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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우리는 왜 ‘말뫼의 기적’ 대신 ‘말뫼의 눈물’을 기억하나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말뫼(스웨덴)=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스웨덴 말뫼에 가는 길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철도를 이용하면 간편하다.

 

말뫼는 현재 혁신의 대명사이자 유럽에서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1위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코펜하겐의 살인적인 물가와 주거난에 시달리던 덴마크 사람들이 말뫼에 집을 구하는 일이 많아 두 도시는 이제 하나의 경제권으로 완벽하게 묶여 있다.

 

물론 두 도시를 연결하는 것은 물가 때문만은 아니다. 두 도시 모두가 필요로 하는 혁신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말뫼를 방문하는 한국 사람은 먼저 코펜하겐을 찾아 열차를 이용하면 40여분만에 말뫼를 찾을 수 있다.

 

스웨덴 끄트머리에 있는 말뫼를 굳이 한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아무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언급 때문일 것이다.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인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골리앗 크레인이라 불리던 핵심 설비를 단돈 1달러에 넘긴 '말뫼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6월 13일 20대 국회 개원 국회연설에서 스웨덴의 도시 말뫼를 이렇게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은 말뫼의 눈물을 상기하고 우리가 코쿰스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당시 극심한 불황과 과도한 채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우조선과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불황 부실업체 및 업종의 인수합병과 매각,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충, 경쟁력 강화, 인력 및 조직 감축만이 회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언급한 ‘말뫼의 눈물’의 사연은 이렇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조선소였던 코쿰스는 1985년 문을 닫았다. 바로 한국 등 동아시아 조선사들의 도전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을 닫으면서 방치됐던 코쿰스 크레인은 위키백과를 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이 크레인은 1973~74년에 건조됐으며, 원래 규모는 1500t급이었으나 개조 공사를 거쳐 1600t급으로 능력이 향상됐다. 레일 폭은 175m, 말뫼에서 사용 당시 레일 길이는 710m이다.

 

말뫼에 있었을 때에는 약 75척의 선박을 건조하는 데 사용됐다. 건설 당시부터 1985년 코쿰스 조선소 폐업 이전까지는 거의 매일 가동되었다고 한다.

 

75척 중 40척은 유조선, 나머지는 대부분 특수 목적 선박이며 마지막으로 건조된 2척은 크루즈 선박이었다. 1997년 외레순 대교의 교각을 들어올렸을 때 말뫼에서 마지막으로 사용됐다.

 

이 코쿰스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이 단돈 1달러에 매입하게 됐고, 2002년 9월 25일 크레인의 마지막 부분이 해체돼 운송선에 실려서 바다로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는데,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 단어의 유래가 됐다.

 

터닝 토르소 전경.[사진=이용웅 주필]

 

해체된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는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라는 북유 럽 전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발딩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북유럽 전체에서 가장 높은 190m의 최고층 빌딩이자, 말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시내 어디서든지 눈에 잘 띈다.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설계로 2007년에 완공됐다. 총 54층 중 5층씩 묶어 각 파트 별로 10도씩 돌려서 독특하게 꼬아진 형상이 이색적이다.

 

건물의 형태는 '트위스팅 토르소'라 불리는 칼라트라바의 조각품에 기초했는데 이름이 암시하는 바처럼 이 건물은 움직이고 있는 인간의 상체를 닮았다. 터닝 토르소는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으며, 2005년에 엠포리오 스카이스크레이퍼 상을 수상했다.

 

창의적인 형태의 구조적 조형성이 돋보이는 외관만큼이나 친환경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하고 에너지 사용상 효율성을 높였다.

 

북유럽에서 가장 높고 특별한 이 건축물을 견학하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이 장소를 찾아온다. 이는 친환경적이며 작품성이 뛰어난 건축물 하나가 도시 전체에 활력과 생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터닝 토르소 인근 건물들.[사진=이용웅 주필]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박 전 대통령이 연급한 ‘말뫼의 눈물’을 상상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에서 찾아오는 이방인들만 ‘말뫼의 눈물’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터닝 토르소’ 외관은 높이에 비해 결코 위압적이지 않다.

