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프랑스) =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이제 말 그대로 옛말이 된 것인가.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기자가 이번에 유럽 일대를 돌면서 만난 평범한 한국인들은 이국땅에서 서로를 만난 사실만으로도 반가워했다.
파리에서 10년 이상 사업을 했다는 한국인 여성 한 분은 기자에게 “샹젤리제 거리에 가면 삼성 체험관을 볼 수 있다”고 나의 방문을 권유했다.
한국인이라서 당연히 삼성체험관을 찾을 것으로 예측을 한 것인지.
실제 삼성체험관을 찾아보니 체험관 직원이 갤럭시 AI 기능을 이용한 사진 편집을 시연하는 장면도 볼수 있고,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월드서프리그(WSL), 스트리트 리그 스케이트보드(SLS), 프로 브레이킹 투어(PBT)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3부작도 감상할 수 있는데 현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베를린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은 “독일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해도 스마트폰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 왠만한 사람들은 다 삼성 핸드폰을 쓴다”고 말했다.
실제 그 사람 말이 틀린 것이 없는 것이 삼성전자가 지난 1분기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첫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기능을 선보인 갤럭시 S24 시리즈와 갤럭시 A 시리즈 등 중저가 스마트폰이 인기를 끈 덕분이라고 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카날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하량 1210만대를 기록하며 37%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 늘었다.
◇한국 대기업의 성장에는 국민적 성원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20~30년전 일이기는 한데 미국 출장길에 대도시에서 현대차 '포니'를 보고 감정이 울컥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기자 역시 30년전 외국 길거리에서 현대라는 로고를 발견하려고 두리번거리던 기억이 새롭다.
2004년 러시아를 공식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경제인과의 간담회에서 “외국에 나와보니 ‘기업이 나라다’ 하는 생각이 든다”며 소회를 털어놓았다. ‘길 가에 늘어선 우리 기업의 광고를 동포들이 보면서 어떤 느낌을 가질까’ 생각하니 그렇다는 얘기였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크레믈린 궁 옆을 관통하는 중심도로인 레닌로(路) 길가의 광고판은 아예 삼성과 LG가 완전히 장악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친기업 발언으로 유감스럽다”는 좀 이상한 반발에 휩싸이기도 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스드이다,
30년 전만 해도 한국과 미국은 주기적으로 통상협상을 하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요즘이야 한미FTA라는 큰 틀의 통상협정이 존재하지만 당시에는 한미 통상협상의 주요 목적은 미국을 위한 한국시장 개방이었다.
외교부를 출입할 때 협상 관계자들에게 들은 말인데 “미국 사람들은 광화문 일대에 나가보면 전부 한국차만 보인다면서 이게 시장을 개방하는 나라의 모습이냐고 따진다. 해서 우리끼리는 한미 통상협상 기간만이라도 전국의 외제차를 모아 광화문에 풀어놓자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는 게 당시 우리나라 시장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한국에서 무슨 폼이라도 내세우려면 외제차를 자랑하기에 바쁘다. 지난해 애플은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25% 선을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한다.
반면에 삼성 갤럭시 S24 시리즈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 미국 시장 핸드폰 시장 점유율 31%를 달성했다.
이제 애국 소비가 아니라 제품만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온 것이고, 삼성전자는 나름 선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시대가 많이 바뀐 탓에 더 이상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삼성과 현대차와 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성장한데는 그네들 회사를 이끌어 온 임직원들의 노고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아낌없는 지원과 성원의 공도 컸다고 본다.
게다가 그동안 국민 세금으로 지원한 규모는 어찌 할 것인가.
지난해 삼성전자가 받은 세금 감면액은 6조7068억원으로 압도적 1위다. 정부가 올해에 저리 대출과 도로·용수·전력 등의 인프라 지원을 약속한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7조원에 달한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전쟁으로 여야 정치권은 정부보다 더 센 지원법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판국이다.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이 목표라는 삼성전자 노조의 전략은...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지난 13일 다시 파업에 돌입할 것을 예고했는데 노조 관계자가 말하기를 “이 기간에는 오피스 인원들이 (교대 근무자들이 빠진) 생산라인에 지원을 나올 수 없다”며 “짧은 기간이지만 사측에 데미지(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이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전삼노는 지난 5일 삼성전자 최초 노조(1노조)인 삼성전자사무직노조와 통합해 조합원 규모는 3만6557명으로 전체 직원(약 12만5000명)의 29% 수준이다. 때문에 절대다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측은 물론이고 같은 노동자들이라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전삼노는 파업의 목표가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닌 '근로환경 개선'이라는 점을 알림으로써 사회적 공감대를 쌓는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어 안타깝다.
전삼노는 1차 파업 때도 “생산라인 차질” 을 파업의 목표로 분명하게 내세운 바 있다.
굳이 계산할 필요없이 삼성전자가 우리 기업 중 최고의 임금 수준을 보이고 있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난해 반도체 불황으로 기록적인 적자를 겪은 탓에 성과급 등이 기대치보다 크게 줄었기에 노조 가입 인원이 급증한 것이 이번 파업 사태에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국혁신당은 지난 총선 공약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임금 인상을 자제한 대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주는 ‘사회연대임금제’를 약속하기도 했다.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는 기업에게 세금 혜택은 왠 말이며 “전기가 없어 반도체 공장을 돌릴 수 없다면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내거나 전국의 송전망을 삼성이 알아서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여론도 진보계층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 일각의 이같은 요구는 삼성전자 노사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노조는 당연히 관련법에 따라 정당한 노조 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노조가 사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물론 당연한 권한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이기는 하지만 그 수준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아직도 국민적 지지와 지원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삼성 노조가 노조원의 이익을 위해 뛴다고 해도 전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 기업이 이겨야 한다는 국민적 지지와 열망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전세계는 반도체 전쟁을 치루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22년에 제정한 'CHIPS Act'를 통해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이에 질세라 2021년 '유럽 반도체 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430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대만의 경우 TSMC의 성장을 위해 전 국가가 뛰고 있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일본 역시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TSMC 공장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규슈 구마모토현에 최근 1공장을 준공했다.
TSMC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2공장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국제적인 반도체 전쟁에서 삼성전자의 앞길을 정제되지 않은 노사분규가 장애가 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한국기업 간판을 보고 우리 기업에 대한 자긍심으로 뿌듯해지는 경험을 계속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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