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여야가 합의를 통해 도입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시행도 안 해보고 폐지하자는 것은 프레지덴셜(대통령처럼)한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민주당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불합리한 세제를 그대로 둔 채 자본이득에 눈감아주는 그런 세상이냐”
조국혁신당 정책위 부의장을 맡고 있는 차규근 의원이 4일 기자회견에서 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이재명 대표를 향해 날선 비판에 나서면서 한 발언이다.
차규근 의원은 조국 대표가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상 전권을 위임한 인물이다. 해서 차 의원의 발언은 곧 조국 대표의 발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변 복지재정위원회와 민생경제위원회, 민주노총, 참여연대도 이날 공동 논평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선언에 나선 이재명 대표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이네들은 공동논평에서 “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하면서도 뒤에서는 동조해왔던 민주당이 이제는 앞에서도 정부 여당과 다를 바 없는 선택을 하겠다면, 부자감세를 저지하고 목 놓아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추진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진보당, 정의당 등도 일제히 이재명의 금투세 폐지 결정에 대해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반면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금투세 폐지는 국민의힘이 여름부터 굉장히 강조하며 집요하게 주장해 온 민생 정책 중 하나”라며 “민주당이 늦었지만 금투세 완전 폐지에 동참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 투자로 얻은 이익이 연 5000만원을 초과할 경우(채권·펀드·파생상품 등은 연 250만원 초과) 초과액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세금으로 매기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여야 합의로 통과돼 2023년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2년이 유예돼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이재명의 ‘먹사니즘’ 우클릭, 조국혁신당 등 다른 야당들과 차별화...야권 대통합은 어려워질 듯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48.56%로 당선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7.83%,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37%를 얻었다.
때문에 범야권에서는 심상정 후보만 물러났어도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면서 심 후보에 대한 내부적 비판이 아주 거세게 일었다.
이같은 비판은 결국 정치인 심상정의 퇴진을 몰고 왔고, 정의당은 정치의 무대에서 사라져가는 분위기였다.
요즘 정가에서는 조국혁신당이 정의당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평판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치러질 21대 대선이 다시 초박빙 승부가 전개된다면 민주당은 조국혁신당 등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져 10이라는 숫자를 보여주고 여당 국민의힘 지지율도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조기대선이든, 탄핵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지 민주당은 지나치게 왼쪽으로 치우친 정당 지지율을 빼더라도 아직도 이재명표 경제공약에 저항감을 느끼고 있는 중도층을 끌어당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있다.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흐름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당대표 선거 이전에도 '종합부동산세 근본적 검토'라는 민감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이재명 대표는 예전에 종부세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종부세는 불필요하게 과도한 갈등과 저항을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자 친문재인(친문) 세력은 '당 정체성'까지 거론하는 등 당내에선 파열음이 커졌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친문 계열은 거의 지리멸멸 상태이고 이재명 단일 지배체제가 공고해진 상태이다.
이번 금투세 폐지 결정도 민주당은 치열한 당내 토론 대신 이재명 개인이 결단하는 영역으로 보내버렸다.
때문에 종부세 폐지 또는 완화 등 여러 경제 이슈에서 이재명 대표의 단독 결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지난 8·18 전당대회에서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들고나온 이 대표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는 시각은 상존해왔다.
그는 당시 “먹사니즘만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다”는 발언도 했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에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지난달 17일에는 강원도 평창의 배추밭을 찾아 농민과 배춧값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런 일정은 흔히 말하는 민중 세력들을 끌어안는 행보로 이해할 수 있어 대수롭지 않게 볼수 있지만 기업인들을 향한 그의 행보는 주변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4일 이 대표는 금투세 폐지방침을 확인한 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SK AI(인공지능) 서밋'을 찾아 최태원 SK 회장과 차담을 가졌다.
이 대표는 지난 9월에도 국회를 찾은 최 회장과 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특히 두 사람은 AI 반도체산업 지원 방안과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에너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대표는 오는 11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정책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대표가 이처럼 우클릭 실용주의 정책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변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언론기고문에서 "'기본소득'을 먹사니즘으로 재포장하겠다는 의도다. 먹사니즘의 핵심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판받는 기본소득이다. 그의 기본소득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돈을 마련할지 대안이 없는 게 문제다”고 지적했다.
◇금투세 페지로 주식시장 살아나나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폐지를 밝힌 4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2582.96)보다 46.61포인트(1.83%) 오른 2588.97에 장을 마쳤고 코스닥 지수는 3.43% 급등하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같은 주식시장 반응이 얼마나 더 구조적으로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한국 주식시장이 여타 선진 시장보다 저조한 실적을 보인 것은 비단 금투세문제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투세는 다만 지지부진한 한국 증시에 악재를 더하는 또 하나의 악재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앞으로 한국 증시가 계속 부진할 때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모든 것이 금투세 도입을 강행한 민주당 특히 이재명 때문이다”는 슬로건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번 이재명 대표의 결단(?)으로 앞으로 한국 주식시장을 살려내야 하는 역할은 다시 여당의 몫이 됐다.
뿐만 아니라 한국증시가 그 어떤 과정을 통해 만약 살아난다면 이재명 대표 역시 그 상승세에 숟가락 하나를 얹을 수 있으니 이번 금투세 폐지결정은 ‘양수겹장’이라 할만 하다.
물론 문제는 남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투세는 선진국도 도입한 글로벌 표준 중 하나인데 금투세 폐지는 분명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금융시장 선진화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선진국의 형태를 좇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금융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과 일본, 영국 등은 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한국처럼 증권거래세만 걷는 국가는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 한정되어 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정책위 의장은 입장문을 통해 “현재 주식시장의 어려움이 금투세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조차 아는 내용”이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원은 주주 이익 보호를 법적으로 담보하는 상법 개정이 수년째 미뤄지고 있는 것,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심화시키는 윤석열 정부의 호전적 남북 관계와 국제 외교 행태, 주가 조작으로 24억 의 부당 이득을 취한 주식시장 파괴범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검찰 행태 등에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결국 이번 여야의 금투세 폐지 결정이 우리 증시의 방향을 우상향으로 턴시키는데는 일정한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는 물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미국 대선이 끝나면 누가 되더라도 국제 금융시장은 대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가 현금 보유액을 사상 최대로 늘린 것에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벅셔가 공개한 3분기 재무 보고서에 따르면 벅셔의 현금 보유액은 2분기 말 2769억달러에서 3분기 말 3252억달러로 483억달러 증가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버핏이) 현금 비중을 갑자기 올렸다 이런 것들은 투자자들한테 굉장히 많은 시사점을 준다. 주식 투자에 대해서 위험에 대한 선호도를 낮춘다는 걸 의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캐시 세이퍼트 CFRA리서치 애널리스트 역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벅셔는 더 넓은 경제의 축소판”이라며 “벅셔의 현금 비축은 ‘리스크 오프’(안전자산으로 회피) 심리를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재명의 금투세 폐지 결정은 향후 전개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서 민주당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었다는 의미를 간과할 수 없고, 국민의힘으로서는 책임소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린 셈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된 먹사니즘’이 그의 집권 전략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이냐에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종부세 도입 등 좌파 정책을 적극 밀어붙이면서도 ‘한미FTA’ 추진 등 우클릭 정책을 취했지만 임기 막바지 시점에는 최저 지지율을 경신하면서 좌우 모두에게 버림받은 역사적 경험도 되새김질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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