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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

[현미경]제주맥주, 또 바뀌는 최대주주…미궁 속에 빠진 지배구조

- 무상감자. 3자배정 유상증자… CB발행 사전 작업으로 읽혀
- 최대주주 변경 두달만에 또 바뀌나…'1년 뒤 재변경 가능성 높아'
- 베일에 쌓인 최대주주, '투자자, 회사 살릴 수 있을지 회의감'

 

제주맥주 제품들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국내 수제맥주 1호 상장사인 ‘제주맥주’의 지배구조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불투명한 상태를 지속할 전망이다.

부진한 영업과 누적 적자 등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달 회사 창립 9년 만에 최대주주가 바뀌었으나 새 최대주주가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또다시 최대주주가 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 새 대주주들을 끌어오는 방법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을 떨어뜨리는 3자 배정 유상증자나 대규모 전환사채(CB) 발행 중심이어서 기존 소액주주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제주맥주는 지난 17일 감자비율이 80%에 달하는 무상감자를 결정했다.

오는 8월 5일을 감자 기준일로, 보통주 5주를 같은 액면가(500원)의 1주로 병합해 주식수를 줄이는 주식병합방식 감자다.

감자가 이뤄지면 전체 발행주식(보통주 기준)은 5856만주에서 1171만주로, 또 자본금은 292억원에서 58억원으로 각각 줄어들게 된다.

지난 17일 무상감자 관련 제주맥주 공시

 

감자 사유는 결손금 보전 및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회사측은 밝혔다.

그동안 수제맥주 영업 부진으로 생긴 누적적자와 결손금을 장부상으로 줄이거나 없애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제주맥주의 지난 17일 종가 1282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감자로 600억원 정도의 감자차익이 생긴다.

지난 3월 말 현재 제주맥주의 누적결손금은 877억원. 이 감자차익으로 결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감자에는 기존 주주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유상감자와 액면가를 줄이는 액면병합 감자, 그리고 이번과 같은 주식병합 감자 등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이 중 주식병합 감자가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손해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가는 그대로이더라도 보유주식수가 크게 줄어 보유주식 평가액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자와 부실에 빠진 기업이 새 투자자나 새 자본을 끌어들이기에는 미리 결손부터 정리해주는 주식병합 감자 방식이 가장 선호된다고 한다.

실제 지난달 바뀐 제주맥주의 새 최대주주는 또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3자배정 유상증자와 CB 발행의 사전 준비단계로 이번 감자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5월말 제주맥주 최대주주가 된 더블에이치엠의 보유주식 현황

 

제주맥주는 지난달 22일 임시주총 직전 최대주주가 종전 엠비에이치홀딩스(지분율 14.62%)에서 더블에이치엠(6.83%)으로 바뀌었다. 2015년 회사 창립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새 대주주가 이름도 생소한, 작은 기업이어서 그런지 지분매각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더블에이치엠은 지난 3월 말 첫 계약 당시 제주맥주 지분 14.79%, 864만주를 인수하되 5월 7일까지 잔금 지불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주당 1175원씩 모두 101억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이후 두 차례나 경영권 양수도계약이 변경되면서 결국 인수대상 지분은 6.83%(총인수가 47억원), 400만주로 크게 줄었다. 잔금은 5월 14일 가까스로 납입이 완료됐다. 인수 지분율 자체가 최대주주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적은 지분이다.

새 최대주주 더블에이치엠은 회사 규모가 작아 그런지 1년에 한번 공시되는 감사보고서도 없는 기업이다. 서울 성동구 소재 자동차수리 및 부품유통업체로, 작년 말 자산 16억원, 부채 7억원, 자기자본 8.4억원, 작년 매출 26억원, 당기순익 3.2억원 정도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줄어든 인수대금 47억원도 모두 차입금을 동원해 해결했다. 우리은행에서 10억원을 빌리고, 인수 후 첫 대표이사로 선임된 신성현씨가 28.7억원, 더블에이치엠의 최대주주(40%)이자 대표이사인 정승국씨가 8.3억원을 더블에이치엠에 각각 빌려 주었다.

작은 기업이 인수대상 지분을 계속 줄이면서 인수대금도 모두 빌려 가까스로 해결하자 ‘새 대주주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소리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인수 과정에는 더블에이치엠 외에도 레드캣츠코리아3호조합, 바모스투자조합, 에이치에이파트너스, 로이커넥트, 텐타임즈 등의 조합 또는 기업 이름들과 다수의 개인들도 등장한다. 모두 전 대주주들의 지분을 조금씩 같이 인수하면서 더블에이치엠과 함께 인수전에 참여했다.

하지만 더블에이치엠처럼 감사보고서 조차 없어,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투자자들이다. 더블에이치엠이 끌고 온 우호 투자자들인지, 아니면 독립 투자자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인수 참여 시기나 방식이 더블에이치엠과 흡사한 것으로 보아 우호 지분 내지 우호 투자자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IB업계의 추정이다.

3자배정 유상증자 관련 공시

 

아무튼 새 최대주주가 되자 말자 더블에이치엠은 다른 새 대주주 모시기 작업부터 서두르고 있다.

우선 지난달 30일 3자배정 유상증자를 확정했다. 신주 931만주를 지와이투자조합에 넘겨주고 100억원을 수혈받는다. 신주 발행가는 주당 1074원. 10% 할인가다.

지와이투자조합이 다음달 30일까지 100억원을 납입하면 지분율 13.72%로, 새로운 최대주주가 된다.

이 증자는 지난 3월 18일 이사회에서 결의된 것이다. 현 최대주주가 전 최대주주와 인수 협상을 하면서 이미 인수의 전제로 삼았던 투자유치로 보인다.

