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나경원, 한동훈, 원희룡 등이 잇따라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공교로운 일인지 자연스러운 일인지는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이 세 후보는 모두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한동훈과 원희룡은 검사를 했고 나경원은 판사를 거쳤다.
정치인이든 일반인이든 출신지역이나 학교를 따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후진적인 한국사회의 풍토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집권당 대표를 뽑는 선거에 출마하는 유력 후보 3명이 모두 서울법대 출신인 것이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한명의 후보인 윤상현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민주당 경선 당시 이낙연 후보는 서울대 출신이라 안된다고?
이재명과 이낙연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두고 경쟁을 할 때 경험이다.
지금은 ‘찐명’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고 있는 민주당 중진의원이 기자가 포함된 어느 자리에서 한 말이다.
“아무래도 이낙연보다는 이재명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낙연처럼 학벌 좋고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불신한다. 이낙연은 전남 도지사 할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바닥이었다. 이낙연이 전남 지사를 그만 둔다고 하니 거기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고 하지 않느냐. 반면에 이재명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사람을 선호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보라. 서울법대를 나온 이인제를 경선에서 누르고 후보가 된 뒤에 역시 서울법대를 나온 이회창을 이기고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
이낙연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DJ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승승장구해온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에서는 본격적인 후보 경선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낙연은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었다.
하지만 결과를 두고 보면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었으니 그 ‘찐명’ 중진 의원은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 본 것이지만 아뿔싸! 거기까지였다.
정작 대통령 선거에서는 역시 서울법대에 검사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회창·이인제 못 넘었던 '서울대 법대, 대선 필패론' 깨졌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이회창이 지방 상고 출신인 김대중, 노무현에게 잇따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가는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서울법대 출신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는 필패론이 팽배했던게 사실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그저 정치권 주변의 찌라시 수준의 평판인 것은 분명하다.
이회창이 두 번 연속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보수진영에서 잇따라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이명박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박근혜는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서울대 특히 ‘서울법대 불가 내지 필패론’이 정가에 그리 널리 퍼졌을까.
아무래도 이회창의 2연속 패배가 그런 판단에 일단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때문인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던 시절 정운찬 총리, 반기문 유엔총장 등이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서울법대를 넘어 “서울대 출신은 대선에 어렵다”는 프레임을 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1952년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치부되었다.
정치권에서 서울법대 출신 판검사라는 이미지가 바로 불통, 갑질, 공감능력 부족으로 연결된 측면이 있으니 정작 서울법대 출신들은 억울해할 만하다.
서울법대를 나왔다고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니?
김영삼 정부 시절 감사원장을 지내면서 ‘대쪽’ 이미지가 형성되어 큰 인기를 누리던 이회창이 대선 후보로 한참 전성기를 누릴 때 기자는 3가지 사건을 아직도 기억한다.
첫 번째는 ‘창자론’이다.
이회창이 정치부 기자들과 폭탄주를 돌리던 과정에서 자기 뜻을 따르지 않던 기자에게 “만약 내가 대통령이 되면 네 창자를 뽑아내겠다”고 폭언을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 이전에 이런 풍문이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있었고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기사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이회창은 고려대를 졸업한 기자에게는 “아니 고려대를 나와도 기자를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2002년 대선후보 당시 이회창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서 떠도는 풍문이었다.
당시 이회창은 대선후보로서는 보기드물게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와 쩡칭훙(曾慶紅) 공산당 조직부장 등 중국의 실력자들을 잇달아 만나 한중 현안과 남북관계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런데 이후 정가에서는 이상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이회창 당시 후보가 중국 고위직과의 회담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아주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 중국측을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자가 직접 취재한 사실도 없고, 관련 내용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도된 바도 없으니 반대진영의 음모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회창의 불통 이미지에 힘을 보탠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1997년 10월 이회창 당시 후보는 검찰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하자 기자회견을 통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한 일이다.
이회창의 고압 불통 이미지가 더욱 굳어진 것은 물론이다.
