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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美 Fed의 ‘빅컷’에도 한은의 즉각반응이 어려운 이유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통화정책은 국내 요인에 더 가중치를 두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은이 미국에 이어 즉각적으로 10월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시중의 기대치와는 다소 분위기가 다른 발언이다.

 

이 총재는 “우리는 벌써 오래전부터 미국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임플라이(암시)한 뒤부터는 (한국은행이) 미국 금리 결정과 달리 국내 요인만 보고 이때까지 금리결정을 해왔다”고 자신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 총재가 말한 ‘국내 요인’은 아무래도 부동산 시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8일 기준금리를 기존 5.25∼5.50%에서 4.75∼5.0%로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0.25%를 내리는 ‘베이비 컷’과 비교해 시장에서는 이같은 인하폭을 '빅컷'으로 불렀다.

 

미국 연준이 4년 반 만에 기준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인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플레와의 전쟁을 의미하는 긴축 통화정책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0%포인트 차로 역대 최대였던 한국(3.50%)과 미국(5.25∼5.50%)의 금리 격차는 최대 1.50%포인트로 줄어들었다. 한은의 금리인하 향방과 속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미국 금리인하, 박빙 대선에 어떤 영향 미칠까

 

연준은 이날 금리를 인하하면서 “인플레이션은 FOMC의 2% 목표를 향해 더 진전을 보였지만 여전히 다소 올라가 있는 상태”라고 진단하면서도 “FOMC는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2%를 향해 가고 있다는 더 큰 자신감을 얻었고, 고용과 인플레이션 목표에 대한 리스크는 대체로 균형을 이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빅컷으로 “신용카드 잔액이 있는 소비자와 변동 금리 부채가 있는 중소기업에 즉각적인 구제책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기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는 미국 상업용부동산 시장의 경우 이번 빅컷으로 한숨 돌리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 규모가 1조5000억 달러(약 2008조원)에 달하고, 그 가운데 4분의 1가량은 차환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규모가 57조원에 달하고 북미 부동산 투자규모만 해도 35조원에 달하는 국내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연준은 올해 0.5%포인트 추가 금리 인하를 예고했는데 올해 1.0%포인트 인하, 내년 1.0%포인트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증시는 금리 인하 발표 당일에는 오히려 하락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다 이틀째인 19일에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전장보다 522.09포인트(1.26%) 급등 마감했다.

 

나스닥종합지수 역시 전장보다 440.68포인트(2.51%) 뛰어오른 18,013.98에 거래를 마쳤다.

 

박빙의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정가에서도 빅컷을 둘러싸고 바로 논쟁에 돌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경제가 강세를 유지하는 동안 인플레이션과 금리는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미국 경제는 바이든 집권 시기에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했고 이제는 인플레이션도 잡혀가고 있다는 자화자찬인 셈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는 “이번 금리 인하는 해리스 부통령 캠프에 경제적 순풍이 될 것”이라며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경제를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인하 첫날에는 미국 증시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바로 다음날 급등세를 연출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반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금리 인하에 대해 “그들(연준)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경제 상황이 금리를 그 정도로 내려야할 만큼 매우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전에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는 만약 파월이 9월에 금리를 인하해서 민주당을 도와준다면 자기가 대통령에 올랐을 때 파월의 임기를 보장해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었다.

 

트럼프 후보를 지지해온 헤지펀드업계 대부 존 폴슨은 성명에서 “연준은 선거 47일 전까지 (금리 인하를) 미루며 그 동기에 대해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면서 “해리스의 선거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 아닌지 의문”이라면서 트럼프 주장에 동조했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특정 정치인, 특정 대의, 특정 이슈 등 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다”며 “모든 미국인을 대신해 고용과 물가 안정을 극대화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등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해명한 것이다.

 

◇전세계적인 금리인하 도미노 상황 속 한은의 깊어지는 고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선 국가들로 유럽, 영국, 캐나다를 꼽으면서 인도, 한국,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지만 이제 이들 국가도 금리 인하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 이코노미스트들은 태국, 한국 등은 연말 전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인도 역시 시간 문제일뿐 결국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반면 호주, 노르웨이, 브라질 등은 여전히 인플레와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금리인하 대열에 동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그러니까 미국이 금리를 인하했다고 해서 전세계 모든 나라가 비슷한 경로를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인 셈이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해왔다.

 

그는 “한국경제 전체로 볼 때 부동산 가격이 소득과 비교해 너무 오르면 버블(거품)이 꺼지는 걱정뿐 아니라 자원배분 측면에서도 부동산에 대출 등으로 돈이 몰렸다가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하는, 이런 고리를 끊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디까지 부동산발 금융 불안이 한은 금리정책의 기본이 됨을 거듭 강조해왔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23주 연속, 전셋값은 67주 연속 상승중이고 이와 연관된 가계 대출은 확대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는 하다.

 

이달 들어 12일까지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보다 2조2000억원 늘었다. 8월 한달 동안 5대 은행의 주담대가 8조9000억원,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이 9조8000억원 증가했던 것을 생각하면 증가폭 자체는 다소 주춤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규제가 은행권만큼 강하지 않은 2금융권으로 주담대 증가세가 옮겨가는 일종의 풍선효과가 어느 규모일지도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기준금리가 부동산 시장뿐만 아니라 경기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데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소매 판매와 건설 투자가 부진한 데다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며 내수 적신호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함을 주문한 셈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관계기관 합동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며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을 계기로 내수 활성화와 민생안정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 그간 우리 경제는 견조한 수출 호조로 회복 흐름이 이어져 왔지만 내수 회복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말해 금리인하를 우회적으로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시중에서는 “금리가 내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 내 집 마련의 기회는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이 고금리를 이기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게 되면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당장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서민들의 금리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9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협중앙회·수협중앙회·산림조합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농림‧수산 분야 상호금융기관 단위조합의 연체율 및 적자가 크게 급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협 단위조합의 연체율은 37.61%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또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7월 말 기준 카드론 잔액은 41조2266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6.4%(2조4653억원) 늘어 사상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고금리 지속으로 서민들의 지갑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집값 급등을 막기위한 고금리 지속이 아무런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과연 이창용 총재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국내외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경제사회 문제 전반에 발언권을 강화해온 이 총재의 금리 결정이 우리 정치 지형에 미칠 영향도 관심거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