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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북·러 동반자협정에 대응하려면 '북방외교' 복원해야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와 북한이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포함된 '한쪽이 공격당하면 상호 지원한다'는 조항에 대해 “방어적인 입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전력동반자협정’을 발표한 뒤 나온 발언이라 흥미롭다.

 

한국과 미국 등 관계국들이 이번 북한 러시아 정상회담의 결과를 1961년 7월 북한과 소련이 맺었다가 1996년 최종 폐기된 '조·소 우호 협력 및 호상 원조 조약'(상호조약)에 명시된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부활했다고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발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상호조약은 유사시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자동군사개입은 병력을 동원해서 작전을 펼치는 '참전'을 뜻하기 때문에 '참전'과 '지원'은 구분해야 한다고 러시아 외무장관이 해설을 해준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두 나라 관계를 ‘동맹’으로 표현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친구’라는 단어를 고른 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 방송 채널1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 '제4조'에 대해 “한쪽이 공격당할 경우 다른 쪽은 유엔 헌장 51조와 러시아·북한의 국내법에 따라 모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라브노프 장관은 러시아와 북한이 맺은 동반자협정은 결국 유엔 헌장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서 한국과 미국 등이 이번 회담 결과를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주석을 달아주고 있는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확대해석은 한·러 관계 복원에 도움이 되지 않아

 

이에 앞서 지난 5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통신사 간담회에서 “한국 지도부의 업무에 러시아 혐오적인 태도가 없음을 알 수 있다”며 “분쟁 지역(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무기 공급이 없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푸틴은 북한과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맺기 전에 굳이 한국의 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너무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다.

 

지난해 말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점검하는 특집 기사에서 어떤 방식이었든 “한국은 궁극적으로 모든 유럽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서방 언론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규정을 내린 의미를 잘 따져봐야 한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사시 상호 지원이라는 개념 자체를 조금 포괄적으로 넓혀 자동 군사개입으로 볼 경우, 당장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미일 공조체제 확립’에 대해서는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거 경험을 보아도 중국, 러시아 등과 강대강 대치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반도 질서 재편한 ‘북방외교’의 지속적인 후퇴를 경계해야

 

기자는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폐기처분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1988년부터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대공산권 외교정책 즉 북방외교를 다시 한번 복원시켜야 할 때가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과 쿠바 외교 당국은 지난 12일 수교 후 처음으로 대면 협의를 갖고 실질 협력 확대·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는 지난 2월 한국과 쿠바가 수교한 이후 첫 양국 간 고위급 대면 협의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36년간 지속된 북방외교가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북방외교를 다시 소환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취임하던 1988년 7월, 남북한 자유왕래 및 북한과 서방, 남한과 사회주의권의 관계개선 협력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7·7선언’을 발표하면서 역사적인 북방외교를 본격 시동했다.

 

이후 결과는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중국·러시아 등과의 경제우호, 선린관계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중국·러시아 등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압력을 넣어 북한 핵개발을 저지시켜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같은 소망은 사실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기대였다.

 

주체사상을 내세운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들 나라와의 관계가 주종 관계가 아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탓이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고위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은 중국의 책임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방국가들이 외면했던 중국 전승절 행사(2015년)에 참석한 것은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시켜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핫라인도 개설을 했다. 하지만 북한이 막상 핵 실험을 강행하자 그런 핫라인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중국에 경고를 날리기 위해 사드 배치를 전격 결정한 것이었다”고.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서 “최초의 수소폭탄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선전하던 것에 긴장감을 느끼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전화를 할 때는 무시하더니 같은 해 2월 5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드 배치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배치 반대를 설득한 것에 분개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중 관계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설령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중국을 철저히 무시한 것도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준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위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더욱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설령 어쩔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해도 외교적 절차를 너무 무시한 것은 실책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중국과 큰 마찰이 있었다. 바로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은 서해안에서 중국을 바로 감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미군 기지를 이전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중국을 겨냥하는 태도라고 긴장을 했다. 평택 미군 기지가 중국 서부를 감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중국이 반발하는 내용과 별차이가 없었다. 해서 당시 우리 정부(노무현 정부)는 그 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을 설득했다. 중국에 전혀 피해가 가지 않게 관리하겠다고 설득한 것이 그래도 인정을 받아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을 보면 그같은 중간 과정이 빠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8월,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와 미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협정에 합의했고, 그해 10월 28일 협정안에 정식 서명한 바 있다.

 

2016년 6월 29일 시진핑 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황교안 국무총리와 회담에서 “한국은 안보에 대한 중국의 정당한 우려를 중시해야 하며,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해 신중하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도 않은 7월 8일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토머스 밴달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사드 1개 포대의 한반도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중국은 한국이 중국을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북한 핵실험을 방관한 중국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고 만족할지 모르지만 중국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당시에도 시진핑을 만난 황교안 총리는 미리 사드 배치에 대한 언질이라도 주었어야 했는데 황 총리 본인 조차 사드 배치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지난해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시 상황인 우크라이나를 극비리에 전격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당초 4박 6일간의 리투아니아·폴란드 순방을 마치고 14일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거듭된 초청에 순방 일정을 연장하며 우크라이나 방문을 결정했다.

 

굳이 왜 윤 대통령이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었다.

 

물론 기시다 일본 총리는 이미 그 전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지원을 약속한바 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대러시아 관계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일본의 경우 전후 지금까지 러시아와는 일본 북방 영토문제로 군사적 긴장관계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러시아와는 군사적 대립을 일으킬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관계를 상기해보면 “자유진영 수호” 운운하기 이전에 한반도 전반의 정세를 더 깊이 살펴봐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격동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제대로 관리하게 위해 ‘북방외교’를 다시 소환, 발전시키는 전략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