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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용웅 칼럼]총선 집어삼킨 '고물가 위기' 뒤에 다가오는 ‘퍼펙트 스톰’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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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에 겪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미국 여행을 떠난 길에 현지에서 오랜 기간 생활한 지인 부부를 만났다. 그네들은 미국 시민권자들이다.

 

정치 이야기가 화제에 올라 “다음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 것이냐”고 물으니 뜻밖에도 트럼프를 찍겠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라 “아니 당신들은 속된말로 유색인종인데 왜 백인 우월주의자인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물가가 너무 올라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인은 말하기를 “트럼프는 유전 개발을 가능하게 해서 석유값이 안정적이었는데, 바이든은 미국내 석유 개발을 금지시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잡하게 트럼프와 바이든의 경제 정책을 비교할 필요는 없고 물가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하게 된 대화였다.

 

물론 미국 대선은 현재도 진행형이라 예단하기 어렵지만 트럼프가 갈수록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실제 뉴욕에서 외식을 하려고 하니 밥값이 너무 비싸 도무지 식당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서 길거리에서 싸게 파는 할랄음식(무슬림 음식)을 주로 사먹었는데 그것도 1인당 3만원은 들어갔다. 길거리에서 파는 토핑이 하나도 없는 피자 한 조각은 99센트였는데 사람들이 줄지어 주문을 하고 있었다.

 

에어앤비를 이용한 숙박비용도 굳이 여기서 비용을 일일이 적지는 않겠지만 숙박시설의 편의성을 따져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미국 물가가 정말 장난이 아님을 실감하는 여행길이었고 미국 대선 결과가 어찌 될지 새삼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장면2

계속 한가한 이야기만 해서 독자분들에게 죄송한 일이기는 한데 지난 1월에 일본 가고시마에 여행갔을 때도 놀란 것은 바로 물가였다.

 

음식, 숙박 등 거의 모든 물가가 한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서 마치 동남아에 여행을 간 기분이었다.

 

20~30년 전만 해도 일본 여행을 갈 때는 국내와 비교해 살인적인 물가를 실감했던 때와 비교해 보면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다.

 

마트에서 2만원 어치 소고기를 사면 숙소에서 동반자 4명이 실컷 먹을 수 있었고, 골프비용은 국내와 비교하면 거의 5분의1 수준이었다.

 

시내를 걷다가 빵집 앞에서 알바생을 구하는 광고를 보았는데 인건비가 시간당 900엔에 불과했다. 우리 돈으로 9000원도 안되는 수준이어서 더욱 놀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을 훨씬 능가하는 선진국이 되었다는 말인가.

 

이쯤 해서 한국 물가가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불변의 법칙을 확인한 22대 총선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은 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당은 겨우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는데 위안을 얻을 정도로 참패했다.

 

총선이 끝난 뒤에 결과를 해석하는 여러가지 분석들이 난무하겠지만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정말 의아하게 생각했던 대목은 바로 경제, 바로 물가 이슈였다.

 

총선과 관련된 여러가지 분석들을 뒤로 하고 기자는 딱 한 대목만 눈에 들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로 항상 첫 번째 항목에 올라오는 것은 바로 물가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3월 26~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4%, 부정 평가는 58%로 각각 집계됐다.

 

문제는 부정평가 이유이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물가(23%) △독단적·일방적(9%) △의대 정원 확대(8%) △소통 미흡(7%) △전반적으로 잘못한다, 경험·자질 부족·무능함, 인사(이상 4%) 등이 언급됐다.

 

항상 경제·민생·물가 부문이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의 부동의 1위였다. 2년 내내 그랬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항상 의문이 들었다.

 

출국금지 상태의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건이나 김건희 여사 명품백 관련 뉴스가 부정평가 1위는 아니었다.

 

그런 이슈들은 물가가 견딜수 없을 만큼 올랐기 때문에 비로서 국민들의 관심권에 들어간 것은 아닌지.

