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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용웅 칼럼]삼성, 미래 두려워말고 ‘초격차DNA’ 복원해야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세상에서 쫒겨나는 사람은 오직 둘뿐입니다

 

미래를 가로막는 과거의 사람이거나

 

오늘이 받아들이기 두려운 미래의 사람

 

과거의 사람을 쫓아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안다

 

하지만 미래의 사람을 추방하는 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미래에서 온 사람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하고 불온해 보이기에”

 

서두에 거론된 싯구는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의 시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세계적인 대기업 삼성전자의 이야기를 쓰려는 글에 노동시인 박노해의 싯구를 인용하는 것은 얄궃기는 하겠지만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5만 전자 시대로 되돌아갈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의 현 위치를 살펴보면서 ‘미래’라는 화두를 되새김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어느 순간 ‘미래를 가로막는 과거의 사람들’에 갇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배척해온 것은 아닌지.

 

달리 말하자면 미래를 내다보고 개척하는 흔히 말하는 ‘초격차DNA’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그런 의문들이 이어져 온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9만전자 기대에서 반년만에 5만전자로 내려앉은 삼성전자...무슨 일

 

“삼성의 HBM3E를 아직 사용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현재 검증하고(qualifying) 있다”

 

​ 지난 3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개발자 행사인 ‘GTC2024’에서 전세계 기자들과 Q&A 세션에서 ‘삼성전자의 최신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사용하고 있나’는 질문을 받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답변 내용이다.

 

​바로 그때부터 삼성전자의 주가에 불이 붙더니 ‘9만 달러’ 운운의 황금빛이 삼성전자 앞날을 비추는 듯 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지적을 받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엔비디아는 젠슨 황의 언급이 전해진 당시 3월까지도 삼성전자 제품을 쓰지 않고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삼성전자는 HBM의 엔비디아 납품을 추진 중이지만, 젠슨 황의 언급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테스트 통과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때 3분기 중 양산을 예고했던 5세대 HBM3E 12단은 아직 본격 생산에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생산을 해도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반도체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고, 내년부터 D램 업황이 꺾일 것”이라고 진단하고 “특히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으로 5세대 HBM3E 시장이 공급과잉이 발생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외국계 증권사 맥쿼리도 삼성전자에 대해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공급 과잉이 발생해 평균판매가격(ASP)이 하락하면서 전방 산업의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기존 12만5000원에서 6만4000원으로 48.8% 하향 조정했다.

 

이같은 외국계 증권사들의 보고서는 9월 반도체 수출액이 136억달러로 작년보다 37.1% 증가하는 등 11개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 대비 늘어나는 호조세를 보인 가운데 나왔다.

 

새 아이폰 등 신규 스마트폰 출시, 인공지능(AI) 서버 신규 투자, 일반 서버 교체 수요 확대 등에 따라 메모리 중심의 견조한 수요가 지속됐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까지 이어져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이어간 것이라는데 왜 이런 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와 주가를 끌어내리는지 개미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젠슨 황 CEO는 지난 2일 CNBC 방송에 출연해 “블랙웰을 완전히 생산 중이며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블랙웰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다(insane)”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내년 초 내놓을 예정인 차세대 인공지능(AI)칩인데 개당 3만~4만달러(약 4014만~5352만원) 사이에서 가격대가 형성될 전망이다.

 

젠슨 황 CEO는 “이번 가격 구현을 위해 엔비디아는 약 100억달러(약 13조3810억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지출했다”고 직접 밝혔다. 이는 이전 세대인 H100 칩과 비슷한 가격대다.

 

전문가들은 당초 개당 5만 달러 정도를 예측했지만 젠슨 황 스스로가 가격을 내린 것이다.

