대통령이 심하게 오판(badly misjudged)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이 '종북 반국가 세력의 척결'을 이유로 내세워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미국의 한국과 동맹이 수십 년 만에 최대 시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대목은 계엄령 선포와 같은 중차대한 결정에 대해 최대 동맹국인 미국에 아무런 사전 통보를 해주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는 수만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규모가 커진다. 뿐만 아니다. 한국에 이런저런 이유로 체류하는 미국인들은 수십만명에 달한다.

 

미국 정부로서는 당연히 이들의 안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계엄령같은 중차대한 문제는 동맹국인 미국으로서는 마땅히 사전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들에게도 사전에 정보를 주지 않았으니 미국에는 당연히 통보를 하지 않았다.

 

비록 비상 계엄이 해제되기는 했지만, 4일 주한 미대사관은 자국민을 대상으로 경보를 발령하고 비자 발급 등 영사업무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주한 미대사관은 이날 영문 웹사이트 홈페이지에 적색 경보를 발령하고 '경보: 한국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따른 미국 국민을 위한 지침' 안내문을 게재했다.

 

뿐만 아니다. 일한의원연맹이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이달 중순으로 예정했던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의 국회 폭거에 경고를 주기 위해 계엄령을 발동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해명을 듣다보면 한미일 공조체제를 총체적 난국으로 몰고갈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전 준비도, 대응책도 없었음을 알수 있다.

 

가히 외교참사라 할만 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마지막 선물 기대하던 삼성·SK 등 美 진출 한국기업들에게 부정적 영향 불가피

 

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 미사일을 주고받으면서 실질적인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지만 상대국에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미국정부에 미리 통보를 한다.

 

이란은 지난 4월 인접국인 튀르키예, 요르단 등은 물론 미국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드론·미사일 공격이 시작되기 전 사전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음에도 그렇다.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윤석열 정부는 계엄령의 확대 여부에 따라 주한미군은 물론이고 미국 민간인들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미국 정부에 미리 통보하지 않은 것은 동맹국 관계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의 산업정책을 뒤집지 못하도록 보조금 수혜 기업과 합의를 마무리하고 관련 예산을 최대한 신속하게 집행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인텔에 최대 78억6600만달러를 지급한다고 발표했으며,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다른 기업과도 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에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를 투자하고, 64억달러의 보조금을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건설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최대 4억5000만달러의 보조금과 5억달러의 정부 대출 등을 약속받았다.

 

우리 기업과 경쟁업체인 대만 TSMC는 바이든 행정부와 66억 달러 보조금에 대한 구속력 있는 계약 협상을 이미 마친 상태이고, 우리 기업들은 현재 바이든 정부의 마지막 시혜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러할진데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발표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에 아무런 사전통보를 해주지 않아 한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도 비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출범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협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측근들은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윤석열 정부가 걸림돌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트럼프 2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내정된 마이크 왈츠 연방 하원 의원은 우크라이나전의 구체적인 종전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당선인의 의중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뒤 이에 대한 걸림돌을 거론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가능성도 그 중 한 요인으로 꼽았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북러 밀착을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까지 여러 차례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자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골프까지 다시 연습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돌아가는 상황은 한미 밀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등장, 행정부에도 직접 참여할 예정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비상계엄 관련 소식을 접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놀랍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머스크는 엑스(X·옛 트위터)에서 한 사용자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올린 글에 댓글 게시물로 따옴표 2개를 찍어 올리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들에게 이번 계엄 소동은 윤석열 대통령의 한국정부가 지극히 불안정한 나라라는 인식만 더해줄 뿐이다.

 

보후무역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와 힘겨운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한국기업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 정정불안이라는 새로운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 더해주는 계엄령 파동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강행할 때 한덕수 국무총리는 극구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에 대한 악영향 때문이었다.

 

최상목 부총리도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했고 조태열 외교장관 역시 외교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튼 이번 계엄 소동은 두고두고 한국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가뜩이나 1%대의 저정상이 예고되고 있는 한국경제로서는 ‘정정불안’이라는 새로운 암초를 만난 셈이다.

 

계엄 이후 국내 증권시장은 첫날 거래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최대 50조~60조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미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이 된 원화값 변동성을 가라앉히고 대외신인도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는 “앞으로 법리 논란 등 후폭풍이 클 것으로 보이는 만큼 주식·펀드 고객들의 자금 이탈 우려가 상존하며 증시는 단기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는 실질적 영향이 없다고 밝혔지만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S&P는 “비상계엄의 잠재적 여파는 밋밋(flat)할 것 같다”며 “어떤 형태든 불확실성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차차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정정불안은 북한의 핵위협보다 더 크게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것이다.

 

무디스는 지난해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할 당시 정치 양극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특히 졸지에 여행 위험 국가로 전락한 상황에서 그동안 K컬쳐 인기로 호황을 구가하던 여행·항공·면세업계에 타격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이 한국에 대해 여행 경보를 발령한 상황이다.

 

계엄소동이 일어나기 전에도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내년에 투자계획을 크게 줄여가고 있었다.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 가량이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하거나, 아예 투자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으로 '2025년 500대 기업 투자계획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의 56.6%가 내년 투자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한다.

 

투자계획이 없다는 응답도 11.4%로 나타났다. 계획을 수립했다는 응답은 32.0%였다.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의 내년도 투자계획 규모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59.0%)'이 가장 많았다. 올해보다 '감소'할 것이란 응답은 28.2%로, '증가'(12.8%)를 상회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증시가 다른 시장보다 저평가받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강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계엄 사태에 따른 혼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강화할 명분을 제공했다고 지적하고 MUFG 은행의 리 하드먼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선진 경제에서 보통 일어나는 일(normal thing)은 아니다”라면서 원화에 대한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가 진행되는 것과 관련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국 정권 교체 등으로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기에 한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탄핵이 이뤄지면 임시 대통령(권한대행)이 들어서더라도 한국과 진지하게 협력할 국가가 거의 없을 것이고, 이 잃어버린 시간이 한국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계엄 파동은 윤 대통령 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물론이고 이래저래 한국경제 전반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