 

경제만 잘 돌아갔다면 그런 이슈들은 모두 가십거리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물가 때문에 국민들 밑바닥 정서가 이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도 현 정부가 물가와 관련된 어떤 정책을 내놓거나 대책회의 등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설령 그런 대책을 마련했다고 해도 국민들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눈에 보일만큼 큼직한 것도 아니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운동 막판에 일부 생필품의 부가가치세를 내려 물가안정을 도모하겠다고 했다.

 

부가세 인하라는 초대형급 이슈였지만 야당 지도자들을 욕하느라 한 위원장의 그같은 공약은 사람들 귓전에 도달하기도 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야당들도 물가 폭등의 상징인 ‘대파’를 들고 요란을 떨었지만 사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조목조목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여야 모두 상대 진영의 인물들을 주로 공격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일관했다.

 

물가 등 경제난이 사실상 총선 국면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여야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랬다. 어쩌면 민주당 등 범야권은 가중되는 물가난에 총선 승리를 별다른 노력없이 그냥 얻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역시 그들이 대권을 잡게된 결정적인 요인이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 폭등에 따른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망각증이어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한국 정치 지형을 요동케 한 정치적 이슈들 뒤안길에는 항상 경제 이슈가 주된 역할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철권 통치를 끝장나게 한데는 민주화 열기뿐 아니라 고물가에 따른 경제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5공 정권의 설계자'로 불리는 허화평 전 의원은 자신의 저서 <지도력의 위기>에서 “정치적 긴장과 조세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폭발한 것이 부산·마산지역에서 발생한 부마 사태”라고 결론을 냈다.

 

전두환은 물론 5공의 주역들은 부가세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었다. 조세 저항으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는 분석을 그 후계자들이 공유한 것이다. 부가세 도입으로 물가가 폭등했다는 것이다.

 

1977년 부가세를 신설하는 실무자였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공화당에서는 부가세 도입 주역을 문책했어요. 부가세 때문에 박 대통령이 시해됐다는 엉뚱한 논리를 적용했어요. 국보위에 끌려 갔어요. 죽는다기보다, 사표 낼 각오로 갔어요. 당시 심유선 장군(소장)이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장이었어요. 그분이 재무부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부가세를 강 과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냐고 추궁했지요. 참으로 어이가 없었어요.”

 

우리 정치사에서 진보 세력을 대변해서 대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이 사실은 IMF 사태라는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굳이 여기에서 새삼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총선 이후 고금리· 고물가· 고유가 등 3고(高) 한국경제 덮친다

고물가·고환율·고유가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이 앞으로 한국 경제의 주요 화두가 될것임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지금 거의 없다.

 

다만 총선에서 대패한 현 정부가 이런 경제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올해 1월 2.8%로 낮아졌다가 2월 3.1%, 3월 3.1%로 두 달 연속 3%대를 이어갔다. 문제는 2분기에도 이같은 물가상승세가 꺽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데 있다.

 

여전히 물가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의 금리정책에도 불안감이 가득하다.

 

10일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 중반으로 반등하며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준이 '더 늦게, 더 적게(later and fewer)' 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이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때문에 강달러 전망이 고착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1350원을 넘나들고 있어 수입물가는 더욱 가파르게 오를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릴 여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수년째 계속 되어 온 고금리가 서민경제는 물론 ‘4월 위기설’로 대표되는 국내 건설관계사들의 목을 죄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국제유가 역시 지정학적 위험 속에서 계속 우상향하고 있다.

 

1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5월 인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1.15% 오른 배럴당 86.2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6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다시 90달러대로 올랐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이 임박했다는 소식과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이 전해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제 폭풍전야의 형국이다.

 

이처럼 국제경제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여소야대 상황의 현 정부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믿음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모든 악재가 소용돌이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한 가운데로 깊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용웅 뉴스웨이브 주필