≠서울법대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국민과의 소통 능력이 중요
기록적인 총선 패배 이후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가 좀처럼 회복할 기미가 없자 정가는 물론 일반 시중에서도 ‘서울법대 출신 불가론’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 역시 서울법대 출신이지만 사법고시 출신이 아니라서 어찌 보면 서울법대 취급도 받지 못한게 다행(?)인가.
이번에는 이회창 때의 ‘서울법대 필패론’이 아니라 절대 서울법대 검사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는 ‘서울법대 검사 불가론’에 가깝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지금 여당의 대표 후보에 서울법대 판검사 출신이 3명이나 포진해 있는 풍경이 묘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검찰공화국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사 출신이 2명이나 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율은 26%에 불과하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물가'(17%), '소통 미흡', '독단적/일방적'(이상 8%), '전반적으로 잘못한다', '의대 정원 확대'(이상 7%), '외교'(6%), '경험·자질 부족/무능함'(4%), '김건희 여사 문제', '거부권 행사', '해병대 수사 외압', '통합·협치 부족', '동해 유전 불신'(이상 3%) 등이 꼽혔다.
경제 문제는 부정평가의 부동의 1위이지만 ‘소통미흡, 독단적’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역시 언제나 한결같다.
윤 대통령의 인기가 회복이 되지 않는 것은 이처럼 소통부재에 있는 것인데 반대진영 사람들은 아주 단순하게 “서울법대를 나온 검사 출신이기에 소통이 더욱 불가능하다”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구호는 단순할수록 설득력을 얻어간다.
우리 선거문화에서 3대 대선 때 민주당이 내건 구호로 '못살겠다 갈아(바꿔)보자'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구호가 있었던가.
지금 시중에서는 “서울법대 검사 출신 대통령은 더 이상 안된다”는 메시지가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음을 여권에서도 분명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법대 출신은 여권에서 무조건 배제하면 되는 것인가? 물론 될 말이 아니다.
애초 서울법대 이미지를 불통의 이미지와 통일시킨 것이 상대 진영의 ‘마타도어’라고 치부한다면 여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소통의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소통은 멀리 있지 않다. 먼저 주변 전문가들과 소통이 우선이다. 국민 전체를 들먹이는 ‘집단지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전문가들과의 소통’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총선패배 이후에도 동해 유전 개발 소식은 물론 거의 모든 이슈에 대통령이 등장하는 흐름은 전혀 바뀔 기미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 대통령이 모든 이슈에서 소통에 나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대통령이 일반 여론과 싸운다는 불통의 이미지를 더욱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몇 달 째 의료대란이 전개되고 있지만 지금 국민들은 주무부처인 (조규홍)보건복지부장관 이름을 잘 모른다. 동해유전의 담당자라 할 수 있는 (안덕근)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누구인지도, 심지어는 한국 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하는 (최상목)경제부총리 이름을 아느냐고 길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물어보아도 제대로 답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총선 이전부터 과기R&D예산의 대규모 삭감으로 세종, 충청 지역 사람들 여론이 들끓었지만 (이종호)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름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과학기술 관련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찾자면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을 꼽자면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항상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12척만 이끌고 외롭게 싸웠던 이순신 장군은 그렇다고 쳐도 32년간 재임한 세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일반 국민들은 역사책에서 배워 알고 있는 것이지만 황희, 신숙주, 정인지, 성상문, 김종서, 장영실 등 허다한 이름들을 세종과 함께 그 시대를 기억한다.
차기 국민의힘 대표는 아무래도 서울법대 출신중 한명이 될 것이 분명해보인다. 물론 윤상현 후보가 된다고 해도 역시 서울대는 서울대이다.
어쨌든 누가 되었던 여당 대표가 되면 소통을 강화하고, 원맨쇼를 피하고,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함께 길을 개척하면 ‘서울법대 출신 검사 불가론’ 따위는 차차 사라질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에도 이재명 대표 등을 변호하던 법조인들을 포함해 판검사 출신들이 즐비한 실정이다. 조국혁신당에도 검사 출신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법대 출신 판검사 불가론’을 넘어 ‘국회에 차고 넘치는 법조인들의 문제는 앞으로 어찌 되는 것이냐’에 대한 질문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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