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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용웅 칼럼]빅데이터 기반한 中 반간첩법, 韓 기술·일상 위협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중국에서 일하던 한국인 1명이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최근 도입한 반간첩법 때문에 중국에서 일을 하는 사람 외에도 관광 목적의 단순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중국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라는 경고는 그동안 계속 이어져왔다.

 

외국인만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문제이다. 반간첩법 제정 이후 학교, 정부기관, 공공기관 등에 종사하는 중국인들이 외국인과 만날 경우 당국에 사전 보고를 해야 한다. 때문에 중국인과 외국인들 사이에는 불필요한 긴장감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 기술 훔치기에 바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역공에 관심 집중

 

우리는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오래전부터 시도해온 빅데이터를 활용한 감시체제에 새삼 깊은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살던 50대 교민 A씨가 중국 공안당국에 간첩혐의로 체포된 시점은 지난해 12월 18일. 검찰에 넘겨진 시점은 지난 5월인데, 중국 외교부는 10월 29일 “한국인이 간첩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교민 A씨는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서 근무했는데 회사 기밀을 훔쳤다는 것이 혐의 내용이다. 한국 국민이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지난해 7월 개정 반(反)간첩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이다.

 

교민 A씨를 인터뷰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이온 주입’ 전문가이다. A씨 딸은 “아버지가 전문성을 갖고 있는 반도체 공정의 ‘이온 주입’ 기술은 고급 기술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는 부도체이다. 이온 주입은 소스가스를 이용해 만든 이온을 웨이퍼에 물리적으로 주입해 전류가 흐르도록 하는 작업이다. 이온 주입 공정은 한때 20세기 신(新)연금술이라 불릴 정도로 탁월한 기술이었으나 지금은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아닌 어느 정도 범용화되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이다.

 

벤 포니 서울대 연구원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창신의 메모리 기술이 한국 메모리 기술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A씨가 한국 경쟁사에 영업 비밀을 넘기는 것으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이 반도체 기술 유출로 한국인 기술자를 체포하기 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한국 삼성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다 적발된 기사들이 다수 나왔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이번에 문제가 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라는 회사이다.

 

지난 1월 검찰은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기술 등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전직 삼성전자 부장과 전직 협력업체 직원을 전격 구속 기소했는데, 그 중국기업이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이다.

 

삼성전자 전직 부장 김모씨와 협력업체인 반도체 장비납품업체 A사 전 직원 방모씨는 국가 핵심 기술인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기술을 CXMT로 무단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 등은 기술을 유출하는 대가로 수백억원대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CXMT는 설립 수년 만에 중국의 주요 D램 반도체 업체로 빠르게 성장해 한국·미국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이 중국 회사에 관여한 한국인 기술자 다수가 한국에서 기술유출로 구속이 되고 1명은 중국에서 역으로 간첩 혐의을 받은 것이다.

 

중국당국이 A씨를 취조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국내에서 기술유출 혐의로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던 시점과 공교롭게도 맞아 떨어진다.

 

외신들은 이 때문에 A씨 구속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탈취에 대한 한국의 단속이 갈수록 강화되고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일 수 있음을 의심하고 있다.

 

CXMT는 2016년에 설립이 된 신흥기업이다. 하지만 성장속도는 가히 전광석화(電光石火)라 할만 하다.

 

CXMT는 범용 D램인 DDR4와 저전력 D램인 LPDDR4X를 생산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29일 CXMT는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중국 최초 LPDDR5를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LPDDR에서 한단계 도약을 이뤄낸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초에는 CXMT가 2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2' 대량 양산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은 올들어 한화 65조원 규모의 국영 반도체 투자 펀드를 조성, HBM(고대역폭메모리) 분야에 집중 투자할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를 위해 중국 국무원 재정부의 주도로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3기(3기 대기금)가 설립됐다.

 

CXMT이 HBM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은 최근 미국이 대(對) 중국 수출규제에 HBM 추가를 검토하자 HBM 자급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화웨이의 어센트 910 시리즈 프로세서에는 HBM2가 탑재될 전망이다.