 

아름다은 인체의 형상을 데생한듯한 편안한 느낌을 주고 바다 먼 곳을 찾아 살펴보는 거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변 건물들도 모두 친환경으로 만들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말뫼는 일광욕을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도시이다. 저 멀리 외레순 다리도 보인다.

 

외레순 다리는 스웨덴의 말뫼와 덴마크의 인공섬인 페베르홀름 섬을 연결한다. 페베르홀름 섬에서부터는 해저터널인 드로그덴 터널을 통해 아마게르 섬과 연결, 수도 코펜하겐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는 7845m이다. 사장교 구간의 주탑 높이는 204m, 주탑간 거리는 490m라고 한다. 외레순 다리의 구조물의 총 무게는 총 8만2000여t에 달한다. 1995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1999년 8월 14일에 완공됐다.

 

스웨덴의 말뫼와 덴마크의 인공섬인 페베르홀름 섬을 연결하는 외레순 다리.[사진=이용웅 주필]

 

외레순 다리는 도로와 철도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병용교(倂用橋)이다. 다리가 개통된 이후 대도시 코펜하겐과 작은 항구도시 말뫼는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지역으로 분류되어 공동으로 도시행정을 운영하는 방안까지 연구될 정도이다.

 

◇말뫼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친환경 대학도시로 변화했나

 

조선소가 문을 닫고 23만명까지 줄었던 말뫼의 인구는 현재 약 32만명이다. 수도 스톡홀롬과 예테보리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변모했다,

 

조선소 폐업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2만7000여명은 시의 적극적인 재생정책으로 눈물을 씻어내고 새출발을 시작하게 된 것은 물론 새롭게 젊은 인력들이 대거 유입된 것이다.

 

조선업의 쇠퇴 이후 말뫼시는 지속 가능한 도시에 대해 고민한 결과 1995년 기업인과 노조, 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위원회를 만들었고 두 가지 답을 얻었다고 한다.

 

‘과거 노동집약적 제조업은 버리고 IT,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육성한다’와 ‘친환경 주거공간을 만든다’라는 것이었다.

 

외레순 대교 개통 후 제약과 바이오산업이 발달한 코펜하겐(메디콘밸리)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말뫼의 바이오·제약 산업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게임 산업의 경우 유럽연합(EU)이 스웨덴을 비롯해 덴마크, 노르웨이 3개 나라로 구성된 ‘스칸디나비안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말뫼의 지역 우수 개발 사례로 꼽기도 했다.

 

말뫼시가 내놓은 대책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학의 육성’이었다.

 

1998년 세워진 말뫼대학은 지역을 제조업 기반에서 정보기술(IT)과 바이오 중심의 첨단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말뫼시의 핵심 정책을 위해 세워졌다.

 

말뫼시는 정부와 유럽연합(EU) 기금을 지원받아 학교 인근에 스타트업 육성 허브인 미디어에볼루션시티도 세웠다. 창업을 원하는 말뫼대 학생들은 학교 인근에 들어선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마음껏 준비할 수 있었다.

 

말뫼 해변가.[사진=이용웅 주필]

 

이 변화가 지역을 되살렸다. 2007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말뫼 서부항 신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말뫼를 세계 혁신도시 순위 4위에 올렸다.

 

대학이 발전하면서 ‘말뫼시립도서관’도 크게 성장하고 관광명소로 등극했다.

 

또한 말뫼시는 2001년 ‘친환경 주거단지’도 만들었다. 이 단지는 말뫼시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풍력과 지열,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냉난방과 전력을 100% 해결한다.

 

말뫼에는 풍력발전소 48개가 있고 건물은 태양열 집열을 위한 지붕 구조를 채택했고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는 지역난방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주거환경이 바뀌자 스웨덴은 물론 외레순 대교 건너에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까지 이주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웨덴 말뫼의 변신을 보면서 유연한 산업정책과 교육의 중요성은 물론 시청 등 정책당국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