 

엔비디아가 AI칩 시장 80%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직접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젠슨 황은 가격면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는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물론이고 조만간 테스트를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는 삼성전자 등으로 납품업체를 확대하면서 비용 절감을 통해 가격 경쟁에 나서겠다는 경영전략을 읽을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외국계 증권사들은 조만간 공급과잉이 전개될 것으로 시장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IT 시장조사업체 욜 그룹은 “HBM 가격은 DDR4 D램에 비해 가격이 500% 이상 높고 범용 D램에 비해서는 6배나 높은 가격대”라고 전제한 뒤 2028년이 되면 HBM이 주류 D램보다 3배 정도 높은 가격대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욜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HBM 출하량이 올해 4엑사비트(Eb)에서 4년 뒤인 2028년 28Eb로 7배나 폭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기간 시장 규모가 2.5배 늘어나는 것에 비하면 공급 물량이 넘칠 것이 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업계 일각에서는 1980년대 미국과 일본 기업 사이의 1차 전쟁, 1990년대 한국, 일본, 대만, 독일 기업의 '치킨게임'에 이어 3차 대전이 발발할 것이라는 경고도 고개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HBM 공급 과잉' 우려가 과도하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D램 시장이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유지하고, HBM은 내년에 전체 D램 비트 생산량의 10%, 전체 D램 수익의 30%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삼성전자 주가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요인으로는 반도체 공급과잉 논란뿐만 아니라 대규모 인력감축이 주는 이미지 타격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삼성전자가 전 세계 자회사의 영업 및 마케팅 직원은 약 15%, 관리 직원은 최대 30%까지 줄이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대규모 인력감축은 결국 회사가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이재용 사법리스크 여전하지만 삼성전자의 업계 선도 DNA 복원이 절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조직개편을 통해 HBM 개발팀을 신설하는 등 기술 리더십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HBM 시장의 선두주자가 SK 하이닉스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5세대 HBM인 HBM3E 8단을 업계 최초로 납품한 데 이어 최근 12단 제품도 최초로 양산했다고 밝혀 업계 선두주자임을 과시하고 있다.

 

또 대만 TSMC의 올해 2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무려 62.3%에 달해 삼성전자는 아예 경쟁자 대열에 끼지도 못하고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해도 수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최강자로 세계 최강을 과시해 온 삼성전자에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업계 선두’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삼성전자에 낯선 단어가 되는 바람에 위기론이 성큼 찾아온 것은 아닌지.

 

상황이 이러할진데 삼성전자가 수조원을 투자해서 개발해온 기술은 송두리째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9월 말에는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가 중국 반도체 회사 청두가오전 대표 최 모 씨와 개발실장 오 모 씨를 산업기술 보호법 위반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이 빼돌린 D램 반도체 공정기술은 삼성전자에서 개발비로만 4조원이 넘게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은 한두번이 아니다. 삼성전자 조직 전반에 대한 고민과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박노해의 시(詩)처럼 과거의 사람들은 사라져가고 미래의 사람들은 아직 들어오지도 못하는 그런 진퇴유곡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혁신’과 ‘초격차’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회계부정·불법승계' 2심 공판이 지난 9월 30일 재개되어 사법리스크가 재연되는 것도 변수로 작용한다.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재용 회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 13인에 대한 19개의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사실에 대해 모두 무죄를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이 이제 시작이고 대법원 판결까지는 적어도 2~3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안팎에서 위기론이 점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겹쳐지는 형국은 분명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반도체 위기론과 함께 AI거품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3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주요 투자자들로부터 66억 달러의 새로운 자금을 유치했고 금융기관으로부터 40억 달러의 새로운 신용 한도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투자 유치 금액은 당초 알려진 65억 달러보다 소폭 늘었고 기업 가치도 1500억 달러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픈AI는 “우리는 AI가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한다는 사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미션 진전을 가속하기 위해 신규 자금을 조달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시 ‘5만 전자’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삼성전자의 앞날을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초격차 DNA로 재무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다시 한번 박노해의 싯구를 음미해본다.

 

“하지만 미래의 사람을 추방하는 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미래에서 온 사람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하고 불온해 보이기에”

 

시인 박노해가 말하는 과거와 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겠고 읽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느낌이 다르겠지만 노동이나 경영이나 정치나 예술이나 모두 과거와 미래의 전쟁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