 

일찍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주요 D램 반도체 업체인 CXMT를 포함해 중국 반도체 업체 6개를 상대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세계에서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D램 생산용량 비중은 반도체 웨이퍼를 기준으로 2022년 4%였지만 올해 11%까지 급증했다. 모건 스탠리는 중국의 D램 생산 능력 비중이 내년 말까지 16%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CXMT는 중국 반도체굴기의 선봉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같은 기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축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심도 가능하다. 아직 우리 기술보다는 한참 뒤에 서있으면서 우리 기술 탈취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한국 기술인이 중국 기술을 유출시키려 했다는 간첩혐의를 받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상황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반간첩죄 확대적용 뒤에는 엄청난 빅데이터 축적이...

 

지난 2019년 국내 언론에는 중국이 빅데이터를 이용해 범죄를 예방한다는 기사들이 잇따라 소개됐다.

 

인민일보 등 당시 중국 관영언론 보도에 따르면 안경형 안면인식 기기를 착용하는 중국경찰이 범죄자들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아주 쉽게 찾아낸다는 것이다.

 

한쪽 눈에 인식기가 달린 선글라스 형태인 이 AI 기술은 앞쪽에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얼굴 70% 이상이 찍힌 이들을 인식해서 2~3분 내 범죄인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춘절(설) 연휴를 앞두고 6주간 30억명 규모의 대대적인 인구 이동이 이뤄질 예상인 가운데 인신매매 및 뺑소니 등 범죄 용의자 7명, 신분 위조 용의자 26명을 적발해내는 성과를 거뒀다는 내용이었다.

 

2005년 중국 정부는 스카이넷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감시 시스템을 만들었고, 뒤이어 2013년 스카이넷의 존재가 공식화됐다.

 

2017년 중국 정부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휴대폰 앱의 사용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보안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2018년부터는 CCTV, 인터넷 감시 등 다양한 방법들이 총동원됐는데 얼굴 인식 기술, 감시 드론, 로봇 경찰 등을 활용해 온라인 소셜미디어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빅데이터 수집을 강화했다.

 

특히 주요 도시에 범죄예방을 목적으로 고도화된 CCTV를 설치하는 국가사업 '톈왕'(天網·하늘의 그물) 프로젝트는 오래 전부터 국내외 관심을 모았다.

 

4년전인 2020년 영국의 보안업체인 '컴페리테크'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감시가 심한 20개 도시 중 18개 도시가 중국 도시였다.

 

문제는 중국의 감시·해킹 기술이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9일 해킹된 IP카메라를 통해 유포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260건에 대해 '접속차단'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해킹 피해는 보안이 취약한 중국산 저가 IP카메라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촬영된 한국 가정의 거실, 탈의실 등 사적인 공간의 영상이 중국의 불법 음란사이트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방심위 관계자는 “일반 사용자들이 IP카메라 해킹 피해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해외 음란사이트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국 음란물 사이트에서 약 500건에 달하는 한국인 피해 영상이 발견됐다”며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도 “국내 CCTV 영상이 중국 내 인터넷을 통해 불법 중계되는 사례가 확인됐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보안 전문가들은 IP카메라뿐만 아니라 중국산 스마트홈 기기 전반에 대한 보안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산 로봇청소기와 연동된 애플리케이션에서 해킹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 빅데이터 총량의 약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빅데이터 총량은 2025년에는 48.6제타바이트에 달하면서 전 세계 빅데이터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이다. 2015년부터 빅데이터 발전을 국가 발전전략으로 추진해온 중국은 기업 우호적인 빅데이터 생태계 조성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수집하는 빅데이터는 중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진행중이다. 말이 좋아 빅데이터이지 사실은 무차별적인 감시망의 확대이고 그것은 중국내부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빅데이터로 축적된 정보들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지만 중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불필요한 감시망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확실하다.

 

문제는 위의 사례에서도 볼수 있듯이 어찌 보면 한국 안방까지 중국 빅데이터 수집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알리, 테무의 약진을 지켜보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빅데이터 축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이 반간첩법을 활용해 우리 기술자들을 압박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앞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여러 각도의 대응책 마련이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