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업

[이용웅 칼럼]여전히 깜박이는 '230조' 부동산PF 경고등, 연착륙 위한 조건은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You understand guns? Finance is a gun. Politics, is knowing when to pull the trigger.(자네 총에 대해 잘 알고 있나? 금융이 바로 총이야.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지)”

 

영화 ‘대부3’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영화 속에서 이탈리아 정·재계를 좌지우지하는 부패의 상징인 돈 루케니가 마피아 집안의 젊은 아들인 빈센트 만치니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금융이라는 총은 마피아 건달들이 다루는 총이 아니다. 정·재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와 경제계의 거물들이 다루는 총이다.

 

자본주의 핵심과 맥락을 이처럼 잘 묘사한 대사는 왠만한 문학작품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도 찾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이다. 그리고 그런 금융을 총처럼 언제 쏠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정치가 아니던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가장 큰 총은 무엇인가. 바로 230조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PF의 운명을 좌우할 정치력은?

 

◇가계대출 급증 초래하는 부동산PF 부실화의 역설 그리고 지방정치의 풍경

 

지금 이 시점은 부실 가능성이 큰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첫 평가가 진행중이다.

 

금융회사들은 현재 부동산PF 사업장에 대해 지난 5월 변경된 기준에 따른 사업성 평가를 진행하고 결과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하고 있다. 당초 7월 5일이 마감시한이었지만 금융사들 평가가 아직 마무리가 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금융회사들은 전국 5000여곳 사업장 중 연체 중이거나 연체유예, 만기 3회 이상 연장 사업장에 대해 평가했다. 사업성 평가는 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 등 4등급으로 나뉜다.

 

금융회사가 이달 말까지 부실 사업장 등급 통보를 하면 시행사와 건설사들의 반발도 거셀 것이 분명하다.

 

특히 각 지역경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부동산PF의 경우 지역정치와도 밀접한 연결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 뻔해 지방정치에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이는 또한 2년 뒤에 있을 지방선거에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중앙에서는 생소해도 그 지방에서는 이름을 상당히 알린 지역건설사들의 폐업소식이 끝없이 들려오고 있다.

 

이쯤해서 우리는 부동산PF 문제가 정치와의 인연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눈치챌 수 있다.

 

조만간 금감원 등 관계기관들의 부동산 PF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대책이 잇따를 전망이다.

 

전체 5000여곳 중에서 최소 150곳 이상이 부실우려 등급을 받아 경·공매 처분을 해야할 것으로 추정된다는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실제 시장 상황은 매우 준엄하다. 빌라 등 취약 분야가 더욱 심각하다.

 

올해 부도 처리된 100~300위권 건설사의 경우 대부분 비(非) 아파트 시행사 채무 인수가 주요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탁사업의 경우 시행·시공사가 부채를 갚지 못하게 되면 부동산 신탁사로 전이되면서 연쇄 피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계약 해지 등 비(非) 아파트와 관련된 집단 기획소송이 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금융위원장에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을 낙점했다.

 

신임 금융위원장에 가장 임박한 현안은 부동산 PF다.

 

김 후보자 역시 이같은 현실을 잘 알기에 “하반기 금융시장의 리스크들이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도 부동산 PF와 관련된 리스크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며 “올해 상반기에 PF 대출 연착륙 방안이 마련돼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에 따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4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총 710조 7558억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4영업일 만에 지난달 말 708조 5723억원 대비 2조 1835억원 증가했다.

 

가계대출이 이렇게 급증하게 된 것은 이달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의 연기 때문이었다.

 

앞서 금융당국은 자영업자 지원 및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시점을 오는 9월로 미뤘다.

 

결국 부동산 PF 부실문제를 해결하려다 전체 가계대출 규모만 크게 키워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부동산 PF정상화는 결국 정치권의 신뢰회복이 관건

 

한국금융연구원은 몇 달 전 우리나라 부동산 PF 구조의 문제점과 시사점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최근 전세계적으로 이자율이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부동산 PF의 부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 시행사는 자금력이 부족해 브릿지론으로 토지를 구입한 후 본PF의 자금으로 이를 상환하며, 수(受)분양자의 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본PF의 대출기관은 온전한 담보권을 확보하기 어려움에 따라 시공사의 신용보강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의 부동산개발은 토지 매입 시 시행사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확보해 매입 자금을 모두 상환한 후에 대출기관으로부터 건설자금을 조달하며, 선분양 시에도 수분양자의 계약금을 공사비로 사용하지 않아 대출기관의 담보권 확보가 용이하다.

 

결국 우리나라는 과거 금융위기의 교훈을 저버린채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가 불러온 부동산 활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부실 규모를 크게 키워온 셈이다. 그리고 역대 정권은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부동산발 경기진작의 유혹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부동산이 활황을 보일 때 그 누구도 부실 가능성을 미리 예단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은 후과를 지금 겪고 있는 셈이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갈라파고스적 부동산PF, 근본적 구조개선 필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부동산PF 문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지난 십수 년간 고질적으로 반복된 문제이다. 30여개 저축은행이 뱅크런으로 무너지고 10만명 이상의 고객이 손실을 입었던 2011년 저축은행 위기도 PF 부실이 주요 원인이었다.

 

2013년에도 PF 익스포저가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급격히 늘어나면서 위기 대응이 요구되었고, 2019년에는 증권사가 PF사업에 제공한 대규모 채무보증이 문제가 되었으며, 2022년에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되기도 했다.

 

이처럼 PF는 반복적으로 우리 경제에 위기를 초래하면서도 근본적인 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 당시 분식회계와 부정부패의 끝없는 폭로에 일반 시민들은 어리둥절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보수언론 일각에서는 “부선저축은행 사건은 광주일고 출신들의 부산 서민 착취사건이다”는 희한한 프레임을 만들어 오히려 사건을 즐긴 측면도 있었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김민영 부산·부산2저축은행장, 오지열 중앙부산저축은행장이 모두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였기 때문이다.

 

2022년 '레고랜드 빚보증 이행 거부사태'를 일으키며 금융위기설까지 불거지게 한 김진태 강원지사는 “전임 도정(최문순 전 지사) 때 이루어진 일 가지고 제가 정말 안 먹어도 될 욕을 먹게 됐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민주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어찌 보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니다. 김진태 지사 본인도 레고랜드 출범부터 파멸에 이르기까지 전혀 자유롭지 못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보수와 진보정권이 여러차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부동산 PF에 대해 아무도 손을 쓰지 않았다.

 

부동산 PF란 앞서 설명했듯이, 책임질 수 있는 규모의 자기자본 없이도 대규모 시행사업을 벌일 수 있는 화수분 사업이다.

 

이 글에서 일일이 지적할 수도 없지만 바로 그런 구조 때문에 정경유착은 거의 구조화, 일상화되었다.

 

그같은 현상은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었다.

 

레고랜드 사태가 22년에 벌어졌음에도 23년에도 계속 부동산 PF는 진행이 되었다.

 

‘대부3’에서 ‘금융은 총이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정치이다’고 명언을 남긴 돈 루케니라는 작중 인물은 이탈리아의 거물 정치가로 이탈리아 정계 및 경제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거대 부동산기업 '이모빌리아레'의 경영에도 깊숙히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제는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부동산 PF문제가 경제 전반을 압박하는 트리거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동산PF 문제 해결방안은 이를 정치의 영역, 사적 이해관계의 영역에서 최대한 멀리 떼어놓는 틀 안에서 찾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