지와이투자조합이란 곳은 출자자가 류규열(50%), 김준걸(50%) 단 2명으로, 류규열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3월 설립된 신설 조합이어서 이 역시 현 최대주주의 인수협상때 패키지로 기획된 조합 신설로 추정된다.

이 조합이 투자금을 다음달 말까지 납입하면 두 달만에 최대주주가 또 바뀌게 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두 달만에 회사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넘길 것을 왜 차입까지 해가며 인수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다"고 했다.

전환사채 발행 공시

 

문제는 향후 1년이 지나면 또 최대주주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 3월 18일 제주맥주 이사회에서 같이 결의됐던 CB발행 때문이다.

원래는 신주인수 권리가 달린 BW였는데, 왜 CB로 바뀌었는지는 설명이 없다. 역시 오는 7월 30일이 납입일로, 모두 200억원의 CB를 발행할 예정이다. 이 CB를 인수할 곳은 수옹투자조합이란 곳으로 이미 결정돼 있다.

1년 후인 내년 7월 30일부터 CB를 주식으로 바꿀 수 있어, 수옹투자조합이 1년 후 실제 주식으로 바꾸면 제주맥주 지분 26.37%를 확보,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전환행사가격은 주당 1295원. 1년 후 주가가 이 행사가격보다 높아지면 수옹투자조합이 CB를 주식으로 바꿀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수옹투자조합의 정체 역시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 최대주주가 지난 3월 인수협상때 인수 전제조건으로 이미 결정한 것이고, 실제 지금도 현 최대주주가 투자유치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현 최대주주와 잘 아는 사이이거나 협조관계인 투자조합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만 나온다.

이렇게 현 최대주주가 제주맥주를 인수하자 말자 또 다른 대주주들을 연달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투자금은 많이 필요하지만 스스로 동원 가능한 자금은 적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부터 더블에이치엠-지와이투자조합-수옹투자조합 3자 연합으로 한꺼번에 제주맥주를 인수하면 될텐데, 왜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계속 거치는지는 현재로선 파악이 어려운 상태다. 

IB업계 일각에선 투자자들 대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조합이나 기업, 개인들이란 점도 앞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이들이 과연 제주맥주를 알찬 회사로 키워나갈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는 두고봐야 할것”이라고 꼬집었다.

제주맥주는 쌓아둔 유보금이 전혀 없는 결손기업이어서 기업사냥꾼들이 달려들 소지는 적어 보인다. 하지만 코스닥 상장기업이란 점은 기업 사냥꾼에겐 항상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작년에 출시된 제주맥주의 곰표 밀맥주제품 소개

 

최대주주가 구성한 제주맥주 새 경영진은 일단 요란스럽게 미래 경영구상을 계속 밝히고 있다. 특히 K푸드 열풍과 파리올림픽 특수 등을 활용, 국내외 시장을 앞으로 적극 공략하겠다는 방침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이번 무상감자 소식으로 투자자들의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제주맥주가 글로벌 F&B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고 일부 언론에 설명하기도 했다.

일단 감자로 결손을 보전, 재무구조부터 개선하고 그 다음에 글로벌 사업 확장을 도모하려는 뜻을 이해해 달라는 얘기다.

그러나 감자 발표 첫날부터 주가는 폭락했다. 이틀 연속 하락 후 19일에는 외국인 매수세가 들어와 다시 상승중이지만 주가 전망을 밝게 보는 투자자들을 많지 않아 보인다.

감자로 기존 주주들의 보유 주식을 크게 줄여놓고, 3자배정 유상증자와 대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하면 발행과 유통 주식이 다시 크게 늘어나면서 기존 주주들의 보유 지분과 지분평가액은 계속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회사라도 앞으로 알차게 다시 성장한다면 그거라도 믿고 주식을 계속 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 최대주주들과 새 경영진들이 회사 성장보다 주가 장난(?) 같은 것에 관심이 더 많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6만명이 넘는 제주맥주 소액주주들의 고민은 깊어갈 것으로 보인다.

제주맥주는 '크래프트 맥주의 대중화', '맥주의 미식 문화 창조' 라는 비전 하에 2015년 2월 제주도에 설립된 회사다.

주세법 개정 후 수입맥주와 공정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서 2020년 순매출액 215억원으로, 전년 대비 198%나 늘어나는 등 2021년까지 계속 성장했다.

2021년 5월에는 적자기업임에도 미래 성장성을 고려한, 이른바 '테슬라 요건(이익 미실현 특례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 수제맥주 상장1호 기록을 남겼다.

제주맥주의 소액주주 현황과 주가 추이

 

하지만 2022년 이후 시장경쟁 과열과 수제맥주 붐의 퇴조 등으로 지금은 많이 주춤해있는 상태다. 상장 당시 2021년 흑자전환, 2023년 매출 1000억원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 각종 수치들은 목표와 거리가 멀다.

2021년 288억원(연결기준)이었던 매출은 22년 239억원, 23년 224억원 등으로 계속 하락세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도 72억원, 116억원, 110억원 등으로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올 1분기 연결 매출은 50억원, 영업손실은 10억원으로 전년동기 46억원, 20억원보다 약간 호전됐지만 정말 살아날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영업실적 개선은 당장의 급선무다. 코스닥시장에서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경우 관리종목, 5년 연속일 경우엔 상장폐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본잠식(작년 기준 22%)에 빠진 점도 부담이다. 적자가 지속돼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이 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그 다음해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될 수 있다.

2021년 상장 당시 공모가 3200원이었던 제주맥주 주가는 상장 직후 6040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계속 떨어져 지난 18일 종가는 1279원이다. 지난 2월 한때 900원대까지 떨어졌다가 그나마 그 이후 많이 회복한게 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