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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전기차 포비아’ 넘어 ‘전기차 강국’으로 가는 길 찾아야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뉴스웨이브 = 이용웅 주필

 

국내에서는 갈수록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되고 있지만 중국 승용차협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7월 중국 내에서 배터리 전기차(BEV) 및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PHEV)를 포함한 신에너지 차량은 소매 판매의 51.1%를 차지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는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의 중간 단계로, 전기모터와 석유엔진을 함께 사용해 달리는 자동차를 말한다. 가솔린 소비는 아무래도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자동차이다.

 

반면에 내연기관차 판매비중은 49%로 밀려났는데, 중국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넘어선 것은 사상 최초라고 한다.

때문에 가솔린 소비가 4% 가량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얼핏 보면 중국내 전기차 시장에 대한 단순한 정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를 오랜 기간 괴롭혀 온 중국발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일 수도 있어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실재로 중국발 미세먼지가 얼마나 줄었는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네이버에서 중국발 미세먼지를 치면 지난 4월 대구와 포항 등이 중국발 미세먼지에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 외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물론 겨울에 되어야 진짜 중국발 미세먼지의 추이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 전역에서 가솔린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는 매년 중국에서 넘어오는 오염된 대기에 시달리는 우리에게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이처럼 전기차는 친환경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큰 틀에서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은지 오래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거듭된 전기차 화재 사고가 두려움(포비아)을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유럽 등 주요 소비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우경화 흐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우경화 흐름 주목되지만 친환경 정책 근간은 유지될 듯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고 전기차·배터리와 관련된 부정확하고 선동적인 정보들이 시중에 넘쳐나고 있는 가운데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전기차는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 맞다”고 강조했다.

 

장재훈 사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24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취재진과 만나 “2035년 이후에는 유럽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기차가 아니고는 팔 수가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입장에서는 이제 전기차 생산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EU는 또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해 2035년까지 휘발유·디젤 엔진 신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기로 한 정책을 사실 오래 전 확정했다.

 

EU는 전기차 판매를 장려하기 위해 2025년까지 각 회원국들이 주요 도로에 최대 60km 구간마다 공공 충전소를 설치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전기차 전환을 준비 중인 한국 자동차 기업들도 이에 발빠르게 대응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전기차 사고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는 이유로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물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길이 일직선으로만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가령 독일에서 나치 집권기 이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지방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결과도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일(현지시간) 치러진 동부 튀링겐주 주의회 선거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이 32.8%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는데 독일에서 극우 정당이 지방선거에서 1위를 거머쥔 것은 나치가 집권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후 처음이다.

 

내연기관 관련 차종의 전면 판매 금지를 반대할 것이 분명한 극우정당들의 약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독일 정부는 극우세력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친환경정책에서 조금씩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독일에서 자동차 관련 일자리는 80만개에 달하는데,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적게는 9만개, 많게는 40만개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을 누구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환경 정책이라고 해도 각국의 경제사정이 제각기 다른 만큼 얼마든지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 EU 의회 선거 결과 다수당인 유럽국민당(EPP)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EPP는 친환경보다는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기존 정책을 수정하고 산림 황폐화에 영향을 미친 물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산림전용 방지 규정(EUDR)’ 등의 시행 시기 역시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바이든 대통령이 '업적'으로 강조해온 전기차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데 강력한 영향력을 보유한 데다 전기차산업에 대해 비판적인 전미자동차노조(UAW)를 의식하는 발언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는 여러 정치적 변수가 있어 국내 전기차 산업의 장래에 대해 부정적인 증권사 보고서가 일부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큰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가령 여러가지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미국 청정경쟁법(CCA)과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탄소규제 시행은 이미 코 앞에 다가왔다.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는 EU에 수출하는 기업에게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2025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 청정경쟁법안은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등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12개 제품에 대해 미국 제품 평균 탄소집약도 기준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t당 55달러의 탄소조정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정치적 변수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이 부분 조정을 거칠지는 몰라도 큰 틀의 대세까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아직은 다수이다.

 

미국에서 설령 트럼프가 승리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추진해온 전기차 정책을 한꺼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고, 유럽 역시 극우 정당이 아무리 약진한다고 해도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은 시간 문제일 뿐 근본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기차 시대는 이미 대세적 흐름, 잘못된 정보로 ‘전기차 굴기’ 발목잡는 일은 피해야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캐스퍼 일렉트릭,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5, 아이오닉6, 넥쏘 등 전동화 모델을 8월에 총 3676대를 팔았다. 올해 들어 가장 좋은 실적이다.

 

기아 역시 8월 판매실적에서 전기차 이브이(EV)3·6·9의 판매량이 4693대로 전달에 비해 약 35% 늘었다.

 

물론 정부의 보조금 지원으로 2500만원에서 3500만원 사이에서 신차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꼽혔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는 최근 ‘2024 올해의 전기차’에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아이오닉5를 선정 발표했다. 카앤드라이버가 아우디·BMW·메르세데스 벤츠 등 브랜드의 전기차 18개를 대상으로 3주간 심사한 결과다.

 

그만큼 우리 전기차 실력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직접 제조는 물론 관련 배터리 산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해가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전기차 포비아’에 휘말려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대차·기아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전기차와 배터리 제조 회사들이 세계 톱 수준이 되어 세계를 리드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령 배터리 핵심소재인 삼원재 양극재에서 에코프로는 세계 1위이고 음극재에 들어가는 동박은 SK넥실리스가 세계 1위다.

 

이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화재 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일각에서 마치 전기차를 없어져야  할 산업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29일 “최근 전기차 화재 관련 언론 보도가 늘어나며 '전기차는 화재가 많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화재사고는 비전기차와 전기차 합계 매년 4500건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4800건에 이르는 등 하루에 약 13건 이상 발생할 정도로 빈번한 일이다. 전기차 화재만 우려할 수준으로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해마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판매량은 늘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8년 전 세계적으로 200만대를 조금 넘었던(BEV 140만대, PHEV 70만대) 친환경차의 신규 등록대수는 꾸준히 늘어나 4년만인 2022년에는 드디어 1000만대를 넘어섰다.

 

2018년 2%에 불과했던 친환경차의 판매 점유율은 2021년 9%, 2023년 18%로 늘어났다. 결국 '2023년 전 세계에서 판매된 자동차 5대 중 1대'가 친환경차가 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전기차 사고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일부 국제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을 해서 세계적인 기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앞날을 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