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78)이 5일(현지시간) 치러진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했다.
당장 국내에서는 트럼프 공포증이 상당해 한국의 외교와 경제 모두 큰 시련기에 들어갈 것으로 짐작하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넋놓고 트럼프 2기 4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트럼프 2기를 악재가 아닌 호재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데 초당적인 대응이 절실해지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의 선거전이 박빙으로 전개되는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트럼프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처럼 민주당의 옛 강세 지역인 이른바 '블루월' 3곳(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에서 모두 이긴 것이다.
트럼프는 2016년에는 이겼다고는 하지만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에게 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반 투표에서도 51%의 득표율로 해리스 부통령(47.5%)을 크게 앞섰다.
뿐만 아니라 공화당은 상하의원 모두 석권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외 언론들, 주로 미국내 반 트럼프 진영의 언론들이 박빙으로 분위기를 몰고갔지만 처음부터 해리스의 승리는 무리였다는 분석이 뒤늦게 봇물처럼 쏟아져나올 것이다.
당초 트럼프가 재등장하게 된 계기는 물가였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정치의 풍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거의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 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초(超)인플레이션이 불가피했다.
때문에 바이든 정권심판론에 올라탄 트럼프가 비교적 쉽게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은 반면에 해리스는 엉뚱하게도 이미 권력을 잃은 ‘트럼프 심판론’에만 열을 올렸다.
이같은 모습은 얼마 전 치러진 바로 우리나라 총선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범야권이 출범한지 2년밖에 안된 윤석열 정부를 향해 대파 파동등으로 상징되는 민생경제 파탄을 무기로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미래 비전이나 정책대안으로 승부를 보지 않고 ‘이조심판론’을 내세운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해리스 후보 역시 ‘정권심판론’에 흔들리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차별화에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아 해리스만의 경제 이슈를 제시하지 못했고, 중동 전쟁 등 국제적 분쟁에 대해서도 어떤 해법을 제시했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없다.
주요 격전지에서 흑인 유권자중 20% 정도가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미국내 유색인종 유권자중 상당수가 백인 우월주의자로 비춰지는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방증한다.
AP 보트캐스트(전국 11만5000명 유권자 대상)의 예비 데이터를 보면 히스패닉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해리스를 지지했지만 2020년 바이든을 지지했던 비율 60%에 비하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미국내 그 어느 인종보다 실업난에 시달려왔음을 확인해보면 그네들이 왜 ‘경제 부흥’을 외치는 트럼프와 ‘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운 해리스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격랑속에 빠져들어갈 한반도 정세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임기 시작 전에 끝내겠다고 큰소리를 쳐왔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을 위해 푸틴과 만날 것이며, (대통령이라면) 24시간 내 전쟁을 끝내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도 “대선에서 승리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현재 점유한 영토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종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올 상반기까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무기 규모는 무려 569억달러이다. 기타 유럽 국가들의 지원규모도 500억달러를 넘어선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이때까지 버틸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바이든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때문에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이라면서 “젤렌스키는 미국의 돈을 끝없이 빼가고 있다”고 강조하고 전쟁을 당장 끝내겠다고 호언을 했다.
굳이 트럼프의 재등장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연간 약 87억달러를 지원했던 독일 정부가 지난 7월 지원금을 절반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혀 이래저래 곤경에 처한 우크라이나는 북한군의 참전을 계기로 우리 정부에 더 매달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용산 대통령실은 6일 러시아·북한군에 맞서 우크라이나와 공동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열리는 발다이 국제토론클럽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안타깝게도 한국이 미국의 주도에 따르는 것을 봤고 아마도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하로바 대변인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까지 언급한 것은 한국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다소 유화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다른 한쪽에서는 러시아 해커들이 우리나라 군사관련 사이버 공간을 공격하는 등 적대적인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바로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정책에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러·우전쟁을 조기 종식시키고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다소 유화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유세기간 중에도 자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는 말을 반복해왔다.
