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업

[이용웅 칼럼]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임기는 '관치금융' 판단의 시금석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2003년 카드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국장이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응수한 이 말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서 “시대착오적이다”는 평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관치금융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때는 반드시 인용되는 언급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비롯해 카드 사태, 미국발 금융위기 등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감독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아주 자연스런 문화와 관행이 된지 오래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2022년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도 레고랜드의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발생한 한국의 채권 신용도가 다 같이 폭락, 한 때 환율이 1400원대를 위협하기도 한 ‘레고랜드 사태’가 있었고, 3개월마다 위기설이 반복되고 있는 부동산 PF 위기는 '진짜 위기가 오는 그날까지'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이같은 실질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깊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최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은근한 퇴진 압박만 날로 강해지고 있어 금융과 경제를 살리는 ‘필요악으로서 관치’가 아니라 이권과 인사문제에만 집중하는 ‘퇴행적인 인사 관치’가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가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금융발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고 관리하는 영역에서 ‘관치’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치’라는 말이 우리 귀에 부정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정권 핵심이나 재계 최고위 수준의 기업집단과 연계된 금융권의 왜곡된 운영이 과거 수차례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수장 인선과 관련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은 항상 이어져 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던 2007년,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원장과 은행장들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참석자들이 “은행을 금융회사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하면서 때 아닌 호칭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금융기관'을 '금융회사'로 바꾸려는 노력은 다른 측면에선 말에 담긴 권위주의의 그림자를 털어내기 위한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다.

 

아무래도 ‘기관’이라는 말을 쓰면 공공성이 강해보이고 정부기관과 비슷한 이미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라고 하면 ‘자유시장 경제’에 걸맞는 민간의 냄새가 더 강하게 풍기기 마련이다.

 

이런 말이 나온게 2007년인데 그 사이 정권이 몇차례 바뀌었지만 금융회사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기에는 ‘관치’의 뿌리가 너무 깊게 자리잡은 것 같다.

 

◇금융권 수장 인사에 관여하는 관치는 명분도 실리도 없어

 

인사에 관여하는 관치금융이라고 하면 먼저 이명박 정부 시절 유행했던 ‘4대 천왕’이라는 말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당시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을 시중에서는 ‘4대 천왕’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모두 MB와의 인연이었다.

 

강만수 회장은 MB가 다니는 소망교회 인맥이다. 그는 1980년대 초 소망교회에서 MB를 처음 만나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왔다.

 

어윤대 회장은 MB와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이팔성 회장은 MB의 고려대 후배로 MB가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시향 대표를 맡았으며 대선캠프에서도 활동했다.

 

김승유 전 회장은 MB의 고려대 동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이팔성 회장이 오래 전에 작성해놓은 비망록을 폭로했는데 그 내용이 아주 가관이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3월 28일, 그러니까 본격적인 인사상 혜택을 받기 전에 초조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글인데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적었다.

 

그러니까 MB정부 시절 금융지주 수장 자리가 이상한 거래 형태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심을 계속 받아왔던 것이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위세를 과시한 4대 천왕의 운명이 명예와는 멀었던 것은 어찌보면 ‘관치 인사’가 낳은 태생적 운명일 수밖에 없다.

 

강만수 회장은 2016년 8월 2일 산업은행장 재직 당시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개입된 정황이 포착돼 구속됐다.

 

이팔성 회장은 2013년 감사원 감사에서 측근을 자회사 대표에 앉히고 해외 골프와 고가 선물 구입으로 회삿돈을 낭비한 사

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2013년 4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어윤대 회장의 경우 당시 KB금융 노조는 “어 회장이 스스로 'MB맨'이라고 표현하며 경영을 맡았는데 자산은 줄고 주가는 폭락했다”며 “어 회장 뒤에 숨어 차기를 노리는 외부에서 온 임원들도 떠나야 한다”고 날을 세워 줄곧 사내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 취임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를 향해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 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시장 참여자들이 보기에 말은 그럴듯 하지만 금융 당국이 직접 금융지주 이사회를 향해 경영진 선임과 관련해 의견을 내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 임종룡 우리지주 회장이 중도 퇴진하면 후임자도 자유롭지 못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제가 재정경제부 과장 시절에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그 당시 수없는 시간을 잠 못 이루며 고민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이제 우리은행을 사랑하셨던 분들의 기대에 보답해 드리고, 제가 젊은 날 열정을 다했던 일을 마무리하게 됨이 한없이 기쁩니다.”

 

2016년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우리은행 민영화 이후 은행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처럼 우리은행에 대한 임종룡 현 지주 회장의 각별한 인연과 애정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임종룡은 편지에서 이렇게 또 강조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보와의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은 오늘 해제될 것입니다. 과점주주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오는 12월 30일 주주총회에서 과점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선임될 것입니다.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는 은행장 선임 등을 비롯한 우리은행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과점주주 중심의 자율적 지배구조 체제가 우리 금융산업에서 새로이 시도되고 반드시 성취되도록 뒷받침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우리은행에서 인사 등 모든 분야에서 관치의 그늘을 걷어내겠다고 정부의 입장에서 강력한 약속을 한 것이다.

 

참 사람들 인연이 묘한 게 그로부터 7년 뒤 임종룡은 자기 재임시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했는데 이제는 금융당국으로부터 노골적으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회장 친인척 350억원 부적정대출 관련 임종룡 현 우리금융 회장을 향해 이복현 금감원장 등 금융당국이 연일 고강도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어디까지나 전임자 시절에 이뤄진 일들인데 시장에서는 과도한 간섭이 아니냐는 반응이고 “속뜻은 다른 곳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당연히 이어지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더 나아가 우리금융지주의 동양생명·ABL생명보험 인수 관련해서도 당국과 소통이 없었다고 지적했는데 듣기에 따라 매우 불편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임종룡 회장은 과거 금융위원장 시절 우리은행 민영화를 축하하면서 “때로는 정부 소유 은행이라는 굴레로 인해 경쟁은행에 비해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 부담과 어려움을 모두 내려놓고 이제 우리은행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새로운 시장 주체가 된 것이다”고 강조했는데 이복현 금감원장의 발언 내용을 보면 우리금융지주가 과연 민간 금융회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멈추지 않고 우리금융그룹의 증권사 합병 과정까지 재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증권사 합병 인가를 심사할 당시에는 합병을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한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상태였는데 이제 와서 무슨 재점검이냐는 의구심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쯤되면 정부가 생각하는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이 하도 시끄럽게 전개가 되니 우리은행 내부의 상업-한일은행 출신들의 고질적인 내분이 외부의 압력을 불러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물론 손태승 전임 회장 당시 이뤄진 친인척 대출 등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사와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임 회장 때의 일에 현 회장의 책임도 있다고 몰아치고 전임 회장 때의 경영적 판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현 회장 책임하에 진행되어 온 M&A 과정마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3월 연임을 노렸던 손태승 전회장을 주저 앉힌 뒤 “우리금융이 새로운 회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해서 금융지주의 경쟁력 강화, 포트폴리오 다변화 측면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감독 행정이라든가 제도적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는 부분들은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금융지주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노력이 문제가 있다고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말에 주목해보자.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금융지주는 미래를 창조하기는 고사하고 과거에 얽매여 '예측불허의 미래'에 내동댕이쳐지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러니 ‘관치’라는 말을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선듯 내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복현 금감원장의 헷갈리는 발언들이 최근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부추키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판국에 우리금융지주 회장 임기에 압박을 가하는 행보가 이어지자 '위기극복을 위한 관치'에는 소홀하고 '민간금융 회사 인사에 관여하는 퇴행적인 관치'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