트럼프는 반면에 한국은 ‘머니머신’이라면서 이미 합의한 방위비 협상을 되돌릴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중동전쟁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은 친이스라엘 기조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같다. 트럼프는 당초 이란에 대해서는 바이든 민주당 정부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가 트럼프 당선 이후 그 어느 세계 지도자들보다 가장 먼저 직접 트럼프와 통화한 사실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트럼프는 중동문제에서는 이란을 고립시키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유화적인 중동 국가들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방향에서 문제해결의 방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러·우전쟁은 트럼프의 1차적인 휴전 해법이 즉각 가동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가 당선을 확인한 뒤에 한 연설에서 “사람들은 내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하지만 나야말로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고 말한 것에서 알수 있듯이 그는 중동은 몰라도 러·우전쟁만큼은 조기종식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갈 것이다.
이쯤해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70%에 육박하는 현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이 아니라 종전으로 방향을 튼다면 러시아에 군대까지 보낸 북한이나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까지 거론한 한국 모두 곤혹스런 처지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전쟁터 바로 옆나라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새로운 지원 요청을 다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자국 우선주의'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미 간 조기 타결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걱정만 할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차제에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늘려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다주어야 트럼프 2기가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직접적으로 담판을 지으려는 섣부른 움직임을 차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트럼프 1기때 한미 미사일 협상에서 우리의 운식폭이 넓어진 것처럼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재처리 권리 확보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트럼프의 1차 집권기인 2017년 한국과 미국은 미사일 협정 3차 개정을 통해 사거리는 800㎞ 그대로이나 탄두 중량 제한을 완전 해제한 바 있다.
현재 한미 간 원자력협정은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미국과의 서면 합의 없이 한국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등을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한미 미사일 재협정처럼 이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의 핵주권을 강화하는 협상이 트럼프 재집권 기간 동안 오히려 가능해질 수도 있다.
◇트럼프 2기 출범에 급등세 연출한 미국 증시의 의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소식에 6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주요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물론 미국 증시가 불확실성이 사라졌음에 환호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 속내를 좀더 살펴봐야 한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3.57% 오른 4만3729.93에 거래를 마쳤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2.53% 오른 5929.04,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2.95% 오른 1만8983.47에 각각 마감했다.
이처럼 미국 증시가 급등 마감한 것은 트럼프 2기 출범으로 국제무역은 갈등국면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지만 트럼프의 감세정책과 규제완화 정책이 결국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해석 때문일 것이다.
일찌감치 트럼프 수혜로 알려진 가상화폐 역시 급등세를 연출했다.
6일(현지시간) 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 동부시간 이날 오후 2시40분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7.42% 오른 7만5487달러를 기록했다.
반면에 유럽증시와 한국증시는 트럼프 충격으로 지수가 빠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재집권하면 중국산에 60%, 나머지 국가 수입품은 10~20%의 보편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독일 ifo 경제연구소는 보편관세 공약이 현실화하면 독일의 미국 상대 수출이 최대 15%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고, 골드만삭스는 유로존 실질 GDP가 0.5% 타격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45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보복관세 공포에 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약속으로 앞다퉈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을 짓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의 처지는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태산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주요 공약 중 핵심은 불법이민자들 차단과 함께 미국 경제를 살리자는 내용이다.
때문에 한국기업들이 미국과 상생하는 방향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트럼프 2기를 위기가 아닌 기회의 무대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반도체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Huawei)의 인공지능(AI) 칩에 탑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상무부가 즉각 조사에 나섰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또 반도체 굴기를 앞세워 범용 반도체 부분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이번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 분명해보인다.
이런 흐름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미중 무역갈등이 결국 돌고 돌아 중국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기업들에 피해를 줄 수 있지만 경쟁자들의 기세가 꺽이는 반사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트럼프 2기는 이제 출범을 앞두고 있다. 정치, 경제, 외교, 군사 그 모든 분야에서 예전에 겪지 못했던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악재’를 ‘호재’로 바꾸는 역량을 키워가야 할 때이다. 문제는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 그런 능력을 발휘할만큼 녹록한 상황이 아니라는데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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